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살 아이의 겨울(2021.12-2022.02)
오늘의 반성문
아이를 키우면서 개인적으로 지켜야 할 몇 가지 ‘철칙’ 같은 게 있었다.
그중 하나가 기본적인 사회적 규칙이나 도적적 가치를 제외하고, 아이를 가르치지 말 것. 다른 하나는 아이가 쏟아내는 감정적 배설에 휘둘리지 말 것. 그런데 오늘 나는 그 두 가지를 모두 어겼다.
참으로 부끄럽게도 나는 아이에게 고함을 지르고 아이에게 해서는 안될 말들을 내뱉었다. 굉장히 신랄하고 잔인하게. 너는 다른 사람을 화나게 하는 사람이 될 거야. 아무 말도 하지 마. 그냥 가만히 있어. 네가 하는 말은 사람들의 화를 돋우니까. 네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해서 짜증 내지 마. 네가 짜증 내는 걸 보면 나도 짜증이 나니까. 처음부터 잘하지 못한다고 화낼 거면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마. 그럼 너는 그 어느 것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사람이 되겠지.
어린이집 선생님으로부터 아이가 피아노 연주를 하기로 했다는 말을 들었다. 크리스마스를 축하하는 작은 파티에, 아이가 자신이 피아노를 잘 친다며 ‘피아노 연주’에 손을 들었다는 거다. 피아노 학원에서 남자아이 다섯 명이 수업을 듣는데, 아이는 개중에 양손 연주를 가장 수월하게 익혔고 그 덕에 '나는 피아노를 잘 친다'는 굳은 믿음을 갖고 있던 터였다. 여자 아이 한 명만 있어도 좀 달랐을 텐데... 사실 나도 그 믿음에 어느 정도 지분이 있었다. 줄넘기를 못하는 아이에게, 그림을 못 그리는 아이에게 ‘너는 피아노를 잘 치잖아’라고 위로하곤 했으니까.
하원길에 어린이집 선생님은 아이의 피아노 연습을 부탁했다. 나는 아이에게 어떤 곡을 연습해야 하는지 물어보았다. 악보도 없는 상태에서 온전히 아이의 기억에 의지한 채, 아이가 뜨문뜨문 연주하는 곡의 계명을 노트에 받아 적었다.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봄직한 동요라 곡의 흐름은 대강 짐작할 수 있었으나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아이는 어깨에 힘을 가득 실은 채, 거의 독수리 타자를 치듯 엉성하게 음을 눌렀다. 양손 연주가 아닌 한 손 연주인데도 그랬다. 나는 손가락 번호를 가르쳐 주며 "이렇게 치는 게 더 편하다"라고 말했다. 역시 아이는 짜증을 냈다. “그게 아니라니까.”
내가 전체 곡을 연주하며 “선생님이 가르쳐 준 게 이게 맞지?”라고 확인하면, 아이는 박자가 이상하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아니, 그게 아니라니까.” 보통 때 같으면 그만하자고 말했을 텐데, 하필이면 바로 내일 다른 아이들 앞에서 피아노 연주를 해야 한다는 사실이 이를 가로막았다. 내 아이가 엉망진창 피아노 치는 모습을 떠올리고 싶진 않았다. 이왕이면 실수 없이 쳤으면 좋겠고 아이가 그런 경험을 했으면 싶었다. 그래서 연습을 강행했다. 아이는 한 음 한 음 틀릴 때마다 짜증을 냈다. 여과되지 않는 아이의 화는 내 몸에 차곡차곡 쌓였다. 내 목소리도 점점 거세졌다.
아이에게 뭔가 가르치려 할 때마다 반복되는 이 과정. 한글 쓰기를 가르쳐 주려다가 십분 만에 녹다운, 결국 방문학습 선생님을 선택한 나였다. 아이에게 줄넘기를 가르쳐 주기 위해 특수체육을 시작했다. 나는 아이를 가르칠 수 없었다. 한글 한 자 틀리는데, 줄넘기 한 번 못 넘는데, 아이는 자지러지듯 화를 표현했으니까. 멈추지 않는 아이의 짜증에 끝내 나도 폭발했다. 나는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비명에 가까운 절규를. "제발, 그만 좀 화내라고!"
나는 놀라서 우는 아이를 화장실로 데려가 얼굴과 손과 발을 씻겼다. 여전히 씩씩대며 우는 아이를 끌고 가 잠옷을 입히고 로션을 바르고 불을 끄고 방문을 닫았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가 말을 하면 아이가 다칠 것이다.
아이가 소리를 지르며 거실로 나오자 나는 어두운 표정으로 아이를 소파 위에 앉히고 네가 뭘 잘못했는지 생각해 보라고 말했다. 타임 아웃. 나에게도 시간이 필요했다. 그 와중에 아이는 “내가 왜 그래야 하는데?”라고 대꾸했다.
"그냥 아무 말하지 말고 생각해."
"엄마야 말로 말하지 마."
실랑이가 다시 이어졌다.
“너, 정말 구제불능이구나.”
나는 아이의 눈을 쏘아보며 말했다. 아이의 시선이 내게 멈춘 듯하다가, 벽 쪽으로 향하는 게 느껴졌다.
"너 뭐 보고 있니?"
"저기 지하철 노선도."
아이는 그 와중에도 거실 벽에 붙은 지하철 노선도로 시선을 돌렸다. 나는 한숨을 쉬었다.
"그만 하자. 내가 너를 데리고 무슨."
이 이야기의 결말이 궁금하다고? 다행스럽게도 새드 엔딩은 아니다. 아이와 나는 이불 위에 나란히 누워 어두운 천정을 바라보았다. 아이가 내 쪽으로 다가와 내 눈빛을 살피는 게 느껴졌다. 나는 어른으로서 고함을 지른 것에 대해 미안하다고 말했다. 아이도 내게 짜증을 낸 것과 소리를 지른 것에 대해 미안하다고 얘기했다. 나는 "뭐든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어. 잘할 때까지 연습을 해야지"라는 말을 꺼냈다가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아 그만두었다. 밤 10시 15분, 아이는 평소보다 늦은 시간 잠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다.
부끄럽고 부끄럽다.
그래도 아이와 화해는 했으니 다행이다.
오늘은 여기까지다.
이제 그만.
정말 그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