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살 아이의 여름(2023.06-2023.08)
등굣길 분리는 멀고 험하다.
초등학교 2학년, 여전히 등굣길은 아이와 함께다.
가끔 이 등굣길에서 자유롭고 싶다. 때때로 불편한 장면이 연출되기 때문이다. 또래들과 섞이지 못한 채 따로 놀고 있는 아이를 눈앞에서 목격하는 것. 나는 오늘 또 그 장면을 보고야 만다.
나와 아이, 이렇게 둘만 걸을 때는 별다른 문제가 없다. 아이가 자꾸 내 팔꿈치에 매달리고 때때로 꼬집거나, 대화 중 엉뚱한 소리를 내뱉는 등의 이유로 실랑이를 벌일 때도 있지만, 매번 비슷한 광경을 연출하는 모자 사이의 뻔한 이야기처럼, 깊은 생채기 없이 평탄하고 무난하게 등굣길은 마무리된다. 그런데 여기에 자꾸 불청객이 등장한다. 또래 무리를 마주치는 상황 말이다.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아이가 자꾸 또래들 사이로 비집고 들어간다. 어쩌면 불청객은 아이 자신인지도 모른다.
집에서 나오는 시간은 대부분 루틴에서 벗어나지 않아서, 일부러 시간을 맞추지 않고도 같은 아파트 단지 아이들과 자주 마주친다. 다섯 명에서 여섯 명. 대부분 엄마 혹은 아빠가 동행하고 한 두 명 홀로 등교하는 아이가 있지만, 가끔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들인 데다가 엄마들 간 친분도 있어서 하나의 거대한 등교 무리가 형성되곤 한다. 나는 그 그룹에 끼어들 듯 말 듯 아슬아슬하게 간격을 유지하지만, 아이는 저만치 보이는 무리를 향해 뛰어가거나, 우리보다 한참 뒤에 오는 무리를 기다리곤 한다. 아이를 마주쳤을 때 반갑게 알은 체라도 해주면 좋으련만 그건 대부분 눈인사를 건네는 엄마들 몫이고, 초등학교 2학년 남자아이들의 시크함은 서로를 알은체 하지 않은 채, 내 아이가 다가오는 것에 관심이 없다. 그 와중에도, 다른 아이들의 환영 소리를 유발하는 친구도 분명 존재한다. 거의 비슷한 시간에, 서로 비교될 정도로.
오늘은 그 친구가 앞서 걸어갔고, 내 아이가 뒤따라 가고 있었다. 친구가 또래 무리를 마주친다. "와! OOO다." 그 친구는 자신을 반기는 무리에 자연스럽게 합류한다. 뒤에 서 있던 아이가 혼잣말을 한다. "나도 여기 있지!" 아이도 무리 속으로 뛰어갔다가, 결국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하고 우왕좌왕한다. 두세 명씩 나란히 걷고 있는 그곳에 내 아이가 낄 공간은 보이지 않는다. 아이를 지켜보다 내가 아이 옆으로 다가간다. 아이가 내 팔꿈치를 꽉 잡는다.
"친구들하고 가고 싶으면 가도 괜찮아. 그러려고 여기까지 뛰어왔잖아."
"나는 엄마가 좋아."
이런 상황에 마음 아픈 게 내 예민함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이 같이 사소한 일에 의미를 부여하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애잔함이 솟아오른다. 무리 중에 맞는 친구가 없을 수도 있고 혼자 갈 수도 있는 건데, 나는 이런 상황을 예상하고도 굳이 무리를 향해 뛰어가는 아이의 마음도 이해하지 못하겠다. 그저 나와 함께 자신이 갈 길을 가면 좋으련만. 가다가 마주치면 눈인사 건네는 정도로 마무리하면 좋으련만. 이런 광경을 아예 보지 않은 게 더 나을 것이란 생각도 들지만, 여전히 아이와 동행하는 몇몇 엄마들이 있어 아이의 등굣길 분리를 미룬다. 혹시라도 엄한 말을 해서 엄마들의 눈총을 받을까 봐. 내 아이에 대한 낙인을 찍을까 봐.
아이를 지켜주기 위해,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나는 내일도 아이와 등굣길을 함께 하겠지. 평소보다 조금 더 일찍 나오는 방법도 생각해 보았지만, 늑장 부리는 아이를 고려하면 그것 또한 다른 분쟁을 예고할 것이다. 이왕 이렇게 된 김에 묵묵히 내 갈 길을 갈 수밖에. 아이에 대한 안타까움은 내 몫일뿐. 이 또한 지나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