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마을에서 온 편지]허상에서 시작한 바질 포레스트

시골 바질 밭에서 인심났다

by Gobokchi

<신사마을에서 온 편지>는...

아빠 나이 16, 엄마 나이 20. 사는 마을은 달랐지만 동향인 부모님은 일을 하기 위해 어린 나이에 고향을 떠났습니다. <신사마을에서 온 편지>는 40년 만에 고향집으로 돌아간 부모님과 카톡으로 나눈 시골살이 이야기를 엄마아빠만의 갬성을 담아 전합니다.



시골으로 택배를 하나 보냈다. 우연히 허브 씨앗을 2, 3천 원이면 살 수 있는 쇼핑몰을 발견하고 몇 개를 골라 아빠 이름으로 주문을 넣었다. 혼자 살면서 집에서 사부작사부작 요리해 먹기를 좋아하는데, 장바구니 목록에 자주 넣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이 허브이기 때문이다.


바질이나 루꼴라를 넣어 샐러드를 해먹기도 하고, 딜과 요거트를 섞어 그리스식 차지키 소스를 만들어먹기도 한다. 향이 강한 음식을 싫다고 고수는 안 먹어도 이 허브만큼은 자주 손이 가기 때문이다. 근데 이 작은 이파리들이 뭐 그렇게 비싼지, 한 주먹 거리가 3천 원이나 하니 말이다. 그래서 이 참에 씨앗을 키워 부모님 댁에서 자란 허브를 갖다 먹어볼까 싶은 요량이었다.


“딸, 이게 뭐냐? 뭐 택배에 씨앗이 잔뜩 있다”

-어 아빠, 그거 우리 집 텃밭에 좀 심어줘. 허븐데, 그거 서울에서 사 먹으려면 엄청 비싸단 말야.


시작은 리틀 포레스트였다

치커리, 바질, 로메인, 딜… 아빠에겐 생전 처음 들어보는 것들 투성이었을 테지. 며칠 후면 시골집에 내려갈 예정이라, 우선 몇 개만 심어달라고 부탁했다. 심은지 일주일이나 되었을까. 허브는 싹도 나지 않았다. 아무리 빨리 자라더라도 일주일 남짓은 너무 짧은 시간이었고, 날씨도 뙤약볕이 내리쬐는 한 여름이었기 때문이다. 나름 ‘리틀 포레스트’를 꿈꾸며 여름휴가 때 시골집에서 바질 파스타를 해 먹으려 했던 나의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다.


그 후로 한 달이 지났을 무렵, 가족 단톡방에 사진이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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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바질이 많이 자랐는데 채취하여 보내줄까, 딸?



바질이 이렇게 잘 자라는 허브였나? 언뜻 보면 깻잎밭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바질을 심은 땅 가득히 파란 잎이 피어올라있었다. 바질과 루꼴라도 함께 심었는데, 루꼴라는 할머니가 잡초인 줄 알고 몽땅 뽑아 버리셨다고 한다. 바질도 할머니 살아생전 본 적 없는 풀이었을 텐데, 왜 뽑지 않고 놔두셨는진 모를 일이지만. 아무튼 그렇게 할머니의 밭메기에서 살아남은 바질은 몇 차례 태풍이 지나갔음에도 끄떡없이 무럭무럭 자라났다.


바질 밭에서도 인심 난다

추석을 쇠고 잠시 도시(?) 집에 올라온 엄마가 바질을 모두 따왔다. 살충제를 하나도 치지 않아서 군데군데 벌레가 먹은 흔적이 많았지만, 바질을 담아온 통 뚜껑을 열자마자 엄청난 향이 느껴졌다. 도시 마트에서 산 바질에서는 느껴본 적 없는 강력한 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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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많은 바질을 처리(?)할 방법은 하나뿐이다. 바질 페스토. 추석 연휴 내내 집에서 바질을 씻고 다듬었다. (양쪽 엄지손톱이 새까매지도록) 올리브유 반통을 넣고 견과류와 파마산가루, 소금을 넣고 믹서기에 돌리길 반복했다. 집안일 안 하려고 추석에는 시골집에도 안 내려가는데 이렇게 사서 고생이라니. 바질이 어찌나 많았는지 다 만들고 보니 500ml 유리 자에 가득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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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 남동생 분량을 남겨두고 집에 가져와, 회사 직원들에게도 나누어 주었다. 방부제가 하나도 없어 공기와 닿는 면은 색이 금방 변한다는 것 말고 바질 페스토는 너무 완벽하리만큼 맛있었다. 남은 잎은 집에서 피자를 만들어 먹을 때도 활용했다. 태어나서 이렇게 바질을 풍성하게 먹어본 적이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풍족하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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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한 생명력 바질, 엔들리스 바질 지옥

이제 겨우 바질을 해치웠을 무렵, 또다시 카톡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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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바질이 너무나 잘 자라고 있음.


뭐든 과유불급이라 했지,

이 많은 장성산 바질을 또 어떻게 한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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