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살 아이의 겨울(2021.12-2022.02)
화내지 않는 약?
첫 번째, 약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 두세요.
주기적으로 방문하는 대학병원에 다녀왔다. 현재 문제 되는 사항이 무엇인지 묻는 질문에 나는 아이가 감정을 잘 조절하지 못한다고 얘기했다. 짜증을 내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도 크게 화를 내는 경우가 많다고.
"약물로 조절할 수도 있지만 그건 상태를 보고 좀 더 기다려 봅시다. 일단 치료 수업을 통해 잡을 수 있는 건 잡도록 하고요."
갑작스레 나온 약물이란 단어의 뜨끔했다. 약물치료를 의도하고 한 발언이 아니었다. 나는 "그 정도로 심각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라고 말을 마치고 나왔다.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남편과 이야기를 하다가 대뜸 아이가 물었다. 선생님이 갑자기 약 얘기를 해서 깜짝 놀랐어, 란 내 말에 대한 아이의 반응이었다.
"엄마, 그 약이 뭔데?"
"음...... 화를 좀 덜 내게 해주는 약."
"나, 그 약 먹고 싶어."
예상치 못한 대답에 내가 되물었다.
"너는 왜 그 약이 먹고 싶니?"
"약을 먹으면 화도 안 낼 수 있고 짜증도 안 내고 이쁜 말만 할 수 있잖아. 엄마 아빠한테 혼나지도 않고."
"약을 먹지 않고도 그렇게 할 수 있을 거야. 우리가 연습을 하지 않아서 그래. 엄마랑 같이 연습해보자."
다행히 아이는 도로에 등장한, 흔하지 않은 우회전 신호등으로 관심을 옮겼다.
"와~ 우회전 신호등도 있네? 진짜 신기하다!"
나는 최악의 상황을 미리 예상하여 대비하는, 우울한 기질을 가진 인간이지만 어떤 면에서는 헛웃음이 나올 정도로 낙관적인 면모를 보일 때가 있다. 아이 일에 관해서도 그렇다. 나는 아이가 이 정도로 잘 자라 준 것에 대해 감사하고 기쁨을 느낀다. 거짓말 하나 안 보태고 축복처럼 느낄 때도 있다. 네가 평범하지 않아서 나는 너를 더욱 유심히, 더 깊고, 더없이 소중하게, 바라보는구나. 너를 바라보면서 내 안의 나를 또 찾아가는구나. 그러면서도 누군가의 말 한마디, 작은 사건 하나 때문에 감정이 바닥으로 떨어진다. 미리 생각했지만 실제로 경험해 보지 않은 여러 일이 내 앞에서 벌어지는 상황은 늘 반갑지 않다. 약물이란 단어 하나에 흔들리는 내 모습이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약은 내게 최후의 보루 같은 것이었다. 학교 수업 시간에 다른 이들에게 방해가 될 정도로 문제가 된다면, 그때 어쩔 수 없이 선택하는 게 약이라고 생각했다. 약이 필요한 경우도 물론 있을 것이다. 부정적 피드백을 지속적으로 받으면서 자존감을 무너트리는 것보다는, 약물을 통해 격한 정서적 반응을 가라앉히는 게 나을 수도 있다. 그런데 문제는 약물이 아직까지 내 선택지에 없다는 것이다. 아이에게 맞는 적당한 약을 찾는 과정의 어려움과 식욕 부진이나 만성 피로 같은 약물이 가진 부작용도 이유에 있었으나 일단은 약 없이 해보고 싶었다. 언젠가 단약을 해야 할 약을 굳이 시작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여기, 화가 나지 않는 약을 먹고 싶어 하는 아이가 옆에 앉아 있다. 그런 아이가 짠하다. 마음을 주고받는 게 어려운 아이지만 그렇다고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건 아니다. 감정을 언어로 적당한 선에서 표현하는 것이 힘들 뿐이다. 예상할 수 없는 다양한 상황에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하는지 알지 못하는 것뿐이다.
최근 아몬드란 소설을 읽었다. 주인공이 내 아이를 닮았다. 고통에 무딘 것만 제외하고. 신윤재는 선천적으로 작은 편도체 때문에 감정을 잘 느끼지 못한다. 병명은 알렉시티미아. 윤재의 모습은 아스퍼거 증후군의 행동과 일부 겹친다. 말의 숨은 의미를 알지 못한 채 있는 그대로 말을 해석하는 것도, 사람의 표정을 읽지 못하고 자신의 감정을 잘 드러내지 못하는 점도. 윤재의 엄마는 아들이 혹시 도드라져 보일까 그에게 '정상적'으로 보이는 행동을 가르친다. 이게 생각만큼 쉽지 않다. 상황에 따라, 사람에 따라 똑같은 말을 해도 의미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내 옷 이상하지 않니?"란 단순한 물음에도 여러 의도가 깔려 있다. 진실을 물을 때도 있겠지만, 옷이 잘 어울린다는 칭찬을 받기 위해 일부러 묻기도 한다. 속이 상할 대로 상한 뒤 "그냥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라고 내뱉은 사람의 복잡한 속내를 아이는 이해하지 못한다.
학교에 가면 이런 복잡다단한 일들이 한꺼번에 다가오겠지. 의사 선생님은 아이에게 가능한 구체적으로 상황에 따라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 가르쳐 줘야 한다고 말했다. 엄마 아빠가 얘기하면 잔소리로 들릴 수도 있으니 사회성 수업이든 언어나 인지치료든 전문가에게 지속적으로 지도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남들이 자연스럽게 터득하는 사회성을 배우는 과정은 끝이 없는 듯 보인다. 어쩌면 한평생 공부하는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가야 될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사회성을 발달시키는 게 아예 불가능한 것은 아니니까. 다행이다.
