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살 아이의 여름(2022.06-2022.08)
사회성 문제는 복잡하다.
사회성이 부족하다는 건 한마디로 표현하기 힘들다.
부끄러움이 많아 말을 잘 못하는 것도 사회성이 부족한 데서 나오고 너무 대놓고 자기 자랑만 해도 사회성이 부족한 것이다. 상황에 맞지 않는 말을 하는 것도 문제지만 상황에는 맞더라도 과한 표현이나 몸짓을 하는 것도 사회성이 부족하다는 증거다. 아이의 사회성을 두고 고민이 깊다. 아이가 클수록 그렇다. 서너 살 아이들이 과자를 서로 먹겠다고 울며 다투는 건 이해할 수 있지만 여덟 살 아아들이 그러는 건 여지없이 사회성이 문제다.
또래 아이들과 부딪히며 여러 경험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주말 중 하루는 꼭 다른 아이들과 함께 놀았다. 필요한 만큼 미리 약속을 잡았다. 아이들 노는 데 진심인 엄마로 비쳤을 것이다. 엄마의 친분이 아이들 간의 친밀함으로 이어지기도 하지만 가끔은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때로 내 아이와 코드가 안 맞는 아이를 만나기도 한다. 너무 순한 아이들은 내 아이와 잘 맞지 않는 것 같다. 운동 신경이 뛰어난 아이도 내 아이와 맞지 않는다. 내 아이는 그 아이를 시샘한다. 누구와는 잘 맞고, 누구와 잘 맞지 않고, 여전히 시행착오 중이다. 아이가 스스로 자신의 친구를 만들 때 까지는 아마 이런 과정이 계속될 거다.
주말에 친구와 공원에 갔다. 피아노 학원을 함께 다녔던 친구였고 가끔 만나던 사이였다. 이날은 그 친구의 또 다른 친구가 함께 오기로 되어 있었다. 나와 내 아이에게는 뉴페이스. 여기서 잡음이 생길 줄 몰랐다. 멀리서 놀고 있는 세 명의 아이들을 지켜보는 데, 처음 만난 아이가 엄마들 쪽으로 다가왔다.
"엄마, 쟤가 나를 밀쳤어."
내 아이를 두고 한 말이었다. 나는 아이에게 다가가 왜 그랬냐고 물어보았다. "저 애가 내 쪽으로 물을 뿌려서"라고 대답했다. 사방에 분수와 물길이 있는, 물놀이가 가능한 공원이었다. "그럴 땐 물이 튀지 않게 조심해 달라고 얘기해야지."라고 가르쳐 주며 그 아이에겐 미안하다 사과하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었다. 내 아이가 돗자리에 앉아 간식을 먹는 친구의 어깨를 슬며시 밀기 시작했다. 그 아이가 하지 말라고 해도 멈추지 않았다. 나는 아이를 다른 쪽에 앉히고 주의를 주었다. 또 이번에는 피아노를 같이 다녔던 친구와 다툼이 생겼다. 친구의 과자를 두고 서로 많이 먹겠다고 싸운 것이다. 아이는 그 친구의 과자를 통째로 가져다 먹다 친구가 과자를 빼앗아 가자 버럭 화를 냈다. 동시에 나도 화를 냈다.
"엄마가 몇 번 경고했지. 집에 가자."
"엄마 혼자 가. 싫어!"
아이는 공원이 떠나갈 듯 소리를 질렀다.
"부끄러운 거야. 이렇게 크게 소리를 지르면 부끄러운 거야. 사람들이 다 쳐다보잖아. 내가 너한테 분명 기회를 줬지. 마지막이라고 경고했지? 이제 그만 가자.
나는 짐을 주섬주섬 챙기며 우는 아이를 끌고 나왔다. 초면에 미안하다, 는 사과를 뒤로한 채 아이와 나는 터벅터벅 길을 나섰다. 기분이 엉망이었다. 다시 그 사람들을 만나고 싶지 않았다. 주말에 몇 번 만나 함께 놀던 친구에게도 연락하고 싶지 않았다. 친구에서 그냥 사람이 되어버렸다.
집에 도착해 아이에게 왜 그랬냐고 물었다. 아이는 "힘자랑하고 싶어서."라고 대답했다. 이 답이 아닐 수도 있다. 이 말은 운전 중 오늘 있던 일을 남편에게 설명하며 내가 쓴 워딩이었다. 그 애랑 친해지고 싶어서 그랬니? 아이가 그렇다고 대답했다. 아까는 힘자랑하고 싶었다며, 도대체 네 마음이 뭐니?
"힘자랑하고 싶어서. 싸우고 싶어서. 나는 싸우는 게 좋아."
"걔는 싸우면서 놀고 싶어 하지 않았어. 분명히 네게 하지 말라고 엄마가 말했지. 그렇게 하는 건 친구를 괴롭히는 일이야. 넌 오늘 그 친구를 잃었어."
친구를 잃었다는 말은 나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었다. 앞으로 만나자는 약속을 내가 하게 될지 마음이 서지 않았다. 지금까지 주로 내가 연락을 했고 약속을 잡았다. 그동안 어느 정도 마음이 통했던 엄마지만, 이런 고비를 넘기면 아마 더 친밀한 관계가 될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그 노력을 할 마음이 들지 않았다.
