내가 옷을 만들면서 하는 생각들.
나는 패션디자인을 전공했다.
나는 아주 조그마할 때부터 손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것을 좋아했다. 그리고 어른이 된 지금도 이러고 있다. 바느질, 자수, 종이공예, 블록, DIY 등등 재료나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그냥 손으로 조물딱거리면 다 재밌었다. 게다가 성격도 내성적이라 더욱 밖을 잘 안 나가고 혼자 방구석에 앉아 사부작거렸다.
유치원 때, 갑자기 가위질 연습을 하고 싶다는 이유 모를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빨간 주방가위를 챙겨 들고 방으로 들어갔다. 옷서랍을 열어 옷을 꺼냈다. 그리고 서걱서걱 잘근잘근 옷을 잘랐다. 한 벌 자르고 또 그다음 옷을 자르고, 나는 꾸준히 열심히 잘랐다. 그리고 잠시 후 엄마가 나를 발견했고, 엄마는 나에게 물었다.
“뭐 해?”
“가위질 연습!”
나는 신이 나서 대답했다. 그리고 나는 그때의 엄마의 표정을 아직도 기억한다. 엄마는 무표정이었다. 엄마의 표정은 동공조차 멈춰버린 무표정이었고, 나는 이것을 ‘정말 무표정’이라고 부르고 싶다. 그냥 미동도 없이 나를 가만히 바라보셨다. 엄마는 날 혼내지도 않으셨고, 말리지도 않으셨다. 심지어 작은 손에 위협적인 가위가 들려있는데도, 엄마는 내게 가위를 빼앗지도 않았다. 그래서 내가 아직도 손에 가위를 쥐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일, 잘하는 일, 하고 싶은 일이 모두 한 곳으로 집중되어 있었다. 그래서 난 학생 때 전공 선택에 큰 고민이 없었다. 오히려 나의 교과 성적이 부족해서 선생님께서 다른 과를 추천해 주셨는데, 나는 패디과 아니면 대학을 안 가겠다고 대답했다. 그런데 이 호기로운 대답은 딱히 대단한 기개에서 시작된 것은 아니다. 그저 선생님께서 추천해 주신 과가 내게 흥미를 끌지 못했다는 단순한 이유였다. 어쩌면 내 모습은 사태의 심각성도 모르고 철없이 고집을 부리는 것으로 보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말 감사하게도 선생님은 내가 패디과를 갈 수 있는 방법을 끝까지 고민해 주셨다. 그리고 나는 패디과에 합격을 했고, 이 소식을 들은 엄마는 손을 둥글게 말아 엄지로 다른 네 손가락의 끝을 매만지며 말했다. “너 어렸을 때, 유독 손끝에 힘이 강했어.”
내가 옷을 만드는 것이 재밌는 또 다른 이유는 내가 퍼즐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난 복잡하게 엉킨 실타래를 보면 풀고 싶다. 풀어헤쳐서 구겨진 실을 죽죽 펴고 깔끔하게 정렬하고 싶다. 물론 너무 심각하게 꼬인 실타래는 그냥 둘둘 말아서 버리기도 한다. 초등학교 때, 싫어하던 수학시간에는 샤프로 모닥불 피우듯 책을 후벼 파기만 했지만, 기하학 단원은 눈에 불을 켜고 열심히 했다. 선생님 설명이 없어도 자연스럽게 이해가 되었다. 삼각뿔과 사각뿔, 속을 투시해 주는 점선이 없다면 겉보기에 유사해 보인다. 하지만 찬찬히 살펴보고 밑면이 삼각형 또는 사각형인가를 유추해야 하는 점이 나를 재밌게 했다. 그리고 특히나 전개도는 나에게 매우 매력적이었다. 왜 그런 게 좋았는지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입체를 평면으로 표현한 것이 다시 머릿속에서 입체가 되는 것이 재밌는 것 같다.
그리고 옷에도 전개도가 있다. ‘패턴(Pattern)’이다. ‘옷 본’이라고도 하는데, 옷의 봉제선을 전부 뜯어서 평평하게 펼쳐 평면으로 만들면 그게 패턴이다. 옷을 만드는 것은 퍼즐과 같다. 단순히 머리와 팔다리가 들어갈 구멍을 만들어 겉모습만 그럴싸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조각들이 서로 정확하고 부드럽게 연결되어야 한다. 그리고 각각의 조각들은 그냥 생기는 것이 아니라 맞닿는 인체의 이야기를 반영해야 한다. 간단한 예를 들면, 어깨길이를 뒤판을 앞판보다 0.5센티 내외를 더 길게 제도하는 경우도 있다. 왜냐하면 사람의 어깨가 앞으로 굽어져 있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길이를 봉제하면서 생긴 미묘한 곡선이 앞으로 굽어진 어깨에 자연스럽게 안착된다. 재밌다. 나는 이런 부분이 굉장히 재밌다. 고작 0.5센티이지만, 고작이 만들어낸 차이는 크다. 정교하고 정확한 패턴은 안정적인 옷의 초석이다. 나는 오차가 0에 가까운 패턴을 만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