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살 아이의 여름(2022.06-2022.08)
그냥 지나가는 일
센터를 다니다 보면 정말 다양한 아이들을 본다.
평범하다는 말 외에 특별히 할 말이 없는 아이도 있고,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거나 쉴 새 없이 말을 하는 아이도 있다. 아예 말을 못 하거나 어눌한 발음으로 말하는 초등학생도 보았다. 내 아이는 '평범'에 가깝지만 때때로 한눈에 봐도 눈에 띄는 아이들을 보기도 한다. 그럴 때 내가 할 수 있는 건, 가능한 모른 척 아무렇지 않게 내 일에 집중하는 것. 가끔은 애처로운 감정이 일지만 나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듯 태연히 내 할 일을 하곤 했다. 그게 상대방에 대한 매너라고 생각했으니까.
며칠 전 센터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 열 살 정도 돼 보이는 빼빼 마른 여자 아이가 수업 도중 문을 박차고 나와 떼를 쓰는 상황. 들리는 바로 유추하자면 아이가 양말을 찾는 것 같은데, 아이는 ‘양말’이라는 단어를 하이톤의 ‘익익’ 소리와 함께 내고 있었다. 선생님과 아이의 엄마가 몇 분간 실랑이를 벌인 뒤 아이가 겨우 자기 교실로 돌아갔다. 교실 안에서는 비명과 가까운 소리가 계속 새어 나왔다. 답답함, 어쩌지 못함, 아픔이나 슬픔과 같은 감정이 일기 시작했다.
센터 대기실의 공기가 무겁게 흘렀다. 그런데 이런 분위기에서 벗어난 사람이 한 명 있었다. 그건 바로 그 아이의 엄마. 그녀는 자기 옆에 앉은 사람과 일상적인 얘기를 주고받은 뒤, 몇 분 후 수업을 마치고 나온 아이에게 어떤 의미에서는 명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수업 잘했어? 이제 집에 가자."
여유로 무장한 엄마들을 가끔 마주친다. 그들과 달리 나는 온갖 걱정과 불안에 시름하는 엄마지만, 반대로 낙천적이며 긍정적인 태도를 가진 엄마들을 보면 내 마음도 덩달아 가벼워진다. 언젠가 자폐 스펙트럼 아이를 둔 지인의 부모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가 자라고 있어 대견하다."라고 말했다. 그 작은 변화가 주는 기쁨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오래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현충일을 맞아 아이의 학교 친구들과 포켓 몬스터 영화를 보러 갔다.
쉬는 날, 무려 여덟 명의 친구들과 함께 영화를 본다니 아이들도 설레었을 것이다. 집 근처에서 만나 함께 지하철을 타고 서너 정거장 이동한 뒤 극장으로 향했다. 아이들은 뛰고 시끄럽게 떠들고 이곳저곳 우왕좌왕했다. 그 안에 서 있는 내 아이를 본다. 다른 아이의 질문에 재빨리 대답하지 못하고, 1등으로 도착하려는 욕심에 너무 빨리 앞서 가는 아이를. 혼자만 갖고 있던 어린이용 다회권 지하철 카드를 자랑하고 싶은 마음에 말은 못 하고 카드만 손에 쥐고 놓지 않던 아이를. 한두 번 자랑하면 될 것 같은데 아이들 한 명 한 명 돌아가며 확인하듯 뽐내는 아이가 집요하게 내 눈에 들어왔다.
그 와중에 뭔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아이가 다른 친구의 팔을 세게 잡았다. 나는 아이에게 다가가 말했다.
"다른 친구를 괴롭히면 바로 집에 가는 거야."
화가 난 아이가 내 손을 세게 밀친다. 나는 지지 않고 아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엄마 지금까지 두 번 참았어. 세 번째는 정말 집에 갈 거야."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영화관으로 들어가는 바람에, 아이를 제재할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아이의 학교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신경이 곤두선다. 같은 학교, 같은 아파트 단지의 친구들이라 더 조심스럽다. 또래와 함께하는 시간을 만들어 주고 싶은 마음에 이 행렬에 동참하긴 했지만 아이의 행동에 부끄러움이 밀려오기도 한다. 부끄럽다. 엄마로서 이게 할 말인지 모르지만 부끄럽다. 이런 경험을 자주 해야 아이도 발전할 텐데, 오늘은 그냥 부끄럽다. 나도 그리고 너도.
오늘 하루만 부끄럽고 말지 뭐.
이게 얼마나 간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