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살 아이의 봄(2022.03-2022.05)
너도 아프니? 나도 아프다
아이들 셋만 모여도 편이 나뉜다.
한 친구와 함께 놀다 다른 친구 한 명만 더 모여도 마음이 아슬아슬하다. 두 명의 친구들이 내 아이와 같이 놀지 않을까 봐. 내 아이와 노는 게 재미없다는 것을 깨닫고 둘이서만 놀까 봐. 아이는 여전히 친구 사귀는 게 어색하다. 친해지기 위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친구의 이름을 부르는 것도 함께 놀자라고 말하는 것도 힘들다. 누군가 다가와 같이 놀자고 말해도 대답은 늘 한 박자씩 늦다.
내 아이와 다른 아이가 나란히 서 있어도, 지나가던 친구가 부르는 이름은 내 아이가 아니다. 있으나 없으나 상관없는 존재. 아직 여덟 살, 어린 아이들이라 누군가를 따돌리거나 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같이 어울렸을 때 재미있거나 그렇지 않다는 건 단번에 알 수 있다. 사실 그 사이에서 짜증만 안 내도 다행일 것 같다. 아이는 여전히 1등에 집착한다. 술래도 하기 싫고 자신이 잘 모르는 놀이도 하지 않으려 한다. 또래 무리에만 서면 왠지 겉도는 것 같은 아이가 눈에 밟힌다. 아이들 사이에서 있는 일에는 최대한 개입을 하지 않으려 하지만 어떨 때는 가슴이 타들어간다. 안쓰러움과 답답함과 막막한 감정, 그 언저리에 내가 있다.
며칠 전, 내 마음속에 칼날이 섰다. 아이를 향한 칼날이 내 안으로 파고든다. 아프다. 너도 많이 아프겠지. 가끔씩 이런 날들이 있다. 아이의 남다름이 유독 도드라져 보일 때 나는 자제력을 잃는다. 장난꾸러기 외동아들을 키우는, 아들을 제대로 혼내지 못하는 아들바라기 코스프레가 나을 때도 있는 것 같다.
하굣길, 아이에게 "가방 들어줄까?" 물었더니 아이는 대답도 하지 않고 가방을 바닥에 던져 놓은 채 앞으로 뛰어간다. 길이 좁아 대여섯 명의 아이들이 천천히 걷고 있었는데 아이가 이들을 밀치며 갔나 보다. "친구들을 밀치면 안 되지." 저 앞에서 한 엄마의 볼멘소리가 들린다. 나는 조용히 아이를 따라간 뒤, 길 한편에 아이를 세워두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럴 땐 천천히 지나가야지. 아니면 비켜달라고 말하던가. 누군가로부터 그런 말 들으면 기분이 나쁘지 않니?"
이 말에 정작 기분이 상한 건 아이가 아니라 나였나 보다. 또다시 시작된 엄마의 잔소리에 아이가 내 팔을 세게 잡아당긴다. 아마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의미겠지. 나는 아이의 눈을 노려보았다.
"말을 해, 말을!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네 마음을 알지 못해. 네가 빨리 가고 싶으면 길을 비켜달라고 말하고, 누군가 너에게 잘못했다 말을 하면 미안하다고 대답을 해. 지금 기분이 나쁘면 기분이 안 좋다고 말하라고."
훈계가 길어지는 순간이다. 나는 말을 멈추지 못한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함께 놀 친구를 찾는 아이에게 나는 또 쐐기를 박는다.
"아까 네가 밀친 친구들은 너와 함께 놀지 않을 거야. 자기를 밀친 친구를 누가 좋아하겠니."
나는 오늘 놀이터를 주변을 서성거리지도 않고 곧바로 집으로 왔다. 항상 들리던 빵집도 그냥 지나쳤다. 집 안에서 감도는 정적이 서글펐다. 너와 내가 있는 이 공간은 늘 비어 있구나. 웃음도 즐거움도 마음의 여유도 없구나.
아이와 나를 분리해야 하는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아이가 하는 어색한 행동들은 꼭 내가 하는 행동만 같다. 끊임없이 아이에게 싫은 소리를 한다. 어떻게 행동해야 좋은지 가르쳐 준다기보다는 그 행동을 지적하고 판단하며 고치려고만 든다. 여기에 아이의 감정에 대한 이해는 없다. "네가 그런 기분에서 이 같은 행동을 하는구나."와 같은 반응 대신 "그런 행동을 하면 다른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해."가 먼저 튀어나온다. 다른 아이가 이 같은 행동을 했다면 무심코 지나갔을 일도 내 아이에게는 그러지 못한다.
아이의 사회성을 키우는 데 엄마가 어느 정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지 헷갈릴 때가 많다. 평균적인 아이라면 또래 무리에 던져 놓고 아이가 그 속에서 어울리는 방법을 배우길 기다리면 될 것 같은데, 혹시 아이가 힘들어하면 살짝 조언을 곁들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가르치면 간단할 것 같은데, 이미 '사회성 부족'으로 '개입'이 필요다고 판정받은 아이에게는 도대체 얼마만큼의 도움을 줘야할지 잘 모르겠다. 내가 아이에게 하는 가르침에 감정적 요소를 배제해야 하지만, 내 아이이니 만큼 그게 참 어렵다. 아이에게 하는 말에는 너그러움과 끝없는 기다림과 넓은 이해심이 필요하다. 그러나 지금 내게는 조바심과 불안함, 무엇보다 너와 나를 분리하지 못하는 서투름이 존재한다.
아이에게도 자신의 행동에 대해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할 텐데. 스스로 경험하고 깨우치는 과정이 필요할 텐데. 나는 자주 너를 가로막고 선다. 나는 아이의 부족함만을 인식한 채 아이가 홀로 할 수 있는 일에도 일일히 개입을 한다. 정작 우리에게 필요한 건 어쩌면 적절한 거리. 너로 인해 내가 무너지지 않는 단단한 마음. 네가 상처받더라도 스스로 일어나 다시 설 수 있다는 믿음.
우리에겐 감정적 분리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