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그로 아니라 진짜로
계속해서 반도체 이야기를 이어가도록 하겠다.
반도체 관련주에 투자하기 위해서는 반도체의 공정 과정을 알고, 각 공정 사이의 상관관계와 그에 따른 서플라이 체인을 이해하며 큰 그림을 머리속에 넣고 그릴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뉴스와 재료에 따라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단기적 영향에 그칠 문제인지 장기적으로 업황과 기업가치에 영향을 줄 문제이지를 판단하기 위함이다.
그러면 8공정에 대한 설명을 웨이퍼 제조부터, 아니 잉곳을 만드는 것부터, 아니 그보다 모래에서 실리콘을 추출하는 것부터 설명을 해줘야지 왜 갑자기 후공정 전성시대라는 제목으로 어그로를 끌었냐는 다양한 핀잔, 푸념, 반박, 불만 그 외 기타 등등의 이야기를 독자들은 하실 수도 있겠다. 이해한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반도체 전문가가 아닌 필자의 글을 통해 배운다는건 너무너무 위험한 행동이다. 다른 것도 아니고 투자를 위해서 공부하는 것인데.
우리에게는 시가총액 1,2위 반도체 기업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있고, 이 두 기업은 너무 친절하게도 각자의 홈페이지에서 반도체 공정에 대해 아주 자세하게 그리고 쉽게 설명해두었다. 8공정에 대한 개론은 그들에게 맡겨두기로 하고 필자는 지금의 반도체 업황에서 주목할만한 곳을 가지고 글을 써보고자 한다.
반도체 8공정을 공부하고 왔을거라 생각한다. (8공정을 안 보고 아래 내용을 읽으면 필자의 의도와 다르게 이해할 가능성이 크므로 반드시 8공정에 대해 훑어보기라도 하고 아래 내용을 읽어보시길 추천합니다.)
패키징과 테스트 공정으로 크게 구분할 수 있다. 회로를 그리고 전기적 신호를 주고 받을 수 있는 상태가 된 웨이퍼를 '자르고' 리드프레임이나 PCB 기판 위로 '옮기고' 배선 작업을 통해 최종적으로 외부와 신호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패키징 공정이 먼저 이루어진다. 이 패키징 공정은 다시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①기판과 칩을 외부에 전선으로 연결하는 Wire bonding 방식과 ②범프라고 불리는 작은 볼을 웨이퍼칩과 기판 사이에 붙여서 연결하는 Bumping 방식이 있는데, 우선은 ②의 방식이 조금 더 최신 기술이라는 점만 여기서는 이해하면 되겠다.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다시피 패키징 과정을 통해 웨이퍼는 고온/충격/진동 등 외부환경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일종의 포장 공정으로 이해하면 된다. 이어서 반도체 공정의 마지막으로 포장까지 끝난 제품의 불량 유무를 판정하는 '파이널 테스트' 과정을 거친다. 전기적 신호의 동작 속도나 기능적 특성 등 다양한 환경에 대한 테스트를 거쳐 최종적으로 제품을 납품하기도 하고 전공정 부분에 피드백을 하기도 한다.
제목을 후공정 전성시대라고 쓴 배경에는
①시스템반도체 분야(서버용 CPU, AP, CIS, DDI 등) 전반에 대한 수요가 지속되고 있고
②파운드리 업체들이 끊임없이 투자 계획을 발표하고 있고
③전공정 미세화 경쟁이 심화되면서 막대한 개발비용과 기술경쟁으로 인해 후공정의 효율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선회하는 등
중장기적으로 일감이 증가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있기 때문이다. 후공정 이야기를 한 이후에 콕 집어서 '시스템반도체' 분야를 이야기하는 것은 메모리반도체 분야의 패키징 서비스는 원래부터 수익성이 낮아서이다. 그래서 같은 후공정 전문 기업이라고 해도 시스템반도체 분야 쪽인지, 메모리반도체 분야 쪽인지에 따라 실적 차이가 나고 주가의 탄력성도 다르게 되는 것이다.
