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살 아이의 봄(2022.03-2022.05)
이젠 그냥 좀 내버려 둘까?
엄마의 예민함은 플러스가 될 때도 있고 마이너스가 될 때도 있다.
아이들의 생명력은 내 생각보다 훨씬 강하다. 어쩌면 아이가 세상에 적응하는 속도도 비슷할지 모른다. 아이의 부족한 사회성은 여전히 잡음을 일으키지만, 때로는 엄마의 민감성이 아이를 더 힘들게 만들기도 한다.
길가에서 마주칠 때마다 내 아이를 슬쩍 피하던 또래 하나가 있었다. 같은 단지, 한 동 건너 사는 친구는 한때나마 축구 수업을 함께 들었고 요즘엔 같은 태권도장에 다닌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친구는 내 아이에게 인사를 하지 않았다. 엄마의 채근에 늘 먼저 인사하는 아이의 노력이 무상하게도, 친구는 마치 내 아이를 못 본 듯 지나쳤다. 태권도 수업이 끝나면, 그 친구와 또 다른 친구와 함께 도망가듯 뛰어가며 “쟤, 온다”라고 말하곤 했다. 벌써부터 친구들의 외면을 받는구나. 그 모습을 우연히 본 나는 아이를 뒤따르며 몰래 눈물을 훔쳤다.
그런데 오늘 왠일인지 태권도가 끝나고 아이가 친구와 놀겠다고 말한다. 놀이터에 나가보니 아이를 피하며 달려간 두 명의 친구가 기다리고 있다. 아이들 세 명은 서로 술래잡기를 하며 놀았고, 내 아이와 그 친구는 짝을 지어 다른 친구를 피해 다녔다. 그렇게 삼십여 분 논 뒤, 아이가 친구에게 "안녕" 인사를 건넸고 그 친구도 "안녕"이라고 대답했다.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솔직히 친구를 원망하는 마음도 있었다. 그러다 '내 아이가 혹시 친구에게 잘못한 일이 있나?'로 화살이 돌아갔다. 안녕이라는 말에도 꿋꿋이 침묵하던 친구를 보며 “친구가 인사하기 부끄럽나 보다”라는 말로 얼버부리면서도, '혹시 네가 잘못해서 그런 거 아니니?'라는 말이 입가에 맴돌았다. 그런데 오늘 이렇게 자연스러운 어울림이라니. 나는 자꾸 아이의 능력을 내 생각 안에 가둔다. 이제는 아이를 내버려 둬야 할지도 모르겠다. 아이가 어떤 말과 행동을 하든, 한 템포 늦춰 상황을 지켜보는 자세가 필요한지 모르겠다.
"손 잡지 마."
하굣길, 나란히 손을 잡고 걷는 여자 아이들 중 어린이집 친구를 발견한 아이가 쪼르르 달려가 여자 아이의 손을 잡는다. 여자 아이는 그게 싫은 지 자꾸 손을 휘휘 내 젖는다. 아이는 그것도 모르고 계속해서 손을 잡기 위해 다가가고 있다. 손 잡지 마. 여자 아이 옆에 선 할머니가 "그냥 손 잡아."라고 말하는 찰나, 내가 아이를 향해 던진 말이었다. 나는 아이를 옆에 세우고 차디찬 목소리로 말했다.
"다른 아이의 몸이잖아. 손을 잡고 싶으면 먼저 말을 해야지."
여자 아이라서 더 신경이 쓰였나 보다. 옆의 할머니는 내가 냉정한 엄마라고 생각할 테지만, 그 상황에서 나는 그 말밖에 할 수가 없었다. 조금 더 부드럽게 얘기했으면 좋았을 텐데, 친구가 싫어하는지도 모르고 다짜고짜 손을 잡으려는 아이의 무신경에 신경이 곤두섰다. 아이가 스스로 깨치는 과정도 필요하지만, 엄마로서는 다른 친구들에게 '귀찮은 아이'란 이미지가 만들어질까 걱정이다. 아이를 믿어야 하는데, 어느 정도 믿어야 할지, 어떻게 개입을 해야 할지 늘 고민이다.
정답은 없다.
정답을 찾아가는 과정만 있을 뿐.
시행착오를 무서워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