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1. 해외 MBA, 알고 시작하자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Master of Business Administration (이하 MBA). 글로벌 캠퍼스, 유수한 교수진, 졸업생들의 성공 신화 등 해외 Top MBA 관련 정보를 찾아 읽다 보면, 내일 모래 MBA 입학을 앞둔 예비 학생이 된 것 마냥 잔뜩 몰입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기 쉽다.
사실, 우리 같이 평범한 월급쟁이에게 해외 MBA는 일생일대의 기회 일 수 있다. 글로벌 기업 임원의 강연에 참석하고, 베스트셀러 저자인 교수님의 수업을 들으며, 전 세계 각국에서 온 친구들과 비즈니스를 토론하는 일이 매일같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또한 MBA를 통해 커리어 체인지에 성공하면 국내에서 동종 업계로 이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임팩트 있게 본인의 몸 값을 올릴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해외 MBA 재학 시,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으며 자녀에게도 해외 생활 기회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에 ‘나를 위한 투자’를 넘어 ‘가족을 위한 투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물론 모두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이렇게 좋은 얘기만 할 거라면 이 글을 시작도 안 했다.
우리가 듣는 정보 중에는 예쁘게 다듬어진 내용이 많다. 매년 MBA 관련 기관들이 성공 사례들만 콕 집어서 광고를 하기 때문이다. 결코 성공하는 사람들의 수가 적다는 뜻이 아니다. 성공 사례와 실패 사례를 모두 따져봐야 되는데, 우리는 너무나 일방적으로 성공신화에만 노출되어 있다. 또한 사회생활을 통해 만난 사람들일수록, 본인의 경력에 관한 한 누가 봐도 듣기에 좋은 것만 얘기하려 하지 굳이 본인의 실패 사례를 공유하지는 않는다. 게다가 미래에 잘 될 수도 있는 사람한테 굳이 개인적으로 부정적인 얘기를 해서 앞길을 막을 필요는 무언가? 우리는 이미 다년간의 사회생활을 통해 입조심하는 법을 배웠을 뿐이다.
MBA를 만만하게 봐서는 안된다. 들어가기도 힘들고 들어간 후 성공하기도 쉽지 않다. 우선, 글로벌 Top MBA 대학에 대한 입학 진입 장벽이 여전히 높다. MBA를 꿈꾸는 전 세계의 젊고 똑똑한 직장인들과 경쟁해야 하기 때문이다. 평가요소도 참으로 다방면이다. 지능(GMAT), 경력(이력서), 리더십(에세이/면접/팀플)을 골고루 평가한다. 그래서 오랜 기간 MBA 문을 두들겨 보다가 조용히 접는 분들도 더러 있다. 굳이 떨어졌다고 동네방네 소문내고 다니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모르고 있을 뿐이다.
게다가 MBA에 합격했다고 해서 이게 끝이 아니다. 물론 경제적인 여유가 있고 2년 공백 이후에도 돌아갈 직장이 확보된 경우라면 MBA 입학 통지를 받음과 동시에 '고생 끝, 행복 시작!'일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MBA 비용을 100% 충당할 여유 자금이 없는 상태에서 성공적인 커리어 체인지가 목표라면 이야기가 매우 달라진다. 졸업 후 몇 년 안에 MBA 투자 금액을 회수할 만큼 괜찮은 직장을 잡아야 하는데 그 리쿠르팅 과정이 결코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Why MBA는 MBA 에세이 및 인터뷰의 1순위 질문이다. 유명 대학교의 MBA 타이틀을 달고 싶어서 라고 대답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겠지만 실전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해외 MBA에 오는 사람들의 목적은 크게 아래 3가지로 나뉜다.
1. 해외 취업을 하고자
2. 한국 취업을 하고자 (컨설팅 or 기업 전략)
3. 경영 지식을 쌓고자 (기업 스폰서십 or 패밀리 비즈니스)
1번과 2번은 주로 현 직장을 퇴사하고 개인 사비로 학비를 충당하며 MBA 재학 중 적극적 취업활동을 해야 하는 사람이며, 3번은 주로 기업에서 스폰을 받고 경영지식 및 글로벌 경험을 쌓고자 오기 때문에 재학 중에 취업 활동이 필요가 없다. 원론적으로 봤을 때, 세 가지 케이스 모두 명확하고 실현 가능한 커리어 목표를 제시할 뿐 아니라 목표를 달성하는 데 MBA 학위가 어떻게 도움이 될는지를 에세이와 인터뷰를 통해서 보여주는 것이 좋다.
지원자의 입장에서는 재정 안전성과 고용 보장의 유무가 큰 차이를 낳는다. 1번과 2번의 경우 학비 부담, 기회비용, 고용 리스크를 모두 가져 가야 하기 때문이다. 유럽 및 미국 MBA 비용이 억 단위를 상회한다. 원론적인 에세이 답변을 적기 전에 “그 돈, 어떻게 갚을 계획이니?”부터 시작하면 답이 더 빠를지도 모르겠다.
매년 졸업생 취업 현황을 공개해야 하는 MBA 학교 측에서는,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외국인의 현지 취업이 상당히 걱정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1번 지원자의 경우 더 구체적이고 실현 가능성이 있는 커리어 목표와 달성 계획을 가지고 학교를 설득해야 한다. 어쨌거나 MBA는 비즈니스 관리자 양성소이지 학자가 될 사람을 뽑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가장 이상적인 케이스로 리쿠르팅과 학업 정진을 동시에 달성할 수도 있다. 단, MBA 생활의 질은 리쿠르팅 결과에 따라 크게 좌지우지된다는 걸 알고 갔으면 좋겠다. 나처럼 운이 나쁜 경우는 2년 내내 리쿠르팅만 하다가 졸업하기 십상이다. 그러므로, 내가 왜 가고 싶은지, 내 목표가 무엇이며, 그를 달성할 만한 가능성이 있는지를 지금부터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만약 아래 항목이 MBA를 가고자 하는 첫 번째, 혹은 유일한 이유라면 결단코 반대다.
