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살 아이의 여름(2022.06-2022.08)
내 마음에 포켓몬 전쟁이 났다.
아이는 포켓몬 카드를 좋아하지 않는다.
또래들이 포켓몬 카드를 좋아하길래 그냥 알고라도 있으라며 포켓몬 카드 한 세트를 사준 게 전부다. 놀이터에 도란도란 앉아 포켓몬 카드를 교환하는 친구들을 멀찍이 바라보던 아이. 친구들은 포켓몬 카드 교환에 정신없었지만 내 아이는 그 안에 끼어들 틈을 찾지 못했다. 희귀한 카드는 너무 비싸고, 그래도 뭔가 아이에게 특별한 걸 주고 싶어 반짠반짝 골드 포켓몬 카드를 주문했다. 중국산 짝퉁, 1만 5천 원에 55장이 들어있는 카드였다. 아이는 황금빛 포켓몬 카드를 보며 뿌듯해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아이는 카드를 방 한구석에 내팽개친 채 잊어버렸다. 네 관심사가 아니구나,라고 생각할 즈음, 아이는 아빠의 주도로 골드 포켓몬 카드를 앨범에 빼곡히 채워 넣은 뒤, 학교에 가지고 가겠다며 책가방 안에 넣었다. 쉬는 시간 동안 아이들이 가지고 놀 수 있는 장난감을 허용하는 선생님이라서 특별히 문제가 되리라 생각하진 않았다. 혹시나 포켓몬 카드 개수가 적어서 무시받는 게 아닌지 걱정이 잠깐 스치긴 했지만, 말 그대로 그냥 스치고만 지나갔다.
지난 월요일, 아이는 일반 포켓몬 카드 이십 여 장과 포켓몬 골드 카드 55장이 담긴 앨범을 들고 학교에 갔다. 그런데 며칠 뒤, 갑자기 아이가 골드 카드를 친구들이 다 가져갔다고 얘기했다. 전부 다? 놀라서 찾아보니 골드 카드가 한 장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누가 가져갔냐고 물었다. 한두 명이 아니었다. 모두 여덟 명. 게다가 한 명은 같은 반도 아니고, 태권도에 다니는 다른 반 아이였다.
"친구들이 가져갈 때 네 허락을 받았어?
"아니."
"그럼 네가 가져가지 말라고 말했어?"
"아니."
"네가 처음부터 가져가라고 그런 거야?"
"안 그랬어."
아이의 대답은 정확하지 않았다. 되물으면 다른 대답을 하기도 했다. 아이가 자꾸 딴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목소리 톤을 높이며 얘기했다.
"친구들이 네 골드 카드를 가지고 갔을 때 기분이 어땠어? 속상했어? 아니면 기분이 좋았어?"
"속상했어."
"그럼 왜 그 친구한테 하지 말라고 얘기하지 않았어?"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몰랐어."
나는 아이를 앞에 앉혀 두고 골드 포켓몬 카드를 되찾을 예행연습을 했다. 내 골드 카드 돌려줘,부터 시작해서 친구가 돌려주지 않겠다고 얘기하면 다시 돌려달라고 말한 뒤, 그래도 싫다고 하면 선생님께 얘기하라고 일러두었다. 한두 명도 아니고 같은 반 아이만 총 일곱 명이였다. 그중에는 언젠가 내 아이에게 신발주머니를 휘두르던 아이가 있었다. 신발주머니 휘두를 땐 언제고 포켓몬 카드를 가져가다니. 내 안에 분노와 비슷한 감정이 이는 게 느껴졌다. 속된 말로 삥 뜯긴 기분이었다. 나는 사실 아이 앞에서 좀 울었다.
아이들이 나쁜 감정을 가지고 포켓몬 카드를 가져가진 않았을 것이다. 그냥 자신이 갖고 있지 않으니까, 가지고 싶은 마음에 가지고 간 거다. 다만 그 상황에서 아이는 분명 아니라고 말해야 했다. 교환을 요구하던가 그것도 아니면 한 장씩만 주던가, 뭔가 다른 행동을 취해야 했다. 지금 이 상황에 내가 가장 우려하는 건 다른 아이들이 내 아이를 '쉬운' 아이로 생각하는 것이다. 자기 물건을 뺏어도 아무 말 못 하고 선생님께 이르는 것조차 하지 못하는.
다음 날 아이는 골드 카드 한 장을 되돌려 받았다. 55중 딱 한 장. 나는 아이에게 우리가 연습한 대로 화를 내지 않고 돌려 달라고 말했는지 물었다.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한 아이는 집에 갖다 놔서 다음에 돌려주겠다고 얘기를 했단다. (며칠 뒤 정말 카드를 받았다.) 나머지 아이들은 자기가 지금 갖고 있지 않거나, 한번 줬으면 그만이라던가, 아예 받지 않았다고 시치미를 뗐다고 한다. "너는 정말 포켓몬 카드를 되찾고 싶니? 아니면 이 정도에서 그만할까?"라고 아이에게 물었다. 아이는 이제 더 이상 포켓몬 카드를 가지고 다니지 않을 거라며, 골드 카드는 찾지 않아도 된다,라고 얘기했다. 나는 포켓몬 전쟁을 이쯤에서 끝내기로 했다.
센터 선생님께 이 일에 대해 상담을 했다. 선생님은 자기 것을 가져가는 아이들에게 “안돼.”라고 말하는 일도, 그걸 또 돌려 달라고 말라는 일도, 선생님께 이르는 일도 어린아이들에게 버거운 일이라고 했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아직 어리다고. 이번 일로 아이에게 큰 교훈을 주려고 생각하지 말고, 그냥 아이가 기분 나쁘지 않게 넘어가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나중에 아이가 크면서 이런 일도 생기지 않을 거라며 불안한 엄마의 마음을 달래주었다.
사회성이 부족한 아이를 키우는 엄마는 늘 새가슴이다. 아이들 사이에 빈번히 일어날 수 있는 일에도 마음이 두방망이질 친다.
지금 내게 필요한 건 어쩌면 위로,
내 아이에게 필요한 건 쿨내 팡팡 풀기는 엄마인지 모른다.
괜찮아. 포켓몬 카드 안 갖고 다니면 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