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살 아이의 봄(2022.03-2022.05)
미안하다. 사랑한다.
남편 얘기는 별로 꺼내고 싶지 않았다.
남편은 정말 좋은 사람이고 아이와 재미있게 놀아주는 친구 같은 아빠지만, 단 하나 잔소리가 너무 많다. 남편은 자꾸 아이와 싸운다. 이거 하지 마라, 저거 하지 마라, 이건 안된다, 저건 안된다. 내가 아이에게 잔소리를 하는 것과 남편이 잔소리하는 것을 듣는 건 다른 문제다. 이기적일 수도 있지만 아이에게 하는 남편의 잔소리를 나는 견디지 못한다.
엄마와 아들 그리고 아빠와 아들은 같은 잔소리라도 다른 방향을 향한다. 엄마의 잔소리는 그런대로 넘어가는 반면 아빠의 잔소리는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다. 아이는 아빠의 제재에 전투욕을 불태운다. 아빠의 지시와는 반대로 행동한다. 우스운 것은 남편도 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남편은 아이를 굴복시킨다. 이럴 땐 아이가 하는 "미안해."라는 말도 소용없다.
"아빠, 미안해. 다신 안 그럴게요"
"그 말 믿을 수 없어. 다시 하지 않겠다 해도 또 그러잖아.
아이는 결국 울음을 터트린다. 아이가 가장 약한 모습을 보인 후에야 남편의 감정이 가라앉는다.
남편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남편은 엄격한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평범한 가정이지만 그 안에는 아버지에 대한 위계가 확고했다. 남편은 아버지 말에 순응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 훈계를 받으며 자랐을 것이다. 또한 남편은 조용한 모범생이었다. 자신의 말에 반항하듯 행동하는 아이를 남편은 용납하지 못한다.
남편은 불안도 많은 편이다. 약속 시간에 아이가 늑장을 부리면 이를 참지 못하고, 공공장소에서 조금이라도 피해가 된다 싶으면 바로 훈육 모드다. 아이가 의자에 올라서거나 엘리베이터 손잡이에 올라앉는 것만 봐도 불호령이 떨어진다. 문제는 아이가 바로 행동 수정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이는 모른 척 가만히 있거나, 오히려 과장된 몸짓으로 아빠의 화를 돋운다. 이 지점이 바로 삼십 분여 지속될 심리전의 시작이다. 나는 두 사람이 벌이는 전쟁에서 도망치고 싶다. 아무것도 듣고 싶지 않다.
남편과 이 문제를 두고 자주 다퉜다. 제발 잔소리 좀 줄이라고. 하지만 잔소리의 빈도가 잦아지면 반대로 잔소리의 강도가 높아지는 기현상이 발생했다. 머리로는 남편을 이해하지만 마음으로 나는 늘 아이 편이다.
"그냥 장애가 있는 아이라고 생각해. 불쌍하게 생각하라고."
나는 결국 장애란 말을 입 밖에 꺼낸다. 연민이라도 가졌으면 좋겠다 싶어서다. 나는 남편이 아이를 바른 길로 이끌어야 할 지도자가 아니라, 아이가 힘들 때 지켜줄 수 있는 수호자가 되었으면 좋겠다. 따지고 보면 나도 잘못하는 일이다. 나도 그렇고 남편도 그렇고 우리 둘 다 부족하다.
이런 표현은 그렇지만 아이는 정말 아무런 문제도 없는 듯 보인다. 신경발달상의 문제는 절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적어도 몇 시간 겪어봐야 알 수 있다. 사사건건 지나치지 않는 아이의 예민함을, 궁금증이 풀릴 때까지 늘어지는 아이의 집요함을, 감정적 공유가 필요한 순간에 적당한 반응을 보지지 않는 아이의 미묘함은 오랜 시간이 지나야 비로소 깨닫게 되는 법이다. 그러면서도 나와 남편은 가장 이상적인 잣대를 아이에게 제시한다. 우리는 지금 방황 중이다. 휴전이 필요하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경계에 선 내 아이.
너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