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든 한번 해보기 프로젝트 첫 번째, 타로카드
나는 점이나 운명을 믿는 편이 아니다. 사주는 재미로 두어 번 본 적이 있고 타로는 한번 본 적이 있는데 오늘 타로에 대한 이야기를 할까 한다.
몇 년 전 어느 날 친구들과 놀다가 재미 삼아 타로를 본 적이 있다. 독립 서점을 운영하며 타로도 봐주는 곳이었는데 뭔가 안 어울린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묘한 분위기에 이끌리듯 그곳을 들어갔다.
차분한 분위기에 책방 사장님에게 "저기 타로 보시나요?" 이렇게 물었던 것 같다. 그리고 우리 셋은 나란히 그녀의 앞에 앉았다. 셋 다 이직에 관한 질문이었던 것 같다. 일은 항상 그만두고 싶은 것이니....
나는 세 장의 타로카드를 뽑았고 그중 한 장의 카드만 기억이 난다. 노인이 커다란 짐을 등에 들쳐 매고 가는 그림이었다. 현재 나의 모습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했다. 그림은 어렴풋한 기억이지만 그때의 마음은 내 몸 어딘가에 각인되듯 아직까지 선명하다.
그 카드 한 장이 내 마음에게 "많이 힘들지?"라고 말을 건네는 듯했다.
그 후로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무기력하게 뒹굴거리던 나는 문득 그때의 기억이 떠올렸다. 나는 궁금한 게 있으면 관련된 책을 찾아보곤 하는데 바로 알라딘 앱을 켜서 타로를 검색했고 한 권의 책을 샀다. 공감과 치유로 이끄는 힐링 타로 가이드라는 부제가 마음에 들었다. 책과 함께 타로 카드도 함께 왔다.
책을 받고 책장을 넘기니 타로의 기원과 역사부터 시작하는데 솔직히 타로 무지렁이인 나는 단어가 생소해서 도통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었다. 살포시 책을 덮었다.
다음날 이러다가 타로 카드 한 장도 못 뽑아보겠다 싶어 그냥 가장 기본적인 카드 스프레드 한 장 뽑기를 해보았다.
건강상의 문제로 몇 개월째 쉬고 있는데 쉬다 보니 무기력 해지고 해야 할 일들을 자꾸 미루게 되어 무기력에서 벗어나려면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할지 질문하였다. 오른손잡이인 나는 왼손으로 카드를 섞었고(어디서 주워 들었다.) 카드를 펼쳤다. 드디어 한 장의 카드를 뽑았다.
여사제 카드로 불리는 이 카드가 나오는 순간 입에서 작은 함성이 튀어나왔다. 정면을 응시하는 여사제가 나를 보는 것 같았고 "넌 이미 알고 있잖아."라고 말하는 듯했다.
여사 제의 양쪽 기둥 야긴과 보아스라 불리는 기둥인데(성경에 나온다고 한다.) 야긴은 저기 세우다. 보아스는 그에게 능력이 있다.라는 뜻이다.
아동미술 학원과 그래픽 디자인 강사를 하였었는데 일을 그만두면 내 작업을 해야지 결심했다. 그러나 그 결심은 처음이 아니었다. 항상 내 작업을 하고 싶다는 열망이 있었지만 그 열망은 작은 바람에도 쉽게 꺼져버렸다. 이번 바람은 건강 문제였는데 복용하는 약 때문인지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지만 그렇다고 몸 져 누워있을 상태는 아니었다.
게으른 완벽주의자인 나는 항상 기준을 높게 세우고 스스로에게 실망하게 될까 봐 자꾸만 일을 미루는 습관이 있다. 벗어나려 해도 쉽사리 벗어나기는 힘들지만 분명 나는 지금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다. 하지만 욕심이 많아해야 할 일을 잔뜩 마음에 품고 잘 해내지 못할까 봐 두려움에 떨며 외면해 버린다. 그래서 마음의 부담은 자꾸만 커지고 해야 할 일은 계속 쌓이게 된다.
여사제 카드는 눈에 보이는 세계와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나누는 가림막 앞을 지키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나는 무의식의 세계라 하겠다. )
나는 나를 제일 잘 아는 것 같으면서도 사실은 잘 모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림 속 여사제처럼 무의식과 현실의 사이에서 균형을 잘 지켜내며 그동안 소홀히 했던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아는 사람이라면 갑자기 웬 타로? 이런 반응을 보일 것 같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는 점이나 운명을 믿는 편이 아니다. 게다가 타로 무지렁이다. 그냥 문득 몇 년 전에 그 책방에서 봤던 카로 카드가 떠올랐고 나는 위로가 필요했지만 누군가의 위로는 위로가 되지 않았다. 나는 자신과 대화하고 싶었고 그 방법을 잘 몰랐다.
타로카드를 통해 스스로 대화하는 법을 익히고 내가 생각하지 못한 내면의 세계, 무의식의 잠재된 어떤 것 들을 일깨워 주고 싶었다. 과연 될지는 미지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