나는 지금 홀로 있다. 내 아이도 지금 홀로 있다. 내 남편도. 우리는 각자의 일을 했다. 아이는 마법 천자문을 읽었고 나는 반찬을 사러 밖으로 나갔고 남편은 서재에 앉아 있었다. 지나간 우리의 주말 풍경.
사회적 눈치가 없다는 말도 때로 추상적으로 다가온다.
무슨 뜻인지는 대충 알겠는데 구체적으로 도대체 무엇을 도와줘야 하는지 모를 때가 많다. 아이가 맞닥뜨리는 상황에 맞춰서 그에 걸맞은 사회적인 제스처를 알려줄 수밖에. 가끔은 어디까지 개입해야 하는지 난감할 때도 많다. 아이가 스스로 깨달을 수 있는 부분까지 엄마가 알려줘야 하나, 고민도 된다. 반대로 아무리 잘 알려줘도 아이가 제자리걸음을 걷는 것 같아 화도 나고 짜증도 난다.
아이와 함께 등교를 하고 있다. 입학한 지 3개월이 훌쩍 지났으니 이젠 혼자서 등교하는 1학년 아이들도 제법 눈에 띈다. 입학 초기만 해도 아이와 나란히 학교에 걸어가는 일도 녹록치 않았다. 같은 어린이집에 다녔던 친구만 보면 아이가 무작정 뛰어가곤 했다. 친구가 먼저 아는 척하면 땡큐. 아는 척하지 않으면 아이는 친구와 아무런 대화 없이 주변을 맴돌다 학교로 들어갔다. 그게 아니면 친구 앞을 왔다 갔다 하며 장난을 치곤 했다. 친구의 마음은 잘 모르지만 아이는 즐거워 보였다. 등굣길 우연히 만난 친구이니 반가울 수밖에. 다만 나는 이런 상황이 불편했다. 이야기도 나누지 않을 거면서 친구를 향해 뛰어가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한 달쯤 지나면서 아이가 친구를 향해 뛰어가는 횟수가 줄었다. 내가 옆에서 아이를 붙잡고 있기도 했고, 등굣길에 친구를 만나는 일에 익숙해지기도 했다. 아이가 더는 흥분하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오늘, 현재 같은 반이자 어린이집을 같이 다녔던 친구를 만났다. 친구는 할아버지와 함께 도로 건너편을 걸어가고 있었는데, 아이는 "OO야!" 부르며 친구를 향해 뛰어갔다.
드디어 친구를 만났다. 아이는 반가워서 앞을 가로막았지만 그 친구는 신발주머니를 아이를 향해 휘둘렀다. 할아버지가 "그러지 말라."라고 말하자 잠시 멈칫하다가, 내 아이가 주변을 맴돌자 다시 신발주머니를 휘둘렀다. 신발주머니가 아이의 머리에 살짝 스쳤다. 나하고는 좀 거리가 있었고 친구의 보호자는 할아버지여서 나는 그 상황을 지켜보기만 했다. 사실 교문을 코 앞에 두고 벌어진 일인 데다, 아이가 내게 인사도 하지 않고 친구를 따라 학교에 들어가 버렸기 때문이다.
친구가 신발주머니를 휘두른 건 아마 거부의 의미였을 것이다. 어린이집에서 한때 친했지만 어느샌가 그 친구는 다른 친구들하고만 놀기 시작했다. 아이는 여전히 그 친구를 좋아하지만, 엄마의 눈으로 봤을 때 그 친구는 내 아이를 좋아하지 않았다. 자기 말대로만 하거나, 눈치 없이 장난만 치거나, 사소한 이유로 화를 냈기 때문이겠지. 문제는 내 아이가 거절의 행동을 인지하지 못한다는 거다. 내 아이는 친구의 행동을 아마 재미난 장난으로 생각했을 거다.
집에 온 아이 앉혀 두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오늘 아침 OO이가 너한테 신발주머니를 휘둘러서 네 머리에 맞았지? 그 애가 왜 그랬을까?"
"몰라."
"그 아이는 네가 다가오는 게 싫었던 거야. 그 아이도 잘못한 일이지만, 만약에 친구가 다시 그렇게 행동하면 너도 하지 말라고 얘기한 뒤 다른 데로 가. 그래도 계속하면 선생님에게 말하고."
아이와 이야기하는 중 왠지 억울한 감정이 솟아올랐다.
"너는 그 아이를 좋아할지 몰라도 그 아이는 너를 좋아하지 않아. 너를 싫어한다고. 너를 좋아해주고 네가 좋아하는 친구하고 놀아. 모든 친구와 친할 필요는 없어."
"그만 얘기해! 알았다고!"
아이가 버럭 짜증을 냈다. 나는 멈추지 않고 몇 번 더 얘기하다 그만두었다. 아이가 내 말의 의미를 알아 들었을까? 아마 반도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해하더라도 다시 그런 상황이 되면 똑같이 행동할거다. 뭔가 더 강조하려다가 나는 또 아이에게 친구가 너를 싫어한다고 쐐기를 박아 버렸다. 아이는 오늘 나 때문에 친구를 잃었다.
방법을 찾아야 한다.
내가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아이에게 사회적 상황을 가르쳐 주는 방법을
내 아들을 지키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