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은 잔인한 달

여덟 살 아이의 봄(2022.03-2022.05)

by 하이리



잔소리해서 미안해.




장면 1. 입학식 전


학교 입학을 앞두고 신경이 곤두섰다. 남편과 나는 매 순간 잔소리를 해댔다. 너는 이제 초등학생이야. 선생님 말씀 집중해서 듣고 절대 흘려들으면 안 돼. 필통이나 책, 준비물 같은 거 꼭 챙기고 절대 잃어버리지 마. 친구들에게 친절하게 얘기하고 소리 지르면 안 돼. 가능하면 네가 먼저 양보해. 네가 양보하면 친구도 양보할 테니까.


"먼저 네가 양보해"라는 말은 간편해서 좋았다. 네 마음도 중요하고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도 있지만, 그러면 친구들이 불편할 수 있으니 친구 말도 들어줘야 하고... 이런 식의 복잡함은 아이에게 통하지 않을 것이다. 아이 마음은 좀 상하겠지만, 양보야말로 아이가 튀지 않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학교는 나와 아이에겐 전쟁 같은 곳, 아이가 장착해야 할 무기가 참 많았다. 아이에겐 더 많은 무기가 필요했다.





장면 2. 입학식 당일


학교 운동장에 사람들이 잔뜩 모여있는 것을 보고 기분이 고조된 아이가 “와, 정말 흥미진진한데!”라고 말했다. 남편은 이런 데서 너무 크게 말하면 안 된다고 주의를 주었다. 정작 나도 아이 말투가 거슬렸으면서 아이를 주눅 들게 하는 남편의 말도 듣고 싶지 않았다. 나는 고개를 숙인 채 귀를 닫았다.


입학식을 마친 뒤 꺼내 본 아이의 책가방엔 필통이 들어있지 않았다. 첫날부터 잃어버린 건가? 교실에서 필통을 사용한 적 있는지 물었고 아이가 그런 것 같다고 얘기하자, 남편과 내 언성이 약속이라도 한 듯 높아졌다. 엄마가 잘 챙기라고 했지, 에 이어 남편은 이제 어떡할 거냐며 화를 냈다. 그저 필통 하나 안 가져왔을 뿐인데. 교실에 필통이 있는지 물을 요량으로 학교에 전화를 했는데 담임 선생님 말은 내 예상 밖이었다. 아이들에게 필통을 교실에 놔두라고 했다는 거다. 이번에는 왜 그런 말을 하지 않았냐고, 필통을 놔두라는 선생님 말씀을 잊은 거냐며 아이에게 핀잔을 주기 시작했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잊어버렸어." 아이가 대답했다.


남편과 나는 둘 다 모범생이었다. 우리 두 사람은 불안이 높은 완벽주의자 기질로 내 아이에겐 천적과 다름 없었다. 우리는 아이가 우리와 다르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이가 가진 뛰어난 학습능력으로 이 모든 것들을 빠르게 습득하리라 믿었다. 아무 도움도 되지 않을 근거 없는 낙관성을 버리지 못했다.


학교 준비물로 크레파스가 필요했는데 나는 굳이 아이와 함께 사러 가길 원했다. 밖에 안 나간다는 아이를 억지로 데리고 나와, 많이 움직여야 건강해진다는 말을 퍼 부우며 길을 걸었다. 놀이터에서 논다는 아이에겐 준비물 먼저 사야 한다며 아이를 기다리지 않았고, 집으로 오는 길엔 같이 시소를 타자는 말에 나는 그네 타는 것부터 연습하라고 볼멘소리를 했다. 아이는 아직 스스로 그네를 타지 못한다. 몇 번 해보다 생각대로 되지 않아 눈물을 보인 아이에게 "될 때까지 연습해야지. 네가 지금 연습한 거니?" 라며 온갖 매몰찬 말들을 던졌다.


즐거운 입학식 날의 추억을 남기고 싶었으나 실패했다. 나는 친정으로 도망쳤다. 우리 가족은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와 저녁을 먹으며 비로소 입학 기분 비슷한 것을 낼 수 있었다. 아이는 더하기 빼기 심지어 곱하기 계산 신공을 펼치며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를 놀라게 했다. 아이가 가장 잘하는 것. 놀이터에서 그네를 못타 울던 아이가 연산을 하며 해맑게 웃고 있다. 나는 네게 무엇을 가르쳐 주려고 그네 타기를 강요했던 걸까? 너는 가르치 주지 않아도 이렇게 잘 하는 게 많은 아이인데.




장면 3. 첫 등굣길


학교 가는 길, 아이가 말했다.

"사람들이 정말 많습니다."

"그럴 땐 사람들이 정말 많아,라고 말하는 게 좋아."

상황에 맞기는 하지만 갑자기 튀어나온 문어체 문장을 나는 또 지적했다.

"내 마음대로 하고 싶어."

아이가 말한다.

"그러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할 거야."

앞서 가던 친구를 향해 달려가면서도 OO야, 친구 이름을 부르지 못하는 아이. 괜히 들뜬 마음에 "우왕" 동물 같은 소리만 낸다.

"그럴 땐 반갑다고 얘기해야지. 아니면 신난다거나."

아이는 친구들 무리에서 떨어져 맨 앞으로 달려가 1등을 하려다 친구들이 제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자 원래 있던 자리로 되돌아 왔다. 나는 아이 손을 꽉 잡았다. 부끄러웠다. 다른 아이들과 조금 떨어진 뒤 내가 입을 열었다.

"기분이 너무 좋아도 마음속으로 숨 열 번만 쉬어봐. 그런 다음에 말해보자."

아이는 내 눈을 바라보지 않았다. 주변을 살피느라 움직이는 눈동자만 부산스러웠다. 듣고 싶지 않은 말이 있을 때마다 아이가 짓는 표정이었다. 나는 아이를 힘겹게 부둥켜 안은 뒤 잘 가라고 다독이며 학교로 보냈다.


마음이 단단하지 못해서인지 내 속이 자꾸 쓰리다. 눈물은 나오지 않았지만 억지로 잠근 수도꼭지처럼 바로 터질 듯 아슬아슬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리라 생각했는데, 별 탈 없이 지나가리라 믿었는데, 아이가 하는 미묘한 행동에도 지레 겁먹는 내가 보인다. 조바심을 떨치지 못해 억지로 아이 눈을 맞추며 무언가 가르쳐 드는 내가.




엄마도 학교는 처음이야.
여유를 가져도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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