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살 아이의 봄(2022.03-2022.05)
내 마음도 오락가락
갈필을 못 잡네
이야기 시작, 마음이 흔들리는 중
아침에 한번 저녁에 한번, 요즘 아이와 실랑이를 한다. 아침 등교 시간과 저녁 먹은 후 숙제하는 시간 이렇게 두 번. 주요 원인은 아이의 자기중심적인 태도. 한 마디로 아이는 내 말을 듣지 않는다. 내가 그다지 힘든 요구를 하는 게 아님에도 내 말을 한 번에 들은 적이 없다.
특히 초등학생이 되고 나서 이런 실랑이가 늘었다. 매일 아침, 나는 꾸물대는 아이를 두고 빨리 준비하라며 잔소리를 하다가 화를 내는 경우가 다반사다.
"내가 도대체 몇 번을 말해야 하니?"
5분 타이머를 걸어 놓고 제한 시간 안에 세수와 옷 입기를 끝내면 미션 달성이라는 트릭도 써 보지만, 아이는 좀체 바쁘게 움직이는 법이 없다. 밥을 먹는 것도 한 자리에서 먹지 못하고 이리저리 돌아다닌다.
“한 자리에서 먹어야지.”
내 말은 언제나 그렇듯 BGM 정도일 뿐이다 게다가 한창 바쁜 시간마다 아이가 책 읽기에 집착하는지 모르겠다. 빨리 준비하라는 재촉에 "이 책만 다 읽고"란 말이 여지없이 튀어나온다. 나는 결국 아이 칫솔에 치약을 묻히고 아이에게 다가가 양치질을 한 뒤 "바로 헹구고 와"라는 행동으로 대신한다. 입안의 치약은 또 싫었는지 아이는 주춤거리며 일어나 화장실에서 양치질을 마무리한다. 옷 입는 건 또 다른 고비다. 옷은 이미 꺼내 놓았지만 아이는 옷을 본체만체다. 때로는 잠옷을 홀랑 벗은 채 책을 읽는다. 혹시 지각이라도 할까 윗옷을 재빨리 입힌 뒤 바지만 다시 입으라고 말하지만, 가끔 내가 옷을 입히는 것도 아이가 거부를 할 때가 있다. 이럴 땐 정말, 온갖 짜증이 내 속에서 울렁거린다. 내가 화를 내면 아이는 이에 질 새라 목소리를 더 높인다. 고함을 지르기도 하고, 왜 엄마는 화만 내냐고 따진다.
"네가 엄마 말을 잘 들어야 나도 네 말을 잘 듣지. 엄마가 도대체 얼마나 기다려야 하냐고."
최근에는 3번 법칙도 만들었다. 아이에게 한번 말하고 아이가 듣지 않으면 ‘이번이 두 번째다’로 응수하고, 마지막엔 ‘세 번째 얘기하면 엄마 정말 화날 것 같아'로 이어지는 수순이다. 내가 화를 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것 같은 아이지만, 적당한 무시와 침묵의 시간이 길어지면 그런대로 아이는 순응하는 편이다. 물론 이때만. 몇 분만 지나도 아이는 다시 본래 모습ㅇ로 돌아온다. 어찌나 빨리도 돌아오는지.
오늘 저녁에는 방문 학습지 숙제를 앞두고 또 한바탕 난리를 쳤다. 계획대로라면 저녁 먹고 바로 숙제를 하는 시간인데, 친정집에 다녀오느라 좀 늦었다. 서두르면 20분 정도로 끝낼 숙제이지만 아이는 목욕부터 먼저 하겠다고 한다. 목욕하고 바로 숙제하는 거다! 약속을 받고도 목욕시간은 한참 길어지고, 마지막 타이머로 5분을 채운 뒤 ‘약속을 정말 잘 지키는 아이’라는 울며 겨자 먹기 칭찬으로 아이는 겨우 목욕을 마쳤다. 이후 자기 방에 들어가 숙제를 봐주려는데, 답이 틀렸다고 말해주니 아이가 짜증을 내기 시작한다.
“엄마가 틀렸다고 말했으니까 엄마가 지우개로 답을 지워."
그동안 참았던 내 감정이 튀어나온다.
“이렇게 엄마한테 짜증 낼 거면 그냥 혼자 해.”