후공정에서 패키징과 테스트, 이 두 단계를 모두 종합적으로 서비스하는 업체를 OSAT(Outsourced Semiconductor Assembly and Test)라고 부르더라. 세계 1위 OSAT는 대만의 ASE다. 세계 1위 파운드리 기업이 TSMC니까, TSMC로부터 일감을 받는 곳인 ASE가 후공정 1위인 것은 당연한 이야기가 된다. 이 ASE와 비교해서 국내 OSAT 기업들은 '발가락의 때'만큼도 안 될 정도로 귀여운 수준이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파운드리 업체들이 끊임없이 투자계획을 밝히고 있고, 우리는 삼성전자가 오스틴 공장에 이어서 두번째 미국 공장 투자까지 발표가 기다리고 있어서 업황이 중장기적으로 호황의 초입에 들어선 것 같아 보인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국내 후공정 상장사들이 어떤 일들을 하고 있는지 살펴보겠다.
먼저 대표적인 패키징 업체로는 네패스(033640)가 있다.
(자본금 116억, 액면가 500원, 시가총액 8000억. 9월 3일 종가기준)
원래는 패키징과 테스트를 모두 하는 전형적인 OSAT 업체였다가, 테스트 부문 자회사인 네패스아크를 분할상장하면서 이제는 패키징 업체로 분류하고 있다. 패키징 사업부는 기술적으로 보면 DDI 제품에 대한 Bumping 공정을 외주 물량으로 받아 처리하던 업체이고, 더 세부적으로는 FI-WLP와 FO-WLP, FO-PLP 기술 개발을 통해 확장성도 키워가고 있다.
특히, 가장 큰 프리미엄 요인이 될 수 있는 FO-WLP 기술은 세계적으로 가능한 기업이 ASE와 Amkor 밖에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네패스는 이 기술을 NXP의 차량용 Radar Sensor에 해당 공정으로 공급하고 있다. (여기서 FI-WLP, FO-WLP, FO-PLP의 각 공정 과정까지 설명하면 정말 투머치가 될 것 같으니 생략하고, 앞으로도 필요성이 느껴지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기술적으로 세세한 설명은 하지 않는 방향으로 글을 쓰도록 하겠다.)
테스트 분야에서는 테스나(131970)를 빠뜨릴 수 없다.
(자본금 85억, 액면가 500원, 시가총액 7000억. 9월 3일 종가기준)
2013년 상장 전부터 비상장기업 가운데 가장 투자매력도가 높은 곳으로 꼽힌 기업이다. 기술적으로나, 업황으로나, 재무적으로나 어느 것 하나 빈틈을 찾기가 어려운 매력있는 기업이다. 주요 매출은 CIS, AP, RF 등 시스템반도체 테스트에서 발생한다.
그 중에서도 현 시점에서 가장 매력적인 매출처는 CIS(CMOS Image Sensor) 부문이다. 이름 그대로 카메라에 부착되어 이미지센싱하는 부품이며, 삼성전자를 주 고객사로 삼고 삼성전자 내에서 ASE Korea와 절반씩 양분하고 있는 상황이다. 스마트폰에 카메라가 트리플, 쿼드 등 숫자가 늘어날수록 이미지센서의 수요도 늘어나고, 고화소화로 성능까지 높아지면서 각각의 이미지센서를 테스트하는 시간도 길어지고 있다. 여기서 '시간'이 중요한 이유는 일반적으로 테스트 부문의 단가 산정 방식이 '테스트에 투입되는 시간 X 장비 가격'으로 정해지기 때문이다. 더 높은 스펙의 제품일수록 테스트 장비 가격도 높아지고, CIS의 고화소화는 자연스럽게 테스트 시간도 길어져 단가가 상승할 수 밖에 없는 구조적 환경으로 볼 수 있다. 앞서 말했지만, 테스나의 주요 매출 중에서도 90% 이상이 CIS와 AP 등 고사양 비메모리 반도체 분야이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소개하자면, 인텍플러스(064290)이 있다.
