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는 불안을 먹고 사는구나

일곱 살 아이의 겨울(2021.12-2022.02)

by 하이리



영어가 뭐라고




새해부터 무슨 바람인지 페파피그 원서 검색만 한 시간째다.


아이에게 아침마다 페파피그 영어 DVD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그동안 우리 집 금기 사항이었던 미디어 노출. 물론 100% 미디어를 차단한 건 아니지만, 적어도 집만큼은 ‘영상 안보는 집’으로 남고 싶었다. 아이는 미디어에 대한 강한 욕망을 일주일에 한두 번 가는 외가에서 해소하곤 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30분여 TV를 보던 게 이젠 거의 한 시간 정도로 늘어났지만, 아직까지 우리 집은 NO 텔레비전이니 그걸로 위안을 삼았다. 그런데 이젠 대놓고 집에서 DVD를 보여준다. 이유는 단 하나. 영어 때문에.


알고 보면 아침잠 많은 내 게으름도 있긴 하다. 굳이 비중을 따지자면 게으름 80%, 영어를 가르치고 싶은 마음 20% 정도. 그런데 요즘은 이게 역전되었다.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불안감 폭발이다. 이러다 영영 ‘영어라는 세계’에서 멀어지는 거 아냐?


아이가 초등학교에 간다. 초등학교 1학년 스케줄을 두고 다시 고민에 빠졌다. 주 6회 하던 치료 중 하나는 줄이고, 최근 다시 시작한 태권도는 그대로 가져가고 싶다. 다행히 아이가 태권도 거부는 더 이상 하지 않는다. 주 1회 하는 피아노도 유지하고 싶다. 소근육 발달에 도움이 되기도 하고 아이 스스로도 피아노를 잘 친다고 생각하고 있다. 긍정적인 신호다.


마지막 고민인 영어는? 생각을 거듭한 끝에 영어 학원은 보내지 않기로 했다. 영어 유치원 출신 아이들 틈에 혹시나 기죽을까 겁난다. 사실 레벨 테스트 조차 받기 힘든 수준이다. 나는 영어를 못해. 나는 아무것도 잘하는 게 없어. 영어 배우고 싶지 않아. 조금 못한다 싶으면 너무도 쉽게 좌절하는 아이가 훤하게 그려진다.


아이들에게 영어는 필수인 시대가 되었다. 영어 유치원이나 방과 후 영어 학원, 하다 못해 원어민 영어 회화를 한다. 밝고 건강하게 플러스 남들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자라면 바랄 게 없겠다, 하던 생각도 학교를 보낼 때가 되니 욕심이 늘어난다. 학교 적응도 불안 불안한데 이 와중에 영어라니!


그나마 대안으로 선택한 건 엄마표 영어다. 최근 엄마표 영어 공부법으로 유명한 잠수네를 읽었는데, 요약하면 영어를 잘하기 위해서는 최대한 많이 듣고, 소리에 익숙해지면 소리와 글자를 집중해서 확인하고, 그다음은 영어책을 읽는 것이라고 한다. 잠수네에서 요구하는 영어 노출 시간은 적게 잡아도 하루에 세 시간. 지금껏 미디어 노출을 최소화했던 내 아이에게 하루 세 시간은 무리고, 이것저것 생각해 하루 30분에서 1시간 정도만 투자하기로 한다. 계획과 달리 마음은 더 조급해서 여전히 엄마표 영어 학습법을 찾고 있는 나를 본다.

부모의 교육 방침과 태도는 시대적 산물이다. 그런데 막상 개인은 그 사실을 인식하기가 쉽지 않다. 아이에게 바라는 어떤 교육 목적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느끼게 된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역사의 종말 환상’이라고 한다. 우리가 지나온 과거를 볼 때는 모든 것이 극과 극으로 변해왔다는 것이 명백하다. 그런데 막상 우리는 우리 자신과 이 시대가 마치 영원할 것처럼 행동한다. 엄마가 아이 일생의 승패가 악기를 다루는 교양인이 되는 것에 달려 있다는 당시의 사고방식을 철저히 믿었던 것처럼.


최근 읽은 박혜윤 작가의 [숲속의 자본주의자]에 나오는 글이다. 영어 공부에 아등바등하는 나를 위로해 주는 문장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이 고민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작가가 자란 1980년대는 악기 하나 정도는 다뤄야 교양인이 되는 시대였다. 악기라 하면 단연 ‘피아노’였다. 나도 비슷한 시대적 배경 아래에서 자랐고 당연 피아노도 배웠다.


요즘 아이 교육의 최우선 순위는 영어일 것이다. 대여섯 살 된 아이들이 한 달에 200만 원에 육박하는 돈을 내고 영어 유치원에 다닌다. 인터넷에 영어를 치면 관련 정보가 촤르르 쏟아진다. 스압 주의. 어차피 '부모의 교육 방침과 태도가 시대적 산물'이라면 나는 그런 교육관에 동참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하지만 나는 자신이 없다. 솔직히 나도 내 아이가 영어 좀 하는 아이였으면 좋겠다.


이제 갓 여덟 살 된 아이의 영어 학습에 몰입하는 나를 바라보며, 도대체 왜 이래야 하는지 생각해 보았다. 아이들의 교육에 목을 매는 이유는 단순화해서 얘기하면, 명문대 입학 그리고 고임금 직업을 갖는 것일 테다. 이 두 가지 목적이 너무 메마르게 느껴진다면 한 가지 더 추가할 수는 있겠다. 그건 아마도 사회적 인정일 것이다. 좀 더 진지하게 묻자. 나는 내 아이가 어떤 사람이 되길 원하는가? 역시 위에 언급한 범위에서 벗어나지 않지만 그런데 잠깐, 내가 원한다고 아이가 그 길을 따라갈 보장이 있을까? 지금도 엄마 아빠 말을 개똥으로 아는 아이가? 그저 부모 된 마음으로 내 아이가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바란다 해도, 아마 그 또한 이루기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영어로 시작해 어쩌다 보니 이야기가 여기까지 흘렀지만, 그냥 내 아이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사회성 발달에 필요한 온갖 수업을 받는 이유도 아이가 이 사회에서 행복하길 바라기 때문이다. 영어든 뭐든 아이의 행복 다음이다. 아이에게 무엇을 시키든 절대 무리하지 말자. 부모의 교육 방침과 태도는 시대적 산물이라는데, 극과 극으로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이라는데, 무엇을 하더라도 좀 유연하게 하자.




오늘은 너보다 나에게 더 필요한 말
유연하게 생각해, 조급해하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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