나는 아이 방을 나와서 안방에 들어간 뒤 불을 끄고 이불 위에 누웠다. 더 이상 할 말도 없고, 할 말이 있다 하더라도 아마 좋은 말은 아닐 것이다.
“엄마, 지금 당장 이리로 오지 못해?”
단단히 화난 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이러다 아이는 고함을 지르겠지. 나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정적. 몇 분 뒤 아이가 방으로 들어온다.
“엄마, 숙제 같이 하자.”
억지로 일어나 아이의 숙제를 봐주고 아이와 함께 누웠다. 이런 날은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다. 아침마다 늑장 부리는 아이와 실랑이하는 건 그렇다 쳐도, 매일 저녁 숙제를 두고 아이와 벌이는 이 지긋지긋한 싸움을 피하고 싶다. 나와 아이의 감정적 대립은 이런 일 말고도 늘, 꽤 자잘하게 벌어지지만 학습을 이유로 같은 스트레스를 받고 싶진 않다. 아이에게 학습지를 그만두자고 해도, 아이는 되려 계속하겠다며 고집을 피우겠지만. 학습지 안 해도 괜찮다고, 네가 제대로 숙제할 거 아니면 그만두는 게 낫다고, 나중에 다시 시작해도 된다고 얘기해도 엄마 말은 다 듣고 싶지 않은 건지 아이는 NO를 외친다.
아이는 여전히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한다. 자기가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하지 않고, 그 과정에서 엄마의 말은 정처 없이 사라진다. 엄마가 화를 내면 그저 잘못했다, 미안하다 정도만 얘기해도 괜찮을 텐데, 실제로 아이를 보며 “이럴 땐 잘못했다고 말해야지. 아니면 미안하다고 해야지”라고 가르쳐 주지만 이 또한 아이는 들으려 하지 않는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게 아이에겐 마치 전쟁에서 지는 듯한 패배감을 선사하나 보다. 늘, 언제나, 이겨야 하는 아이니까. 이런 식의 패턴이 반복되면 아마 나는 견디지 못할 것 같다. 오늘 처음으로 아이가 약을 먹으면 어떨까 생각해 보았다. 아직은 그냥 생각뿐이다. 그전에 학습지 중단도 재고해야겠다. 아이에게 지시할 일이 많아지는 만큼, 우리의 관계는 점점 멀어질 테니까.
또 다른 이야기, 여유가 생기니 다른 게 보이더라
아이와 함께 미용실에 왔다. 어린이 미용실 대신 어른 미용실에. 두 돌 무렵부터 다니던, 집에서 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어린이 미용실은 하도 오래 다녀서 전담 선생님이 아이를 척 알아보고 십여 분 만에 쑥닥쑥닥 머리를 자르곤 했었다. 아이는 한 손엔 과자를 든채 노란 람보르기니 자동차 좌석에 앉아 뽀로로 동영상을 보았다. 청각이 예민한 아이지만 다행히 미용실에서 나는 온갖 소리에 거부감이 없었다. 샴푸를 할 때 얼굴 찌푸리긴 했지만 아이의 두 손을 잡아주면 금방 안정되곤 했다.
이젠 아무것도 없는 어른 미용실 의자에, 쿠션을 대고 앉아 머리를 자르고 있다. 의젓하다. 고개 숙이라 하면 숙이고 눈 감으라 하면 감고 하라는 데로 참 잘한다. 눈 뜨라는 말을 듣기 전까진 절대 눈을 뜨지 않을 것이다. 아마 속으로는 엄청 긴장하고 있겠지. '집에서 저렇게 순순히 말을 들었으면' 하는 마음도 들지만, 늘 엄청난 긴장감에 시달리는 아이를 생각하면 집에서 만큼은 제멋대로 행동하는 것도, 늑장을 부리는 것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너에게도 쉼이 필요한 거겠지.
내 인생이 눈물바다일 거라고 생각한 적 있었는데 오늘은 참 편안하다. 학교에서는 하루에 꼭 하나씩 사사로운 실수를 하고 여전히 또래와 있을 때 과한 행동으로 물의를 일으키거나, 친구들과 함께하지 못해 의기소침해 있기도 하지만 그래도 정말 많이 발전했다.
토닥토닥, 나 자신에게도 심심한 위로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