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학을 앞두고

일곱 살 아이의 겨울(2021.12-2022.02)

by 하이리


코로나 여파로 선생님과 아이들끼리만 했던 조촐한 졸업식.
하원 길 선생님께 마지막 인사를 드리는데 그만 눈물이 쏟아졌다.
아이가 많이 예민하고 까다롭잖아요.
그동안 너무 고생하신 거 알아요.
이 말을 하려다 목이 메었다.
선생님을 향한 말이기도 했지만
돌아보니 나 자신을 향한 말이었다.
너, 그동안 참 많이 애썼구나.
집에 오자마자 아이를 태권도장에 보내놓고 목놓아 울었다.
자기 연민을 좋아하지 않지만
오늘은 그냥 이 감정을 내버려 두고 싶다.
앞으로 더 나아가기 위해.




내 마음에 대안학교 바람이 불었다.


지인의 아이가 대안학교에 들어간다는 말을 들은 후부터 부쩍 대안학교 검색을 하기 시작했다. 막연히 대안학교에 가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긴 했었다. 초등학교 때까지는 자연에서 마음껏 뛰노는 게 최고라는 개인적인 신념도 있고, 사회성이 부족한 아이니까 경쟁보다는 공동체 의식을 강조하는 대안학교가 괜찮은 선택지가 아닐까 고민했었다. 도로변에 대안학교 신입생 모집 플래카드가 붙어 있을 때마다, 지역 커뮤니티에서 신입생 모집이라는 게시글을 볼 때마다 대안학교 이름을 기억해 두었다. 실제로 그곳을 가리라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내게 대안학교는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일에 대한, 일종의 보험과 같은 개념이었다.


굳이 선택할 필요 없이 알아서 입학 통지서를 보내주는 집 근처 초등학교에 가는 게 가장 무난할 거라 여겼다. 대안학교도 학교마다 내세우는 특징이 있고 아무래도 정부 인가를 받지 않았으니 재정 상태나 시설, 교사 자질 등 고려해야 할 요소가 많은 부분도 부담스러웠다. 학교 선택을 온전히 부모가 짊어져야 하는 점도 무겁게 다가왔다. 나는 자신이 없었다.


그런데도 내 손은 멈추지 않았다. 자꾸 네이버 검색창에 대안학교를 넣었다. 아이를 대안학교에 보내고 있다는 블로그를 찾았는데 블로그에 나온 풍경이 낯익었다. 내가 사는 동네였다. 작년에 대안학교 입학을 위해, 학군지에서 이 지역으로 이사를 왔다고 했다. 아이가 다니는 대안학교 이름은 공개되어 있지 않았지만 대강 짐작할 수 있었다.


언젠가 센터 대기실에서, 중학생 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가 자신이 다니던 학교라고 소개하던 곳이었다. 그 아이에게 몇 학년이냐고 물어본 게 시작이었다. 아이는 학교 이름을 알려주며 “우리 학교가 예전에는 정말 애들이 많았는데, 점점 애들이 줄어들고 있어요. 며칠 전에도 OO가 전학을 갔어요.”라고 말했다. 블로거의 아이는 사회성이 부족했지만 1년 남짓 학교를 다니며 사회성이 몰라보게 발전했다고 했다. 자신의 교육관과 비슷한 학부모들을 만나게 되니 육아에 대한 불안함도 덜었단다. 나는 이 블로거의 여유로운 오후가 마음에 들었다.


대안학교에 이어 방과 후 학교에 대해서도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집 주변에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주 5일간 방과 후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곳이 있었고 지향하는 가치가 대안학교와 비슷했다. 숲을 체험하고 아이들 스스로 창의적으로 놀며, 함께 하는 즐거움을 나누는 곳. 당장 센터 수업이 있어서 주 5일은 불가능한데도 나는 주변에 있는 방과 후 학교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다들 학원에 가느라 텅 빈 놀이터에서 우리 둘만 있고 싶지는 않았다. 학교에 친구가 없다면 방과 후 학교에서라도 친구를 만들어 줘야 하나? 같은 공간에서 긴 시간 놀다 보면 친구가 되려나? 내 아이는 남들과 다르니까, 이건 헛된 바람이려나? 다른 아이들과 쉽게 어울리는 성향이 아닌데, 오히려 여러 명의 아이와 한 곳에 있는 게 스트레스가 되지 않을까? 마음속 온갖 불안이 요동치고 있었다.





오소희 작가가 쓴 [엄마의 20년]을 읽었다.


오소희 작가는 나와 결이 너무 다른 사람이지만, 그녀가 밟아온 길에 대해 부러움 비슷한 감정을 갖고 있다. 오소희 작가는 36개월 된 아이를 데리고 터키 여행을 시작으로 시리아, 라오스, 마다가스카르 등 GNP가 낮은 국가들만 골라 여행을 다녔다. 여행을 통해 작가는 ‘나눔’이란 가치를 찾았다. 그의 아들은 공동 육아에서 대안학교를 거쳐 국제학교로 진학했으며, 십 대 후반부터 해외 자원봉사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엄마와 아들은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나는 입시에 반기를 드는, 한결같은 그녀의 교육관을 존중한다. 나도 입시를 최상위 목표로 하고 있지는 않지만… 솔직히 나는 두렵다. 내 아이가 다른 아이들보다 뒤처질까 걱정되고, 다른 아이들에게 치일까 봐 불안하고, 학교라는 세계에 적응하지 못할까 봐 무섭다. 나는 일반학교 대신 대안학교를 선택할 확신도 갖고 있지 않은 나약한 인간이다.


결론은 이미 나 있다. 마음을 정리하는 과정이 필요했을 뿐이다. 나는 아이가 배정받은 일반 초등학교에 보낼 것이다. 아이가 학교에 적응하지 못한다면, 혹시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한다면, 그래서 내 아이가 부정적 피드백에 지속적으로 노출된다면 나는 아마 다른 선택을 해야 할 것이다. 약을 먹이거나 소규모의 대안학교에 가거나. 이 과정에서 아이와 함께 이야기 나누려고 한다. 아이와 내 남편과 내 선택이 한데 어우러져, 우리 세 사람에게 가장 맞는 방법을 찾을 거다.


여기서 중요한 건 균형이다. 그리고 아이의 선택이다. 아이가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면, 균형의 추를 아이 쪽으로 움직여 놓으려고 한다. 아이의 선택에 든든한 서포터가 되고 싶다. 그땐 두려워하지 말아야지. 불안해하지 말아야지. 아이의 선택을 믿어야지. 행여 잘못되더라도 다시 일어나면 되니까. 언제든 시작할 용기를 내가 북돋아 주면 되니까. 언제나 그렇듯 이 말을 되뇌어 볼 수밖에. 내게 늘 힘이 되는 말.



천천히 해도 괜찮아.
일단 학교 적응부터 해보자.
하나씩 하나씩, 미리 겁먹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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