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미진진한 엄마의 데이트 史
조금 억울하게(?)도 엄마는 아빠를 만나기 전 특별한 연애경험이 없다 했다. 그래서 늘 자식들에겐 엄마가 못해봤으니 너희라도 하라며 ‘많이 만나보라’고 이야기했다. 애석하게도 큰딸은 엄마의 연애운을 물려받았는지 이 꽃 청춘에 연애를 징그럽게 못하고 있다. 하지만 또 엄마 탓만 할 수 없는 게 엄마는 사귄 남자가 없었을 뿐 사실 초절정 인기녀였다.
허구 섞인 옛이야기로 치부할 수 없는 이유는, 20대의 엄마 사진을 보면 그냥 한마디로 ‘존예’였기 때문이다. 큰 눈은 아니지만 살짝 쌍꺼풀이 져서 웃을 때마다 이효리 뺨치는 눈웃음이 발사됐다. 코는 지금 봐도 정말 신기할 정도로 곧 세워져 있다. 입은 작지만 올망졸망하다. 그 눈코입이 조화를 이룬 앳된 얼굴은 예쁘다. 패션 센스 또한 대단했다. 파란색 양장에 빨간 구두를 매치했는데 전혀 촌스럽지가 않다. 오버핏 코트에 롱 스커트를 매치한 룩은 지금 내가 입어보고 싶은 스타일이다. 고운 얼굴에 옷도 센스 있게 입은 아가씨를 주변에서 가만히 둘리 없었다.
그 많았던 연애편지는 어디로 갔을까
처음 이성을 만나 데이트라는 걸 한 건 고등학교 졸업 무렵이었다고 한다. 동네 살던 친척 오빠가 입대를 했는데 부대 선임이 여자를 소개해달라 한 모양이다. 상대 여성은 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엄마였다. 군인 아저씨와 곧 성인이 될 여고생은 그렇게 편지를 주고받게 됐다고 한다. 얼마 있어 엄마는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을 찾아 서울로 올라왔고, 군인 아저씨 조00은 민간인이 되어 구로에 있는 대한전선에 취직을 했다. 저 멀리서 편지로나마 안부를 전하던 남녀가 같은 서울 땅에 있으니 어떡하겠는가? 만나야지. 엄마는 바로 위 셋째 이모를 대동하고 서울의 모 다방에서 남자를 만났다. 첫 만남을 가진 후 몇 번 데이트도 하고 그랬단다. 그러다 엄마의 철벽을 치게 된 일이 생겼으니, 민속촌에 갔을 때의 일이다. 우연히 점집을 발견한 조00은 혼자 점을 보러 들어갔다. 점쟁이가 ‘3년 안에 결혼하겠다’고 했는데, 나오자마자 엄마에게 그 말을 전한 것이다. 상대가 누구라고 일언반구도 꺼내지 않았건만 숙기 없던 갓 스무 살의 아가씨는 지레 겁을 먹었다. ‘아니 만난 지 얼마나 됐다고 결혼? 난 아직 이렇게 어린데 결혼?’ 결혼이라는 단어가 무서웠던 엄마는 그날 이후로 조00의 연락을 피했다. 남자로서는 영문도 모르고 연락이 닿지 않으니 얼마나 당황했을까? 애타는 마음에 이틀에 한 번 꼴로 편지를 써서 등기로 부쳤지만 답장은 영원히 받지 못했다.
이후에 엄마는 회사를 옮겼다. 용인에 있는 방직회사였는데, 기숙사를 제공해준다는 고향 친구의 소개로 취직을 했다. 그곳에서 기숙생활을 하며 윤00과 김00과 베프가 됐다. 김00은 당시 사내연애 중이었기 때문에, 애인이 없던 윤00과 주말이면 서울도 가고 산에도 가며 가깝게 지냈다. 한 번은 윤00과 강화도 마니산에 갔다가 또래 남자 등산객 둘을 만나게 됐다 한다. 자연스럽게 서로 연락처를 주고받았고 그중 한 남자와는 따로 보게 됐다. 경희대학교 경리과에서 일하던 박00과도 몇 번 데이트를 했는데, 응큼한 남자 속을 알기에 너무 순진했던 엄마는 또다시 줄행랑을 치게 된다. 어느 주말 서울에 사는 큰오빠 집에 가는 길에 박00을 만났다. 비 오는 저녁 버스 터미널에 마중 나온 박00은 조금 걷자고 했다. 나란히 서서 빗길을 걷는데, 박00은 자꾸 으슥한 곳으로 들어가더니 갑자기 엄마의 허리춤을 잡아챘다. 그놈의 무례한 키스 시도에 질겁한 엄마는 냅다 도망가서 가슴을 쓸어내렸다. 엄마의 자만추는 그렇게 아찔한 기억이 됐다.