(자본금 63억, 액면가 500원, 시가총액 3000억. 9월 3일 종가기준)
테스트 분야 중에서도 외관검사 분야는 성능검사 분야보다 상대적으로 수익성이 낮아서 해당 기업들은 투자매력도가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이 부분은 2차전지 분야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외관검사 장비 자체가 특별히 대단한 기술력을 요하는 것도 아니고, 기술적 성장이 괄목할 정도로 이루어질만큼 기업 스스로 R&D 매력이 있는 분야도 아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외관검사 장비 기업의 제품은 X-Ray, CT, 초음파 등 이미 존재하는 기술을 활용해 '껍데기'만 다르게 조립한 것에 불과하다. (아, 절대 그 기업들을 비하하는 것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투자자의 입장에서 상대적 비교를 하면 그렇다는 것이지 그 분들도 열심히 일하고 노력해서 만들어낸 제품임에는 틀림없다. 오해하지 않기를 바란다. '이렇게 안 써두면 나중에 무슨 소리를 들을지 몰라!')
반면, 인텍플러스는 세계 유일의 독보적인 WSI(White Light Scanning Interferometry) 기술을 베이스로 2D/3D 검사를 '안정적'으로 가능하다는 점이 프리미엄 요인으로 꼽힌다. 2차전지 분야도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다고 말한 점에서 볼 수 있듯이 인텍플러스 역시 반도체 패키징 외관검사 분야로의 매출 뿐만 아니라 파우치 타입 2차전지 외관검사 분야로의 매출도 2021년부터 발생하고 있어 다양한 테마로부터 인정받기 시작했다.
또한, 매출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70%라는 점도 매력도를 높이게 만드는 요인이다. 대만, 중국, 동남아 등지의 시스템반도체 OSAT 업체들이 인텍플러스의 외관검사 장비를 채택하는 비율이 높아지고 있고, 그 중에서도 세계에서 가장 대표적인 IDM 기업인 Intel에 대해 10년 넘게 독점공급하던 KLA를 제치고 독점적 지위를 확보했다는 점은 더욱 눈여겨 볼 만 하다.
언급한 3개 회사 이외에도 Dispenser 장비의 프로텍, Vision Placement 장비의 한미반도체, 테스트 소켓 분야는 ISC, 티에스이, 리노공업, 테스트 분야는 테스나 외에도 네패스아크, 엘비세미콘, 하나마이크론, 시그네틱스 등 수많은 중소형 소부장 기업들이 각자의 매력을 뽐내고 있다. 주식은 하나하나 뜯어보고, 자료를 찾아보고, 분석한 이후에 움직이면 된다.
이번 글에서도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필자는 기업의 내용과 업황, 기술이 매출을 만들어내고, 그러한 객관적 지표가 미래의 주가에도 반영될 것이라고 믿는 투자자이다. 지금까지 3개의 글을 쓰면서 단 한 번도 차트의 생김새, 위치, 타이밍, 패턴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인스타그램 DM으로, 혹은 댓글로, 여러 창구로 차트 생긴게 어떠니, 지금 타이밍이 어떠니 이런 식의 반박을 하실 생각이라면 접어두시고 다른 글을 읽고 투자하시고, 다른 분과 그런 이야기 나누시라고 말하고 싶다. 그러한 것들로는 필자와 대화나 소통자체가 불가능하다. 하지만 업황에 대한, 기업의 내용에 대한 이야기라면 언제든 환영이다. 나 역시 개인투자자일뿐 전문 기관 투자자가 아니며, 반도체 관련 학과를 나오지도 않았고, 해당 기업에서 일한 적이 없으므로 틀린 정보를 가지고 잘못된 글을 쓰고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오늘도 공부한 기업들과 반도체 후공정에 대한 얕은 지식이지만 관련 기사를 볼 때 마다 이해하는 수준이 높아지고, 투자에 있어서도 항상 성공적인 길만 걸으시길 바라며 이만 글을 줄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