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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뱅 Mar 07. 2022

원자재 고공행진

돈 못 벌어도 되니까 전쟁하지 말자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이 문장을 쓸 일이 없었으면 했는데 일어나고야 말았다. 그리고 현대의 자본과 산업은 아무리 잘난 국가라 할지라도 홀로 살아갈 수 없을 정도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 연결성만큼이나 금융시장에 주는 타격은 어마어마했고, 현재 진행형으로 개인뿐만 아니라 거대 사모펀드의 계좌도 파랗게 물들이고 있다.


 개별 종목의 재료나 업황의 우수함 같은 시장요인이 아니라 거대한 지정학 리스크가 시장에 충격을 주면 어떠한 종목도 시장을 이겨낼 재간이 없다. 시장은 예고된 악재보다 돌발 악재를 더 싫어한다. 후자는 투자자들이 소화하거나 생각할 여유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런 시장에서는 '옥과 석'을 가리지 않고 모든 종목이 빠지게 된다. 오히려 '옥'이 더 많이 빠지는 형국을 자주 보게 된다. 대형주 혹은 중소형주 중에서도 업종을 선도하는 상위권 기업들은 펀드에 편입되어 있을 확률이 높고, 시장이 빠지면 펀드 환매 요청에 따라 운용사는 종목을 가리지 않고 팔아야 하는 입장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떤 시장 상황에도 불구하고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야만 한다. 필자의 계좌도 파란불을 면치 못 하고 있지만, 원자재 헷징을 통해 손실을 최소화하고 있다. 전쟁과 관련된 뉴스들을 복기하면서 원자재 시장에 언제 어떻게 뛰어들었어야 할지 돌아보고 앞으로의 대응을 또한 생각해보고자 한다.




1차 발단

2021년 11월 러시아의 예비군 소집 및 우크라이나 국경 병력 증강 배치

투자노트나 다이어리를 펴지 않아도 이 뉴스를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다. 2022년 투자전략을 보통 11월부터 작성하기 시작해서 12월 중순 정도에 마무리하기 때문이다. 해당 이슈를 거시경제 이슈에 포함 여부를 꽤 오랜 시간 고민했다.

지금에 와서 보면 고민 자체가 어리석어 보이지만, 당시만 해도 러시아 빡빡이 아저씨가 잊힐만하니 또 센척하러 나왔구나 정도로 해석하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푸틴의 레드라인 언급은 한두 번이 아니었고, 매번 나토와 서방 국가들을 향해 날 선 대응을 해왔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긴장감 조성 정도에서 끝나지 않을까 했다.

결국 해당 이슈는 '조심하자' 정도로 결론을 냈고, 2022년 투자전략의 큰 제목에 러시아는 언급되지 않았다.

이때 만약 '중대한 위험' 또는 '심각한 위협' 등의 결론을 내고 주식 현물을 12월 고점에서 정리하는 투자 방향을 설정한 투자자가 있다면, 그 사람은 미래에서 왔거나 그야말로 사자의 심장을 가진 투자 대가이겠지만 월가에서도 그런 말 한 사람이 없는 걸 보면 0으로 수렴하는 것 같다.


2차 전개

2021년 12월 초순 미러 외교장관 회담 불협화음 및 서방국가의 우크라이나 지원 시작

개인적으로 아쉬운 시점이 이때다. 블링컨 국무장관이 이렇다 할 결과물을 내놓지 못했고, 무기를 비롯한 군수 자원을 서방 국가들이 우크라이나에 직접적으로 지원을 하기 시작했는데 민감하게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전쟁 이야기를 현실로 받아들이고 싶어 하지 않았던 심리가 더 크게 작용했던 것 같다. 더 이성적으로 생각했어야 했던 타이밍이 이 시기였다고 생각한다. 

투자노트를 돌아보니, 거시경제 쪽에서 더 큰 관심은 터키의 금리인하 뉴스였다. 이때는 러시아 빡빡이 아저씨보다 터키 아저씨의 의사결정이 더 미친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물론, 이 관심사를 리라 풋옵션 매수라는 투자 행동으로 옮겨갔고 수익을 본 것도 맞지만 이슈의 강도와 중요성을 평가함에 있어 다시 한번 반성하게 되는 부분이다. 


3차 위기 그리고 뒤늦은 행동

2022년 1월 말 침공 구체화 및 원자재 시장 위기

해가 바뀌고, 물가압력과 연준의 금리 인상 이야기만으로도 주식시장이 소화하기 힘들 정도로 하루가 다르게 말이 바뀌고 신흥시장의 불안정성이 커져만 갔다. 1월 시장의 암울함은 굳이 구체적으로 나열하지 않아도 개인 투자자들이 뼈저리게 느꼈을 것이다. 

그 와중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를 향한 침공이 구체화되고 있었다. 병력의 증강 배치는 물론이요, 유럽으로 향하는 천연가스 공급을 중단한다는 말까지 나왔다. 매일 전쟁의 구렁텅이로 빠져들기 직전 상태에서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었다. 미국은 한 술 더 떠서 러시아가 천연가스 공급을 안 하면 자국에서 비축해둔 가스를 유럽에 공급할 수 있으니 걱정 말라고 했다.

