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살 아이의 봄(2022.03-2022.05)
애들이 다 그렇지 뭐.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이와 함께 빵집에 들렸다.
계산을 마치고 뒤를 돌아보는데 가게 안에 아이가 없었다. 하교 길, 아마도 아는 친구가 지나가는 걸 보고 따라나선 것이라 생각은 했지만 저만치 걸어가는 아이들 중에 내 아이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아이가 걱정되기보다는 그 잠깐을 기다리지 못하고 친구를 따라나서는 아이의 부주의함이 크게 다가왔다. 나는 가게 주변에서 서성거리다 앞으로 나아갔다.
학교에서 집까지는 넉넉하게 잡아도 10분, 대부분의 아이들이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기에 아이를 잃어버리는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다. 태권도 학원에서 홀로 오가는 길이기도 했다. 그런데도 자꾸 짜증이 일었다. 너는 왜, 그 새를 참지 못하고 친구를 따라가는 거니? 친구에게 '놀자'라는 말도 하지 못할 거면서. 그저 어리숙한 장난이나 치면서 관심을 끌 거면서.
저 앞에서 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방향을 틀자 아이의 뒷모습이 나타났다. 함께 있던 친구의 할머니가 “엄마는?”이라고 묻는 말은 아이에게 들리지 않은 듯했다. 아이는 태연하게 친구와 나무 그네에 앉아 장난을 치고 있었다. 나는 아이 앞으로 다가갔다.
“어디 가려거든 엄마한테 말하고 가야지.”
“내가 친구 OO 찾으러 간다고 말했잖아.”
아이가 천연덕스럽게 거짓말을 한다. 사실 아이가 따라나선 친구는 따로 있었다. 같은 반 여자 아이였다. 지금 함께 있는 친구는 가게 앞에 서 있던 나에게 인사를 하며 지나가던 아이였다. 내게 말은 하지 않았지만 'OO는 어디 있어요?'라고 묻는 눈빛이었다. 나는 아이를 쳐다보았다. 솔직히 누구를 따라온 거냐고 묻자, 여자 아이의 이름을 댄다. 나는 "다음부터는 꼭 엄마에게 말하고 가."라고 말하며 상황을 정리했다. 마음은 부글부글 끓고 있는데, 옆에 있던 할머니의 말이 귓가에 스친다.
“애들이 친구만 보면 바로 달려오고 그렇지요, 뭐."
아마 친정 엄마가 있어도 비슷한 반응을 보였을 것이다. 애들이 다 그렇지 뭐. 나는 자주 이 말을 잊는다. 그럴 수도 있지. 이 말이 생각나도 나는 꾸역꾸역 누른다. 다른 아이들은 안 그럴 거야. 그래도 이건 좀 심하잖아? 나는 자꾸 여유를 잃는다. 내 안에는 아이의 행동을 하나하나 곱씹으며 검열하는 감시자가 있다. 이건 감정 조절이 부족해서 그런 거고, 이건 상황 판단을 하지 못해서 일어나는 일이고, 이건 감각이 예민해서 그런 걸 거야.
요즘에는 이유가 하나 더 늘었다. 아이가 부주의하고 산만해서 그런 게 아닐까? 아이의 행동을 설명하기 위한 여러 가능성들이 머리 속에 지나간다. 속속 들여다보려는 태도가 아이에 대한 포용으로 이어지면 좋겠지만 실은 그 반대다. 나는 아이의 행동을 고치려고 한다.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일도 지적한다. 이럴 땐 이렇게 행동해야 하는 거야. 네가 이렇게 하지 않아서 이런 일이 일어난 거야. 나는 어떤 면에서는 엄마가 아니라 선생님이다. 우리의 관계는 늘 일대일 교습, 가끔은 짜증과 신경질이 오가는.
요즘 들어 아이의 부주의와 산만함에 대해 생각한다.
아이는 ADHD 관련 검사를 받지는 않았다. ADHD 증상은 크게 두 가지, 말 그대로 주의력 결핍과 과잉 행동. 만약 내 아이가 ADHD 라면 전자에 해당할 것이다. 전적으로 개인적인 생각이다. 아이는 하루에 한 가지씩 사사로운 실수를 한다. 책가방을 교실에 놔두고 오기도 하고 실내화를 갈아 신지 않은 채 오기도 한다. 오늘은 개인 물병을 급식실에 가져갔다가 잃어버렸단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와 ADHD가 동반하는 경우는 30~40%로 알려져 있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치료하기 위한 약물은 현재까지 존재하지 않지만 충동이나 불안을 조절하는 약물은 있다고 한다. 의사 선생님이 권하지 않았고 아직까지 학교에서 부정적 피드백을 받지도 않았는데 약물 치료를 생각하는 건, 자꾸 내가 아이의 산만한 행동을 지적하기 때문이다. 아이는 계속 엄마, 아빠의 잔소리를 듣는다. 아이는 기분이 상한다. 결국 짜증을 내기 시작한다. 엄마, 아빠도 화가 난다. 이런 패턴을 끊기 위해 약물을 사용할 수도 있겠다 싶다.
나와 남편, 둘 다 엄격한 집안에서 자랐다. 아빠는 가끔 찾는 물건이 없으면 신경질을 부리며 “물건을 썼으면 제자리에 놓아야지.”라고 말하곤 했다. 어린 마음에 그 말이 듣기 싫어 물건은 꼭 제자리에 놓아야 한다는 다짐을 수없이 하곤 했다. 나는 누군가에게 지적당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사람으로, 아마도 애정 표현에 서툴지만 아이의 잘못에는 신경질적으로 반응했던 아빠의 영향도 받았을 것이다. 아빠는 나에게 뭔가를 가르치기보다는 “도대체 물건이 어디 있는 거냐?”라고 짜증을 내는 편에 속했다. 나는 자꾸 아빠처럼 행동하는 것 같다.
애들이 다 그렇지 뭐. 그냥 이렇게 생각하면 안 되는 걸까? 아이니까 실수를 한다. 아이니까 화도 잘 못 참고, 아이니까 자기 말만 할 때도 있고, 아이니까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물병을 잃어버린 아이는, 교실에서 급식실을 왔다 갔다 하며 자기 물병을 찾으러 다녔다고 했다. 결국 담임선생님께 물병을 잃어버렸으니, 물병을 찾으면 알려달라고 말씀을 드렸단다. 제 물건을 챙기지 못했지만 자기 물건을 찾으러 다녔던 아이의 행동은 기특하다. 그래도 물병을 찾으려 다니긴 했구나. 물병을 잃어버린 건 알고 있었구나. 아이는 다음날 자기 물통을 찾아왔다.
초등학교 1학년 아이들은 이제 겨우 여덟 살이다. 고작 6,7년을 산 아이들이다. 야무진 아이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아이도 많다. 오늘 아이를 기다리는데 한 선생님이 밖에서 놀고 있던 아이를 부르며 "책가방 가지고 가야지."라고 외치는 걸 보았다. 내 아이 같은 아이가 속속 눈에 띈다. 이게 정신 승리일 수도 있겠지만, 일단 이 기조를 유지하고 싶다. 마음아, 좀 쉬자. 우리의 평화를 위해.
아직 아이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