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obokchi Feb 04. 2022

'최고'의 사랑은 상록수 다방에서

1986년 1월의 첫 만남 

정확히 77일이었다. 생판 남이던 남녀가 한순간 부부가 되겠다며 예식장에 손을 잡고 들어가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결혼이란 ‘사랑하는 남녀가 둘이 만나 평생 같이 살기로 약속을 하는 것’ 아닌가? 가끔 TV에 나와 만난 지 2, 3개월 만에 결혼했다는 부부의 이야기를 들으며 손틀막 하던 사람이 바로 나다. 그러다 얼마 전 엄마와 통화를 하다 그 속전속결 결혼의 주인공이 내 부모라는 걸 알게 된 것이다. ‘라떼는’으로 시작하는 결혼 얘기를 35년 동안 들어왔는데, 그러니까 나는 그동안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던 거다. 그래서 각 잡고 제대로 들어 보기로 했다. 86년 1월의 이야기를.


1986년 어느 추운 겨울 상록수 다방에서

첫 만남은 1986년 1월 5일 오전 10시께였다. 숭례문 로터리에서 작은 골목으로 들어간 곳에 위치한 건물 2층에 ‘상록수 다방’이 있었다. 숭례문이 살짝 보이는 창가 자리 큰 테이블 자리에 젊은 두 남녀와 나이 지긋한 어른들 일곱 명이 마주했다. 엄마는 외할머니와 큰외삼촌, 이모부 사이에, 아빠는 할아버지와 고모할머니 사이에 앉았다. 맞선의 두 주인공은 말이 없었다. 아니, 정확히 이야기하면 말을 할 타이밍이 주어지지 않았다. 어른들은 어색한 분위기를 풀어보고자 그들 사이에 유일한 공통점인 고향을 주제로 쉴 새 없이 이야기를 나누었기 때문이다.


illusterated by artist ozo


어색한 대화를 나누면서도 맞선 양가 집안 어른들은 재빠르게 맞은편에 앉은 사람들에 대해 분석했던 모양이다. 할아버지와 고모할머니는 참한 엄마가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 비록 엄마는 안경을 살짝 내리고 그 너머로 자신을 뚫어지게 쳐다보던 고모할머니의 눈빛에 바짝 긴장했지만. 외삼촌과 이모부는 이따금 아빠에게 질문을 던졌고 간단명료하게 대답했다. 기껏해야 20대 후반에 숫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두 사람이 어른들 틈바구니에 앉아있는 모습이라니. 36년을 함께 산 내 부모의 첫 만남을 상상하니 괜스레 설레면서도 웃음이 나온다.


대단한 시골 네트워크가 놓은 오작교

이 맞선의 숨은 주역은 엄마의 둘째 언니, 우리 이모였다. 복산치에서 옥천 박家네로 시집간 이모네 시댁은 방앗간을 운영했다. 이모의 시댁 집 맞은편에는 버스정류장이 있었고, 정류장 옆에 방앗간이 있었다. 어느 주말 시부모의 일을 돕던 이모의 눈에 버스정류장에 서 있던 깔끔한 젊은 청년이 눈에 들어왔다. 청년이 옆구리에 끼고 있던 두꺼운 책은 ‘지적인 남자’의 이미지를 풍겨주었다. 아빠였다. 성남에서 공무원 생활을 하고 있던 아빠는 고향 친구의 결혼식 사회 부탁을 받고 고향에 내려와 있었다. 그날은 결혼식 당일이었고, 아빠는 동네 친구이자 항렬로는 할아버지뻘 되는 재원과 함께 시내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던 참이었다. 이모는 그런 그 두 사람을 힐끗힐끗 지켜보고 있었다. 아빠와 같이 있던 친구 재원은 우리 외가 집안 어른의 처남이었던 것이었다. 좁은 시골 마을의 인적 네트워크가 힘을 발휘하는 순간이었다.


   이모: 시방 그 버스정류장에서 같이 얘기하던 사람이 아재 친구요?

   친구 재원: 예, 저기 모라치 있지라? 거 관주 씨네 큰아들. 성남서 공무원 한다요. 와요?

   이모: 잉 공무원, 딱 어울리게 생겼고만. 아니 우리 막내 동상이 결혼 안 허고 있자네.

예나 지금이나 학식 있는 사람, 공무원을 참 좋아하는 이모는 그 길로 시어버지에게 달려가 ‘관주 씨네 큰아들’ 이야기를 꺼냈다. 마침 관주 씨, 그러니까 우리 할아버지는 옥천 방앗간 단골손님이었다. 이런 걸 두고 천생연분이라고 하는 건지, 사실 할아버지도 방앗실 며느리인 이모를 눈여겨보고 있었다. 참한 외모에 성격마저 싹싹한 이모를 보며 내심 ‘아따, 딱 저런 며느리 하나 있었으면 좋것다’라고 생각했다 한다. 그런데 방앗간 박 씨가 즈그 며느리 동생과 아들 사이에 선자리를 놓아보자고 찾아온 것이다. 재고 자시고 할 것 없이 그렇게 장성 모라치 청년과 복산치 아가씨의 맞선이 성사됐다.


