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이리 Apr 28. 2023

다시 봄

아홉 살 아이의 봄(2023.03-2023.05)




학부모 공개 수업을 했다.


작년에는 코로나로 비대면으로 시행하더니 이번에는 교실에 직접 들어가 수업을 지켜보았다. 아무렇지 않을 줄 알았는데, 학교를 가는 길 마음이 두근두근 거린다. 등교하기 전, 아이와 사인을 주고받았다. 엄마랑 눈이 마주치면 손가락 하나를 펴 보이자고. 그 이후에는 엄마를 보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수업에만 집중하라고 재차 확인했다.  


아이는 손가락 하나 피는 게 재미있었는지, 엄마랑 두 번째 마주치면 손가락 두 개를 펴겠다고 말했다. 그다음 세 개, 네 개, 하나씩 올려가며 하겠다고. 공개 수업 중 아이가 나를 쳐다보았다. 손가락 하나를 편 채. 몇 분이 더 지났을까. 그다음에는 손가락 두 개를 펼쳐 보였다. 그 모습이 V자 같았다. 나는 아이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주 평화로웠다. 사실 정신없었다. 교실 뒤편, 이십여 명의 학부모가 서 있던 교실에서 아이들은 제각기 다른 반응을 했다. 어떤 아이는 발표를 하면서 손으로 V를 몇 번이나 그려댔다. 다른 아이는 자리에 앉아 있다가 갑자기 일어나 춤이라도 추는 듯 허리를 리드미컬하게 흔들었다. 지우개를 위로 올렸다 받았다 하며 장난치는 아이도 있었고, 의자에 비스듬히 앉아 위아래로 흔들거리던 아이도 있었다.


이 가운데 내 아이는 가만히 앉아 있었다. 때로 두 손으로 특유의 제스처를 취하기도 했지만, 아이는 똑바로 앉아 선생님 말씀을 듣고 다른 아이들과 모듬 활동을 했다. 발표할 기회는 많았지만, 아이는 손을 들지 않았다. 모든 아이들이 돌아가면서 소감을 말할 때 정도만, 앞선 아이가 했던 대답을 그대로 베껴 말했다. 나는 속으로 "잘했어. 그렇게 하는 거야."라고 중얼거렸다.


아이는 나를 닮았다. 무리에서 드러나지 않길 바라면서도, 한편으로는 사람들에게 인정받기를 원하는 존재. 같은 모둠에 앉은 친구들끼리 친구가 말한 단어를 기억해서 이어 말하기 그룹 미션을 하는데, 옆친구가 기억을 못 하자 아이가 팔꿈치로 툭툭 건드리며 답을 알려주었다. 자신이 속한 모둠이 일등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나온 행동일 것이다.


자신을 우월함을 자랑하고 싶으면서도 숫기가 없어 나서지 못하는 아이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아이의 마음이 그대로 느껴졌다. 저기, 내가 저 자리에 앉아 있구나. 너는 정말 나를 닮았구나.


“너는 네 아이를 이해하네. 나는 절대로, 내 아이를 이해할 수 없는데... 나랑 너무 달라서.”


센터에서 만난 지인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아이의 모든 행동을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일들도 종종 일어나지만, 가끔은 마치 네가 나인 것처럼 모든 것이 투명하게 보일 때가 있다. 이런 순간이 있어 너와 함께 할 수 있는 거겠지.



나는 너를 이해한다.
봄날의 축복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하소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