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살 아이의 겨울(2021.12-2022.02)
네 살, 초코머핀과 로보카 폴리
다섯 살, 초코머핀과 아이스크림 가게
여섯 살, 호퍼스 보드게임
일곱 살, 변신 로봇 애니멀 킹
이번 크리스마스 선물은 ‘변신 로봇 애니멀 킹’이다.
감통 시간, 선생님과 함께 이 로봇을 갖고 논 모양인데 이후 아이가 크리스마스 선물로 변신 로봇 애니멀 킹을 사달라고 한다. 로봇 장난감에 관심 없던 아이가 웬일로 이리도 평범한 장난감을, 그것도 남자아이들의 로망인 변신 로봇을! 그래, 그런 건 얼마든지. 나는 반가운 마음에 얼른 선물을 주문했지만 실제로 아이가 변신 로봇을 갖고 놀 거란 기대는 하지 않았다. 아예 생각 자체가 없었다. 아이 방에 있는 대부분의 장난감이 그렇듯, 한번 쓱 보고 난 뒤 장난감 정리함에 던져 놓고 끝! 이라 여겼다.
어려서부터 아이는 장난감을 갖고 놀지 않았다. 아이가 즐기던 가장 아이다운 장난감은 버튼을 누르면 소리가 나는 것들이었다. 소위 사운드 북 같은 것들을 아이가 참 좋아했지만, 21개월 즈음 언어치료를 받기 시작하면서 사운드 북을 모두 정리했다. 한때긴 하지만 책도 읽어주지 않았다. 상호 작용이 부족한 아이에게 책만큼 일방적인 것도 없다는 전문의의 말을 들은 이후였다.
현재 아이가 갖고 있는 장난감 대부분은 아이에게 도움이 될 것 같아 내가 직접 구입한 것들이다. 나는 역할놀이와 상상놀이를 가르치기 위해 ‘치카치카 목욕 놀이’나 ‘야채 씻기', '뽀로로 하우스’와 같은 장난감을 샀다. 부족한 시지각을 메꾸기 위해 아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레고 듀플로 시리즈를 사 모았고, 놀이보다는 학습에 가까운 밤비노루크나 로지코 프리모를 중고로 들였다. 나는 아이를 내 앞에 앉혀 두고 ‘너는 뽀로로, 나는 에디’라고 부르면서 놀이를 가르쳤다. 부모로서 의무감과 책임감을 다해서.
어린이날이나 생일이나 크리스마스 날, 나는 의례히 아이에게 갖고 싶은 선물을 묻곤 했다. 이렇게 설레는 질문에도 아이는 대답하는 걸 망설였다. 어마어마하게 풀기 어려운 숙제가 던져진 듯 잠시 생각에 잠기다 결국 '몰라'라고 대답했다. 나에게도 이건 숙제였다. 아이의 부족한 점을 보충하듯 장난감을 살 때가 많았지만, 아이가 진짜 원하는 것을 사주고 싶은 마음도 사그라지지 않았다. 때로는 아이가 무심코 한 말을 떠올리며 선물을 택하기도 했다. 식당 옆 테이블에 앉은 아이가 ‘헬로카봇 댄디 앰뷸런스’를 갖고 노는 걸 보며, "엄마 나도 저 장난감 갖고 싶어" 라고 말하던 걸 떠올렸다. “그때, 너 OO레스토랑에서 어떤 아이가 갖고 놀던 장난감 사고 싶어 했잖아. 이번 선물로 그걸 사줄까?” “응, 맞아! 그거 사줘.”
네 살 크리스마스 때 아이가 받은 선물은 '초코 머핀'. 세 살 때는 아이가 막 두 돌을 지난 시점으로, 단어 하나 띄엄띄엄 말할 수준이니 무슨 선물을 받을지 물어볼 수 없었다. 아이가 네 살이 되자 언어치료 선생님이 크리스마스 선물로 뭘 받고 싶은지 물었는데, 아이가 ‘초코 머핀’이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초코 머핀이란 말이 어떤 경로로 나왔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나는 그 말을 듣고 진짜 크리스마스 선물로 초코 머핀을 샀다. 인터넷 검색으로 알게 된, 당시 네 살 아이들이 가장 좋아한다는 로보카 폴리도 함께.
다섯 살 크리스마스에는 아이가 정말 제 입으로 크리스마스 선물로 초코 머핀을 사달라고 했다. 지난해 초코 머핀을 받았으니 이번에도 역시 같은 것, 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워낙 단 음식을 좋아하는 아이기도 하니까. 나는 초코 머핀에 내가 사주고 싶은 아이스크림 가게 장난감을 곁들였다. 초코 머핀과 아이스크림의 조합만큼 달콤한 건 없을 테니.
여섯 살 크리스마스는 좀 발전했다. 의례 초코 머핀을 떠올리는 아이에게, 나는 다른 것을 말해달라고 주문했다. 아이는 자기 마음보다는 주변을 살피며 대답할 거리를 찾았다. 마침 아이가 평소 즐겨하던 보드 게임 카탈로그가 있었고, 아이는 개구리 모양을 닮은 보드 게임 사진을 가리키며 이 보드 게임도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래, 그럼 이번 크리스마스 선물은 호퍼스 보드게임이닷! 여섯 살 크리스마스 선물은 나름 성공적이었다.
그리고 이번 크리스마스! 아이는 감통 선생님과 함께 놀던 변신 로봇 애니멀 킹이 갖고 싶다고 말했다. 모든 변신 로봇 장난감이 그렇듯, 한 버전을 사고 다른 버전을 사면 두 버전을 합체하여 더 큰 로봇을 만드는 장난감이었다. 나는 애니멀 킹을 먼저 주문했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아이가 부족한 시지각으로 로봇 변신을 이내 포기하거나, 그게 아니더라도 빈약한 상상력으로 몇 분 갖고 놀다 그만할 거라 여겼다. 그런데 이번 로봇은 좀 달랐다.
아이는 세 개의 몸통으로 분리되는 장난감을 제 마음껏 조립하더니 이건 '진화'고 이건 '메가 진화'라고 설명을 해주었다. 괜히 포켓몬 도감을 읽은 게 아닌가 보다. 내가 가르쳐 준대로만 조립을 하는 게 아니라, 이건 넣고 저건 빼고 자기 손이 닿는 대로 자유롭게 움직여 놀았다. 완성한 로봇을 베개 뒤편에 세워두고 유령이 나타나면 지켜 달라고도 했다. 아이는 여세를 몰아 할머니 할아버지 선물로 같은 시리즈인 와일드 킹을 사달라고 주문했다. 장난감 박스에는 그려져 있으나 '별매품'이라 쓰여 있던 또 다른 변신 로봇이었다. 아이는 이제 두 시리즈를 제법 그럴듯하게 합체한 뒤, 여러 물건을 둘러싸며 울타리를 만들며 논다.
나는 이 변화가 반갑다. 아이답게 논다는 정의가 참으로 모호하지만, 생각나는 대로 자유롭게 노는 내 아이가 대견하다. 여전히 확실한 답을 찾아 헤매는 아이지만, 시각적이든 청각적이든 여러 자극에 부산스러운 아이지만, 머릿속에 이것저것 떠올리는 공간의 여유를 갖게 된 아이를 온 마음으로 응원한다.
장난감 세상에 온 걸 환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