용인에서 경방회사에 다니던 엄마는 맞선 제안이 달갑지 않았다. 7남매의 장남에다 재미없는 공무원이라니. 처음에는 거절했다. 그런 막내딸을 선자리로 이끈 건 외할머니였다. 직업도 안정적이고 서로 집안 사정도 뻔히 아는 사이이니 살면서 고생하는 일은 없을 거라고 딸을 설득했다. 아빠는 ‘옥천 방앗실 며느리 동생’이라는 것 말고는 들은 게 없었다. 그저 나이는 또래일 것이라 추측했고 고향집이 복산치라는 것 정도만 알고 있었다. 서로 얼굴 한 번 안 보고 결혼도 하던 시절이라, 그 정도 정보면 충분했다. 사실 맞선을 본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어쩌면 다행이었는지 모르겠다.


일단 첫인상은 ‘호감’이었다

3초 만에 호감의 여부를 결정한다는 첫인상은 어땠는지 궁금했다. 엄마는 아빠를 옷차림은 이상했지만 머리부터 발끝까지 참 깔끔한 사람으로 기억했다. 분홍색의 양장을 곱게 차려입은 엄마와 달리 아빠는 위아래 색이 다른 양복을 입고 나왔다. 참 어지간히도 색이 달랐던 모양인지 엄마는 그 ‘깨는’ 옷차림이 별로였다. 아빠에게도 나름 안타까운(?) 사연이 있었다. 전날 양복을 잘 다려 걸어 놓았는데, 다음 날 아침 동생이 바지만 홀랑 입고 나가버린 것이었다. 패션에 참으로 관대한 아빠는 상ㆍ하의 색이 다른 양복쯤이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다른 바지를 주워 입고 집을 나섰다. 다행히도 깨는 옷차림을 살린 것은 ‘책’이었다. 도대체 왜 그렇게 책을 옆구리에 끼고 다녔는지 모르겠지만, 선보는 자리에도 그렇게 나갔던 아빠였다. 엄마도 이모처럼 책을 끼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아침 햇살에 비춘 이슬’ 엄마의 첫인상에 대한 아빠의 묘사였다. 아빠에게 집요하게 캐물어 얻은 대답인지라 정말 36년 전 느꼈던 감정인지, 내가 물은 순간 급조해낸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80년대 연애편지에 등장할 것 같은 아빠의 이 서정적인 표현을 해석하자면, 그러니까 그냥 마음에 들었다는 것이다. 


55점만 달라던 그 남자

상록수 다방에서 어색한 대화가 한 시간쯤 이어졌을까. 이제 슬슬 자리를 파하자는 어른들의 말에 아빠는 조급해졌다. 당사자들은 제대로 이야기 한마디 못 나눴는데 집에 가자니. 아빠는 용기를 끌어 모아 둘은 남아서 차 한잔만 더 하고 가겠다며 어른들을 보내고 엄마를 붙잡았다. 두 사람은 근처에 식당인지 다방인지에 들어갔다고 한다. 36년 전의 일을 이 정도로 생각해 내는 것도 대단한 기억력이다. 어디에 들어갔는지, 무슨 대화를 나누었는지는 몰라도 엄마는 이 한 마디를 아직도 정확하게 기억한다.


  “저한테 55점만 주세요”


왜 55점이었냐는 내 질문에 아빠는 말했다. 50점은 반 토막이니 거기서 5점만 더 얹어 달라는 의미였다고. 아빠 딴에는 호감이자 자신감의 표현이었다고 하는데, 내 생각에는 살짝 떠보는 의도도 있었지 않았나 싶다. 살짝 당황스러운 점수 요구에 엄마는 그저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illusterated by artist ozo

‘언발란스한 양복을 입고 왔지만 옆구리에 책을 끼어든’ 깔끔한 남자'와 ‘아침 햇살에 비춘 이슬’ 같이 곱고 예쁘던 여자는 그렇게 만나 서로에게 ‘호감’을 가졌다. 그해 가을께 결혼식을 올리겠지, 하던 이 커플의 추측은 지나치게 여유로운 판단이었다. 어른들의 주도하에 무서운 속도로 추진된 결혼은 예상보다 두 계절이나 앞당겨졌다. 그렇게 엄마 ' 양'과 아빠 ' 군'은 만난 지 77일 만인 3월 23일, 꽃피는 봄에 결혼식을 올렸다. 


최고의 사랑은 그렇게 상록수 다방에서 시작해 신혼 예식장에서 결실을 맺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