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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바미 Apr 18. 2019

서두르지 마. 이미 늦었어.

조금 더 늦는다고 별일 있겠어?


 집 근처 작은 가게에서 초등학생 미술을 지도하는 교습소를 시작한 지 4년 차. 교습소 잘 운영해서 확장해야겠다는 욕심보다 소소하게 하면서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그런 생각 때문인지 규모가 작기도 하지만 수강생 수는 더욱 단출해서 아주 소박한 분위기로 수업 중이다.

 수강생이 작은 교습소 일의 강도 그다지 높지 않다. 또 아이들이 학교에 있는 오전에는 수업이 없어서 오후부터 출근이라 다른 일보다 시간이 여유로운 편이다. 그림을 다시 시작하기에 딱 좋은 조건이다. 그림을 그리는데 큰돈이 필요 없었고 나는 시간이 많았다.  

  

 교습소를 시작하고 몇 년간 나는 그리지 않았다. 초보 원장인 나에게 사소한 것 하나하나 고민이었다. 그렇다고 운영을 잘하는 것도 아니었다.

 아이들에게 “그림을 억지로 그릴 필요 없다.” “학원을 꼭 다녀야 하는 건 아니다.” “그림을 잘 그리면 좋지만 그렇다고 꼭 잘 그려야 하는 건 아니다.” “하고 싶을 때 해야 빨리는다.” 는 이야기를 곧 잘했다. 학원에 억지로 와서 그림을 그리기 싫어하는 아이들은 학부모에게 전화를 드려 잠깐 쉬어보는 게 어떻겠냐는 권유를 했다.

 내 나름 뚝심 있는 주관이라 생각하지만 운영에서 그리 큰 도움을 주진 못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림을 좋아하는 아이들은 개업한 이후로 꾸준히 다녀주어 문을 닫진 않았다. 차라리 폐업하는 게 나은가 고민할 정도의 상황인지만.


시간이 한참 지나고 나서야 나는 서서히 그리기 시작했다. 태블릿을 사고 본격적으로 그리기 시작한 건 고작 4개월 남짓 된다.

 그동안 내 그림을 그린다는 즐거움에 만취해 있었다. 일단 내 주변부터 그려보자고 생각했고 대부분 남편과 나 반려묘 고고와 밤이를 소재로 그렸다. 그냥 즐거웠다. 그린다는 것의 즐거움 몰입의 즐거움을 오랜만에 느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주변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다. “웹툰을 그려 보지 그래” “이모티콘 그리는 것도 돈이 된다던데” “그거 그려서 뭐 할 건데?”


 왜인지 주변에서 들려오는 말은 나를 짓 누르기 시작했다. 흘려 들어도 되는데 그냥 웃고 넘겨도 되는데 왜 그러지 못할까?

 사실 나도 그들이 말하는 것처럼 하고 싶기 때문이 아닐까? 웹툰으로 대박 나도 좋을 것 같고 이모티콘으로 대박 나도 좋을 것 같고 그림으로 먹고살면 진짜 기분 째질 것 같은데.......(일이 되면 또 힘들겠지만)

 그런데 그런 생각을 할수록 마음이 조급해지고 남과 비교하게 되고 누군가를 부러워하게 되고 질투하게 되어 그림 그림 그리는 즐거움이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지난 내 삶을 부정하기 시작했다. 난 그동안 뭐했나. 그동안 아무것도 안 하게 아닌데 몸은 게을러도 마음 바쁘게 움직였던 그 시간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것이다.” 같은 진부한 말로 위안 삼고 싶지 않다. 개그맨 박명수도 명언을 남기지 않았나. 늦었다고 생각할 때 이미 늦었다고.

 뭔가를 새로 시작 하기에 적당한 나이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조급하게 서두를 필요는 없다. 누가 쫓아오는 것도 아니고 좀 늦었다 해서 뭐라 할 사람은 더더욱 없으니까. 이미 늦은 거 조금 더 늦는 다고 해서 큰일 나진 않으니까 서두르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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