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살 아이의 겨울(2021.12-2022.02)
하루가 다르게 아이가 발전하고 있다.
근 한 달 동안 아이는 정말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성장했다. 정리하면...
아는 사람에게 인사.
매주 만나는 사회성 그룹 친구들도 쌩까던 아이가 이젠 제법 안녕이라고 말한다. 다만 타이밍은 늘 문제다. 비슷한 어려움을 가진 아이들의 인사는 허공에 대고 하는 것과 같아서, 내 아이가 친구에게 ‘안녕’이라고 말하면 그 친구는 가만히 있다 엄마의 채근에 ‘안녕’이라 답하곤 한다. 이미 다른 곳으로 시선을 두는 내 아이에게. 그나마 어른에게 하는 인사는 인사답다. 아이가 얼굴을 보지 않고 인사해도, 어른들은 기어이 인사를 받아주려고 한다. 그런 어른들이 많아서 다행이다.
혼자 자기 시도 중.
‘용기’ 봉이 있으면 무서움이나 두려움도 날아가 버린다는 동화책을 읽은 뒤 아이가 혼자 잠을 자겠다고 한다. 올해 초, 일곱 살이 되면 혼자 잔다는 새해 목표를 서너 번 실천하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는데 이젠 스스로 자겠다니! 아이를 응원하기 위해 동화책 속 용기봉과 비슷한 모양의 야광 블록도 주문했다. 이제 아이는 연한 초록빛을 반짝이는 용기봉을 손에 쥔 채 홀로 잠든다. 물론 단 사흘. 지금은 화수목은 혼자 자고, 금토일월은 엄마와 자야 한다는 새로운 규칙을 세웠다. 잠자리 독립만큼 반가운 게 있을까? 그게 반쯤 성공이라 해도.
어느 정도 타협 가능.
이전에도 타협이 불가능한 건 아니었다. 몇 분 정도의 강한 실랑이와 남들이 잠깐 쳐다볼 정도의 짜증 섞인 신경질이 담보가 돼서 그렇지. 그런데 요즘은 큰 잡음 없이 엄마 말을 듣는 것 같다. 엄마 핸드폰 만지지 말고 바로 줘. 5분 뒤엔 어린이집에 가야 해. 초콜릿은 밥 먹고 나중에 먹자. 즉각적인 아이의 반응은 "이- 녀석!!" 외할아버지가 쓰던 ‘이 녀석’이라는 말은 또 언제 배웠는지, 요즘은 기분 나쁘다는 의미로 ‘이- 녀석’이 불쑥불쑥 나온다. 그런데 딱 여기까지. 엄마 말을 들으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인다. 기특하다. 어른에게 나쁜 말 하는 거 아니라고 말했더니, 이젠 기분 나쁠 때마다 "이 녀석이라고 말하지 않을게" 라며 약을 올리긴 하지만. 그래도 지금은 일단 이 정도로 만족한다.
그런데 복병이 나타났다.
다름 아닌 나 자신. 나는 요즘 짜증을 숨기지 않는 나를 본다. 같이 놀자라는 말에도 엄마 바쁘니까 이것만 하고! 횟수로 하면 아마 열에 여덟은 이 대답이다. 옆에서 계속 치근덕대는 아이에게는 "너 정말 계속 그렇게 할래?"라는 신경질로 마무리. 아이와 같이 놀다가도 15분 정도 만에 일어나 구석진 곳에서 별 시답잖은 핸드폰만 만지작 거리기 일쑤다. 아침마다 먼저 일어난 아이를 두고 나는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며 잠을 청한다. 아이는 그동안 책을 있거나 아니면 내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는데, 그럼 또 엄마 핸드폰 만지지 말라고 짜증을 낸다.
며칠 전에도 제시간에 자기 싫은 아이가 30분 넘게 책을 읽고 있었다. 나는 그 30분 동안 멍 때리고 앉아 있다 또 짜증을 내고 말았다. 너 지금까지 잘 준비 안 하고 뭐 하니? 빨리 세수하고 자야지. 이렇게 계속하면 엄마 정말 화난다!
나는 요즘 아이에게 늑장 부리지 말라고 하거나, 어서 어린이집 가라고 재촉하거나, 지금 당장 숙제를 하라고 지시하거나, 바로 씻고 자라는 말 외에는 거의 하는 게 없다. 아이가 제 때 말을 듣지 않으면 또 신경질! 너 자꾸 이럴래? 진짜 엄마 화난다! 세상 무너질 듯 한숨이 튀어나온다. 아이는 급성장하고 있는데 나는 왜 급하강기로 가고 있는지… 스트레스가 많은 걸까? 휴식이 필요한가? 결국 꽉꽉 채워지는 건 냉장고 속 맥주뿐. 요즘은 달달한 과일 맥주가 참 맛있더라. 오늘도 나는 맥주 한 캔 마시며 자기 위안 중.
요즘 내 아이는 그 누구보다 사랑스럽다.
아침을 먹으며 숟가락과 젓가락
그릇을 이리저리 움직이더니
로봇이라며 보여주는 아이.
이건 얼굴이고 이건 몸이고
이건 팔이랑 다리야.
설명을 듣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는 모양을 보고, 나는 "와, 정말 그렇구나!"
어려서부터 책을 외워서 말하거나
누군가 알려준 놀이를 그대로
따라 하는 것 밖에 모르던 아이가
이제는 빈 식탁에 숟가락과 젓가락과 그릇을 자기 마음대로 배열하며 논다.
다른 아이들이라면
서너 살부터 보이던 이런 행동들.
나에겐 비록 최근 일어난 일이지만
그래서 더 값지다.
지금 너는 내게,
너의 서너 살 시절의 모습을 보여주는구나.
이 모습이 소중하다는 걸 알게 해주는구나.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