서두르지 말자.
세상을 조금씩 알려준다는 마음으로, 즐겁게 웃으면서.
두 번째, 아이의 강점을 살려주세요.
요즘 내 주요 관심사는 영어다. 학교 입학을 앞두고 영어에 대한 고민이 많다. 원래대로라면 초등학교 저학년 까지는, 우리 나이로 열 살 정도까지는 친구들과 마음껏 노는 시간을 만끽하게 하고 싶었다. 사회성이 모자란 아이니까 엄마가 친구를 만들어줘야 하겠지만, 그런 수고야 좋은 선생님을 찾아 여러 센터를 전전하는 마음가짐으로 하면 되니 상관없고, 다양한 상황에서 여러 아이들과의 경험이 중요한 만큼 아이에게 공부를 가르치는 게 아니라 사람을 가르쳐 주고 싶었다. 학교 공부는 참으로 뻔하지만 막상 실천하기는 힘든, 예습과 복습을 바탕으로 학교 진도를 따라가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늘 영어는 예외였다. 아이가 평범했다면 아마 나는 서너 살 무렵부터 아이에게 영어를 가르쳤을지도 모르겠다. 그 나이에 할 수 있는 게 영어 CD를 듣거나 영어책을 읽어주거나, 영어가 나오는 소리 나는 장난감을 사주는 정도였겠지만, 실제로 나는 돌 무렵부터 영어 CD를 틀어놓고 아이와 함께 들었다. Polar bear, polar bear, what do you hear? 지금도 또렷이 기억나는 노래. 그러다 21개월 즈음, 나는 이 모든 걸 중단했다. 비단 영어뿐만 아니라 한국어로 된 책이나 CD 모두 다. 이유는 단 한 가지, 아이가 말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찾아간 소아정신과 병원에서는 언어를 배우는 데 미디어가 가장 나쁘다고 했다. 언어란 사람과의 상호작용인데 미디어는 이 상호작용을 방해하고, 책을 읽어주는 것도 상호작용이라기보다는 부모가 읽어주고 아이가 듣는 일방적인 방식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때 당시 아이는 문자에 강한 집착을 보였는데, 작정하고 가르쳐 줬으면 단어 하나 제대로 말하지 못하는 아이가 글자를 아는 기이한 상황이 펼쳐졌을 것이다. 한때 아이는 한자 노래를 듣다가 한자카드를 구별할 정도로 문자를 기억하는 힘이 상당했었다.
이젠 사람들과 대화를 주고받는 능력인 화용언어를 제외하고, 표현언어나 수용언어에서 제 또래들을 훌쩍 뛰어넘는 아이지만, 혹시라도 모국어를 구사하는 데 외국어가 방해가 될까 영어를 가르쳐주지 않았다. 영어는 무슨! 한국말을 잘해야지, 와 같은 마음으로 때를 기다렸다. '아이에게 왜 영어를 가르쳐 주고 싶을까' 같은 질문만 수없이 내뱉으면서. 결국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그동안 꼭꼭 감춰뒀던 영어에 대한 욕망이 드러났다. 용기를 내어 의사 선생님께 물었다.
"개인적 질문일 수도 있는데, 혹시 아이에게 영어를 가르쳐 줘도 괜찮을까요?"
"어머니, 영어를 가르쳐줘야 하냐고 물어보시는 게 아니라, 영어는 당연히 가르쳐 줘야 하는 거예요. 언어적 강점이 있는 아이인데 당연히 영어를 배워야죠. 강점을 키워주셔야죠."
의사 선생님의 대답은 내 예상을 벗어났다. 언어적 강점이 있는 아이, 라는 말에 살짝 충격을 받았다. 말을 늦게 뗀 아이가 어떻게 언어적 강점을 갖고 있느냐 묻는다면, 나도 할 말은 없으나 아이의 지능검사 결과지를 보면 그렇게 나와 있다. 언어적 습득 기능에 강점이 있으나 언어를 실생활이나 문제 해결 과정에서 원활하게 활용하거나 적용하는 기능은 상대적으로 부족한 것으로 판단된다.
그동안 나는 아이의 약점에 집중하느라 정작 강점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지능 간 편차가 심해서, 아이의 부족한 기능을 올려주셔야 해요. 아이가 잘하는 건 부모의 개입 없어도 잘할 거니까요. 약 1년 반 전, 지능검사 후 임상심리사가 내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이 말 때문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나는 아이의 부족한 점을 끌어올리기 위해 지금껏 달려왔다. 사회성이 문제야, 사회성을 키워줘야 해. 그런데 정작 잊고 있었다. 내 아이에게도 강점이 있다는 것을. 지능검사 결과지만 읽어봐도 한눈에 딱 들어오는 아이의 강점 대신, 나는 아이의 약점만 캐내느라 허덕였다. 네가 자존감이 낮은 이유도 있겠구나. 네가 잘하는 걸 알아주지 못했으니.
이제부터 시작이다. 영어, 그게 뭐라고! 라는 마음에는 변화가 없다. 내가 가르쳐주고 싶은 건 학문으로서의 '영어'가 아니라 언어로서의 '영어'니까. 이게 무슨 말장난인가 싶지만, 내가 아이에게 영어를 가르쳐 주고 싶은 이유는 다른 나라 사람들과 자유롭게 대화하는 것이니까. 언어를 할 수 있는 만큼 네가 닿을 수 있는 다름에 대한 경험의 깊이가 달라질 테니까. 그저 심플하게, 너와 함께 세계 일주를 하고 싶으니까.
곧 가자! 어디든 여행하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