철벽이기에 당당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연애를 하고 있지 않은 청춘들에게는 언제나 주변의 따스한 오지랖이 넘쳐난다. 엄마에겐 직장 동료들이 그랬다. 이제 막 결혼한 동기가 시아주버님을 소개해 주겠다고도 했고, 동료 남자 친구의 사촌 형을 만나기도 했고, 결혼식에 갔다 신랑 친구의 눈에 들어 뜨거운 구애를 받기도 했다. 남자를 잘 모르는 숙맥이었어도 취향은 확고했다. 본인 성격만큼 깔끔한 외모, 그리고 체격이 있는 사람을 좋아했고 지금도 그렇다. 부모의 이성에 대한 취향도 유전된다는 게 과학적으로 입증이 된 것인지는 알 길이 없으나,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는 유효한 가설이 아닐까 싶다. 왜소한 체격은 ‘불호’하는 엄마와 나의 공통적 취향 덕분에 남자 이야기를 할 때 우리 모녀는 유독 쿵작이 잘 맞는다. 아무튼 대쪽 같은 취향을 가진 젊은 시절의 엄마는 수많은 소개팅 제안을 받았다. 실제로 몇 번 소개를 받아 만나기도 했는데 상대 남자가 소심해 보인다거나, 너무 마른 체형이면 애프터 따윈 없었다. 호감 있는 이성이 앞에 있어야 요조숙녀 흉내라도 내볼 텐데, 마음에 눈곱만큼도 차지 않으니 오히려 당당해져서 당차게 거절했다고 한다.
많은 소개팅 중에서도 전설급 일화가 있는데, 어찌나 인상적(?)이었는지 지금도 그 이야기만 나오면 엄마의 목소리는 조금 격양되곤 한다. 회사 단짝이었던 윤00이 퇴직 후 서울에 있는 운수회사에 다니던 때였다. 새 회사에서 알게 된 남자인데 정말 착하고 순박한 사람이라며 엄마에게 만나보라고 했다. 남자는 착했지만 소심했다. 엄마와 만날 때면 긴장해서 말을 더듬곤 했다. 마음엔 없었지만 친한 친구가 다리를 놓았으니 몇 번은 더 만났다. 그러던 어느 날 함께 자연농원(지금은 에버랜드)에 갔고, 바이킹을 타게 됐다. 지금도 엄마는 스릴 같은 걸 극혐 하는데, 바이킹은 오죽이나 무서웠을까. 그런데 세상에나 마상에나. 옆에 앉은 남자는 눈조차 뜨지 못하고 더 벌벌 떠는 것이었다. 군에서 낙하산 훈련을 받다가 고소공포증이 생겼다고 했다.
‘그래도 그렇지 나를 지켜줘도 모자랄 판에 바이킹 타는 걸 저렇게나 무서워한다고?’
그 모습에 질색팔색 하며 엄마는 그 순진남과 안녕을 고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먼 훗날 두 사람은 다시 만나게 되는데, 이유인즉슨 친구 윤00이 그 순진남과 결혼을 했기 때문이다. 한때 단짝처럼 지냈지만 서로 다른 회사에 다니면서 점점 연락이 뜸해지게 됐고, 비슷한 시기에 결혼을 했다. 거의 연락이 끊긴 무렵 어느 날 우리 집으로 윤00이 전화를 걸어왔다고 한다. 어렴풋이 아빠의 이름을 기억한 그녀가 전화국에 물어 우리 집 전화번호를 알아낸 것이다. 그렇게 다시 연락이 닿아 자주는 아니어도 종종 만나기도 했다고 한다. 십 년 전인가에는 두 부부가 모여 술자리를 가진 적도 있었다. 아빠도 이 기막힌 사연을 알고 있었고 이미 오래전 재미있는 추억이라고 하하호호 웃어넘겼다. 오랜만에 과거의 남자(?)를 만난 엄마는 애 셋을 키우며 생긴 능글맞음을 발동시켜 농담을 건넸다. 하지만 여전히 착한 과거남은 나이가 들었어도 그대로였다.
엄마: 00 씨, 저 보고 싶었어요?
00 씨: ㄴ..ㄴ..ㅔ…그..ㄱ..ㄹㅓㅁ요…
올해로 환갑이 된 엄마는 눈가에 주름이 지고 머리카락도 가늘어졌지만, 여전히 예쁘다. 우리 엄마라서 그렇기도 하지만 나름 까다로운 미적 기준을 가진 내 눈엔 정말 곱다. 사실 예쁘고 잘생긴 사람은 본인이 그렇다는 걸 잘 안다. ‘주변에서 엄마한테 그렇게 예쁘다네’라고 말하면 내가 자화자찬한다고 놀리지만 사실 인정할 건 인정한다. 근데 왜 나한텐 그 미모를 물려주지 않았냐고 따져 물으면 ‘나는 예쁘게 낳는데 네가 그렇게 컸다’고 하는 바람에 말문이 막혀버린다. 환갑을 넘은 엄마에게 서른 중반의 딸이 바라는 것은 오직 하나, 세월의 벽에 오래오래 맞서 지금처럼만 건강하고 예쁜 엄마로 남아 주길, 우리 세 형제에게 조금 더 오래 초절정 미모의 엄마가 되어 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