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살 아이의 봄(2022.03-2022.05)
꾸준히 천천히
우리나라에서 성공한 아스퍼거 증후군은 보기 어렵다. 단, 한 명도 없다.
아스퍼거 증후군이라고 고백한 일론 머스크부터 동물학자로 유명한 템플 그랜딘, 연기파 배우 앤서니 홉킨스, 그리고 십 대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라까지 외국의 사례는 적지 않은데 우리나라만은 예외다. 언론을 통해 내가 아는 사람들은 인하대학교 초빙교수 윤은호 박사 정도다. 정말 성공한 사람들이 없어서인지, 아니면 스스로 드러내지 않는 걸 선택해서인지 잘 모르겠다.
아스퍼거 증후군뿐만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장애인은 투명 인간과 다름없다. 신체적 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길거리에서 찾아보기 힘들고 정신적 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자기 안에 꽁꽁 숨어버린다. 유명인들은 공황장애, 불안장애, 자기애성 인격장애를 이야기하지만, 우리 주변에서 그런 사람은 찾기 힘들다. 자신을 고백하는 순간 싸늘한 시선은 자명하다.
나는 내 아이가 이 나라에서 성공한 신경다양인이 되었으면 좋겠다. 보란 듯이 성공했으면 좋겠다. 성공이란 게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고 그 분야에서 인정받는 언뜻 평범한 것이겠지만, 이조차 커다란 도전이 되는 이 세상에서 아이를 잘 키우고 싶다. 너는 할 수 있을 거야. 나는 집요할 정도 하나에 몰입하는, 너의 열정을 잘 알고 있으니까. 너는 그 누구보다 꾸준한, 대단히 충실한 사람이니까.
내 장래희망은 작가였다.
한때 시인이었다가 소설가였다가 드라마 작가였다가, 이름은 조금씩 달라졌지만 나는 늘 글을 쓰고 싶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글을 쓰고 싶으면서도 글쓰기를 즐기지는 못하는 사람이었다. 글은 엉덩이로 쓰는 거라는데 내 엉덩이는 가볍다 못해 제대로 앉아 있는 법을 몰랐고, 나는 지하철 안이나 누군가를 기다리는 자투리 시간에만 글을 썼다. 그냥 끼적거렸다는 게 적당할 것이다.
지난 기억을 샅샅이 훑어보면, 열심히 글을 쓴 적이 있긴 했다. 대학교 2학년 때인가, 부팅하는데만 몇 분을 잡아먹던 낡은 컴퓨터 앞에 앉아 단편 드라마 한 편을 끝냈다. 고등학교 친한 친구는 내가 쓴 드라마 속 대사가 너무 단조롭다는 평했다. 그게 끝이었다.
직업적 글쓰기를 희망하며 대학 졸업 즈음 라디오 보조작가로 일하기도 했지만 단 일주일 만에 그만뒀다. 서브 작가 연봉은 1천만 원을 못 넘었고, 메인 작가 연봉은 2천만 원 선, 얼굴을 보면 알만하지만 인기가 많다고는 할 수 없는 연예인의 1년 계약금이 4천만 원 남짓한 것을 보고 나는 충격을 받았다. 그때 내 가방엔 김규항이 쓴 B급 좌파란 책이 들어 있었다. 나는 B급 작가가 되기 싫어 일을 집어치우고 회사에 취업했다.
발달이 늦은 아이를 키우며 나는 다시 글을 쓴다. 에세이라 하기도 뭐한 일기 같은 글을 근근이 이어 가는 건, 아마도 내 아이 때문일 것이다. 아니라고 부정해봐야 절대 바뀌지 않는, 내 아이의 다름을 나는 죽을 때까지 안고 살아가야 하겠지. 내 아이도 아마 그럴 것이다.
어떤 면에서는 아이에게 고맙다. 이렇게 글을 써야 할 이유를 만들어줘서. 아이가 아니었다면, 나는 자기 성취감과 개인 생산성을 들먹이며 어떤 식으로든 취업의 문을 두드렸을 테니까. 경력 단절에 우호적이지 않은 사회적 분위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계속 문이 부서져라 두드렸겠지. 내 아들, 너도 날 닮았구나. 포기하지 않는 너와 나.
언젠간 되겠지.
이리 하다 보면 뭐라도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