설 연휴를 앞둔 1월 마지막 주 시장, 손실 중이던 일부 종목을 분할 매도했다. 1차적으로는 연휴 기간 동안 미국 시장 움직임을 소화하지 못하니 홀딩 전략이 적절해 보이지 않다는 판단이 섰다. 그리고 해당 종목들의 잠정 실적이 발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부각되지 않았기에 재료 소멸이라는 관점에서도 매수할 때의 이유가 사라진 상황이었다. 

확보한 현금으로 원자재 ETN을 분할 매수했다. 콩, 옥수수, 천연가스. 비중 각 5%.

설 연휴 이후 외생변수로 인한 시장의 급락 또는 기존 보유종목들의 실적 발표에서 기대치 하회로 인한 주가 하락을 헷징하는 목적이었기에 비중을 크게 가져가지 않았다. 오히려 전쟁 이슈의 급격한 화해 모드 전환 시 "손실을 감수하고 언제든 팔 수 있다"는 마음으로 진입했다.

러시아는 천연가스 매장량 1위일 뿐만 아니라 유럽 전역의 천연가스 사용은 절대적으로 러시아에 의존하고 있기에 전쟁의 불안정성으로부터 생각할 수 있는 최우선 급상승 원자재였다. 

전쟁의 또 다른 당사자인 우크라이나는 유럽 최대 곡창지대이다. 특히, 옥수수, 밀, 콩, 보리는 세계 10위권에 들어가는 수출국가이며, 해바라기씨는 세계 3위권이다.

니켈과 리튬도 매력적이었지만, 칠레나 중국보다 시장지배력이 강하지 않다는 점으로 인해 투자대상에서 제외했다. 이 부분이 하나의 패인이라면 패인이다. 2차 전지 시장은 성장산업으로 미래의 꿈과 희망으로 지금까지 주가가 움직였다. 매출과 영업이익의 증가세가 가파르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고PER은 분명한 상황이다. 이들 관련주가 움직일 때 시장에 나와있는 숫자로 움직인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기대감'으로 움직였다. 니켈과 리튬 가격도 결국 '기대감'이 '걱정'으로 바뀌면서 더 고공행진했다.

니켈, 리튬 말고 또 하나 더 있다. 2월 4일 주간 수익을 정리하면서 쓴 노트에 이렇게 쓰여 있다.

'팔라듐..?'

끝에 붙은 물음표가 정말 뼈 아프다.


4차 절정

러시아의 본격 침공 그리고 전쟁의 장기화

개전 첫 이틀 만에 전쟁이 싱겁게 끝나는 것 같았다. 러시아 빡빡이 아저씨의 승전 인터뷰와 과도정부 수립과 관련된 뉴스가 나오면 ETN을 정리하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수량이 많지 않아서 분할매도할 것도 없었고, 전쟁이 미친 영향을 생각하면 원자재 시장이 갑작스러운 급락도 가능했기에 빠른 대응을 하리라 마음먹은 상태였다.

그런데 웬걸,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항전의지는 일제강점기 우리 선조들의 그것 만큼 강했다. 국제 사회의 지원도 더 거세졌다. 키이우를 둘러싸고 교착 상태가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당연히 원자재 시장은 원유를 필두로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매수했던 3개의 ETN들 모두 매도가 급하지 않을 정도로 안정적인 수익권에 접어들었다. 오히려 적은 수량이지만 조금씩 분할매도를 하고 현금을 확보한 후에 지수가 바닥을 다지면 개별 종목을 공략해도 좋을 정도로 매력적인 수준으로 주가가 형성되었다.




종국에는 러시아가 키이우를 점령하고,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과도정부를 세워나가는 모습이 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예상해본다. 하지만 러시아 빡빡이 아저씨는 이미 패장의 마음일 것이다. 전력 차이가 크게 나는데도 불구하고 이미 1만여 명 이상의 전사자가 발생했고, 하루 최소 1조 원 이상의 전쟁 비용, 국제사회의 경제 제재 등을 고려하면 전쟁에서 이겨도 이긴 것이 아닌 상황이 계속 펼쳐질 것이다.


투자 이야기로 돌아가자.

투자자는 세상사가 어떻게 돌아가든 돈을 버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2014년 크림반도 사태를 겪었고, 2019년 말부터 지금까지 코로나 사태가 이어지고 있음에도 여전히 작은 뉴스 하나하나를 민감하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큰 파도를 만드는 작은 물결을 알아볼 수 있는 식견과 깊이 있는 고민이 더해져야 한다는 걸 뼈저리게 느낀다.

앞으로의 대응은 정해져 있다. 수익 극대화.

적은 비중이지만 수익률 자체는 만족스럽고, 오히려 개별 종목들의 손실을 상당 부분 메워주고 있다. 원자재는 시가총액 개념이 없으므로 계속해서 전황을 읽으면서 대응하는 수밖에 없다. 비중, 상황, 수익률 모든 면에서 매도가 급하지 않으므로 여유 있게 대응하면서 전황에 따라 분할매수 후 저점 추가 매수도 가능하다는 판단이다.


하지만 한 가지 간절히 바라는 점은 차라리 돈 조금 못 벌어도 괜찮으니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으면 한다. 전쟁은 너무 많은 이들을 아프고 힘들게 만든다. 전쟁으로 아파하는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의 위로의 손길이 있기를 간절히 기도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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