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살 아이의 겨울(2021.12-2022.02)
태권도장에서 집으로 오는 길은 쓸쓸한 길
오는 길은 쓸쓸한 길
한 달 전부터 아이가 다시 태권도장에 다니기 시작했다.
그동안 특수체육을 통해 얼핏 줄넘기 비슷한 흉내를 내게 된 이후의 일이다. 태권도 거부의 주요 원인이 ‘난 줄넘기 못해’ 였으니까. 이젠 운 좋으면 한 번에 열 번도 거뜬히 넘는다. 줄넘기로 자신감 뿜뿜 하더니 지금은 주 3회도 모자라 주 4회 태권도장에 간다.
태권도가 끝나고 아이를 픽업하는 길, 같은 어린이집에 다니는 두 명의 친구와 또래로 보이는 한 명의 아이가 몰려가고 있다. 같은 태권도복을 입은 아이들 세 명이 딱 붙어 걸으며 뭐라 뭐라 이야기를 하는데, 그 옆으로 내 아이가 킥보드를 타고 쌩- 하니 지나간다. 정말 쌩- 하는 소리가 날 정도다. “와, 진짜 빠르네, 이거” 허공에 대고 한껏 목청을 높이면서. 한 아이가 내 아이를 쳐다보지만 이내 세 아이는 하던 이야기를 하며 걷기 시작한다.
최근 두발 킥보드를 새로 장만했다. 그동안 탔던 세 발 킥보드보다 바퀴도 크고 뭔가 있어 보인다. 그 킥보드를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어마어마했을 텐데 아이는 다른 아이들을 보며 자랑하는 대신 그 옆을 빠르게 지나가며 소리를 내는 방법을 택했다. “와, 진짜 빠르네, 이거” 혼잣말을 내뱉으면서.
의도했던 반응이 나오지 않자 아이는 저만치 달려가다 멈춰 선 뒤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무심한 세 명의 아이를 멍하니 쳐다본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두어 번 또래 무리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다가 결국 ‘안녕’이란 말을 남기며 집으로 왔다. 다른 아이들의 입에서는 “그래, 잘 가, 안녕”란 말이 나오지 않았다. 나는 조금 떨어진 채 저만치 가고 있는 아이를 뒤따랐다.
"킥보드 자랑하고 싶었어?"
"응, 그런데 내가 말해도 못 들을 수 있잖아. 그리고 내가 자랑하면 친구들이 속상할 수도 있으니까 아무 말도 안 했어."
"혹시, 그 아이들하고 같이 이야기하고 싶었던 거니?"
아이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데 나는 친구가 없어."
갑자기 아이의 눈이 촉촉해졌다. 나도 눈물이 핑 돌았다. 뭐라고 말해야 좋을지 생각하는 동안, 아이가 “엄마, 하나 둘 셋 하면 내가 안 보이는 척하는 거다!”라며 유령 놀이에 시동을 걸었다. 아이는 요즘 무슨 척하기 놀이에 빠져 있다. 놀란 척하기, 아픈 척하기. 나는 이 갑작스러운 감정 변화에 “응, 그래”라고 대답했다. 아이의 진심을 본 순간이라 여겼는데 그 순간은 정말 찰나에 지나지 않았다. 아이의 슬픔은 채 3초도 머무르지 않았다.
상처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사람들은 방어기제를 쓴다.
내가 주로 사용하는 건 회피 혹은 자기 합리화다. 화나거나 억울하거나 속상한 일이 있으면 나는 입을 굳게 다물고 방 안에 들어간다. 다른 이들에게 말하고 싶은 게 산더미같이 쌓여 있어도 내 마음 안에 온갖 지저분한 폐기물 처리장을 세웠으면 세웠지, 그걸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다. 아무도 없는 곳을 찾아 떠난다. 나는 사라진다. 방문을 걸어 잠그고 의미 없이 인터넷을 떠돌아다닌다. 그러면서 합리화한다. 내가 말을 꺼내기 시작하면 일이 더 커지고 복잡해질 거야. 침묵이야 말로 금이지. 가끔은 화살이 나 자신에게 돌아갈 때도 있다. 이건 너 때문에 그런 거야. 그러니까 이런 상황에 휘말리지 않도록 잘 피해 다니자. 남들이 하는 대로 따라 하고 자기 목소리를 내지 말자. 절대 눈에 띄지 말자.
나는 회피와 자기 합리화를 은연중에 아이에게 가르친다. 자랑할 거리가 있어도 나는 아이에게 말한다. 마음속으로 얘기해. 아이가 눈치 없이 자기 자랑을 할 때가 많아서 이기도 하지만, 아이의 자랑이 모난 송곳처럼 여겨질까 불안했다. 아이는 내 말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자랑만 할 때도 많지만 어느 순간 아이도 배워버렸다. 회피와 자기 합리화를. 방어기제의 대물림이다. 일단 일은 저질러 놓고 난 뒤 발생하는 온갖 서운한 상황에 대한 방어기제이긴 하지만, 어느새 아이도 내 방어기제를 따라 하고 있다. 내가 자랑하면 다른 아이들이 속상할 수도 있으니까 아무 말도 안 한거야. 내 입장에선 꽤 괜찮은 자기합리화지만 이 과정에서 아이 마음이 다칠까 우려가 앞선다.
아들과 동행한 여행 에세이로 유명한 오소희 작가는 20년간 엄마로 산 경험을 토대로 이런 말을 남겼다.
세상의 모든 엄마들은 아이가 자신의 모습을 드러낼 때 그 모습이 예쁘길 바라고, 아이가 자신의 자리를 찾을 때 고생하지 않고 찾아내길 바랍니다. 그러나 그것은 한갓 엄마의 바람일 뿐, 아이는 한 독립적인 생명체로써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것을 활용해 실패하고, 이겨내고, 수모를 당하고, 인정받는 무수한 과정을 거치게 되죠.
[엄마 내공] 중에서
내 아이가 어떤 경험을 하든 그건 아이의 것이다. 그 경험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과정도 결국 아이 몫이다. 엄마로서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없다. 다만 기다려 주는 것. 도움을 청했을 때 아이에게 바로 달려가 주는 것. 방어기제 대물림이니 하는 이상한 생각은 그만둬라. 그것도 아이의 선택이다. 나는 완벽한 엄마가 아니고 그렇게 될 수도 없고 내 선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가르쳐줄 뿐이다. 그게 아이에게 맞다면 go, 그렇지 않다면 stop, 오로지 아이의 선택이다.
나는 아이의 쓸쓸함을 지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