1. MBA라고 하면 뭔가 멋있어 보인다
2. 번아웃 상태, 잠시 휴식이 필요하다
물론 개인적으로 충분한 여유자금이 있고 2년 간의 업무 공백 이후에도 돌아갈 직장이 있다면 전혀 문제 될 것이 없다. 만약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왜 굳이 어렵고 힘든 GMAT 시험 봐가면서 해외 MBA에 오렸는지 반문하고 싶다. 몇 개월 이상 GMAT 시험공부할 시간에 본인 정신 건강 먼저 챙기고, MBA 2년 학비 및 생활비 낼 돈으로 서울 근교에 작은 아파트 한 채 사는 게 더 나을 텐데...
결국, Why MBA는 나의 커리어 개발 목표에 부합하는지, 그리고 MBA에 수반되는 비용과 리스크를 감당할 자신이 있는지를 모두 고려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나의 사례는 결코 바람직한 케이스가 아니다. 평균 근속연수 10년 이상을 자랑하는 전 직장을 뒤로한 채 모든 걸 바닥부터 다시 시작하겠다는 마음가짐으로 미국에 왔다. 결혼 자금으로 쓰였을 수도 있는 내 6년간의 저축은 현지 생활 첫 6개월 만에 모두 증발해 버렸다. MBA 입학 전후로 한국에서 얻은 대학 졸업장과 직장 경력이 미국에서 얼마나 먹힐지 감이 잘 오지도 않았다.
나의 MBA 합격 소식을 주위에 알렸을 때 주위의 반응은 부러움보다 안쓰러움에 더 가까웠던 것 같다. 그들은 모두 나의 무모한 용기에 박수를 보내줬다. 한국 사회에서 결혼 적령기를 넘어선 미혼 여성이 뒤늦게 새로운 도전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무모한 짓인지 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여기까지 끌고 왔던 건 5할이 자기만족, 3할이 자기 확신, 2할이 새로운 기회였다. 다시 말하면 50%가 해외 Top MBA 합격에 대한 자기 성취감, 50%가 MBA에서 잘할 수 있을 거라는 나에 대한 근거 없는 믿음이 아니었나 싶다. 내가 봐도 참 무모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지금이 아니라면 내 인생에 두 번 다시 이렇게 무모한 도전을 해 보지 못할 거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결국 MBA가 주는 가치는 '기회'이다. 해외 MBA에 와보지 않았다면 언제 한번 골드만삭스 매니저와 네트워킹을 할 기회가 있었을까? 여기에 오지 않았다면 과연 내 평생에 워런 버핏이랑 같이 점심을 먹을 수 있었을까? 주변의 학교 동기 및 선배들의 이야기이다. 한국에서 평범한 월급쟁이로만 살았다면 절대 겪어 보지 못했을 일들이 여기서는 가능하더라.
국적을 막론하고 그 누구든 전 직장에 100% 만족한다면 이 비싼 MBA 학위를 위해 퇴사하지 않는다. 다들 기존 시스템과는 다른 새로운 변화와 기회를 찾아 나오는 것이며 MBA는 그 높은 투자 비용만큼 High-quality, Worldwide 한 기회를 주는 곳이다. 내가 하기 나름에 따라 MBA 전후로 근무 국가(Location), 업종(Industry), 또는 직무(Function)를 바꿀 수도 있다.
그러나 MBA는 기회만 제공할 뿐, 결코 결과를 보장하지 않는다. 어떻게든 졸업 후 원하는 곳에 취업이 되어야 나의 투자 수익을 거둘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MBA는 개개인의 성공을 보장해 주지 않는다. 다만 학교의 네임밸류 및 졸업생 네트워크를 빌려 관심 있는 기업에 컨택할 수 있는 발판만 마련해 줄 뿐이다. 여기서는 시작도 끝도, 그 과정도 오롯이 나의 몫이다.
다시 말하지만 MBA는 억 단위의 돈이 왔다 갔다 하는 곳이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어떻게든 그 투자금액을 메꾸겠다는 마음가짐만 있다면, Why Not MBA?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어느 학교가 좋은지,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를 묻는다. 이런 피상적인 질문들이야 얼마든지 답변해 줄 수 있지만, Why MBA에 대한 답변만큼은 에세이 용도 아니고, 지인 홍보용도 아니고, 오롯이 나 스스로를 위함이기도 하다. MBA를 시작한 후 지치고 힘들 때마다 내 정신줄을 붙들어 메는 것도 결국은 내 몫이 더라. 물론 경험자의 이야기를 들어 보는 것도 굉장히 도움이 된다. 하지만 Why MBA는 내가 처한 상황과 목표에 따라 매우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스스로 여과할 건 여과해서 수용하자.
주위의 그 누구도 내가 내린 결정에 대신 책임져 주지 않는다. 그 누구도 나의 억 단위 채무를 대신 갚아 줄 리 없고, MBA에 매달리며 보낸 지난 몇 년간의 시간을 내 마음대로 되돌리 수도 없다. 최종 결정에 대한 책임은 나 자신이 지게 되어 있다. 그래서 더 신중하고 치밀해야 한다. 알게 모르게 MBA에 와서 후회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때는 당장이라도 뛰쳐나오고 싶은 직장이었지만, 여기 와보니 이것도 결코 답은 아니더라. 남들 다 부러워하는 좋은 회사였는데 왜 굳이 나와서 이 고생을 하고 있는가... 그렇지만 이미 너무 먼 길을 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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