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자폐란…

만 아홉 살 아이의 겨울(2024.12-2025.02)

by 하이리



아이에게 진단명을 알려야 할까?
언제 알려줘야 할까?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풀지 못한 이 질문을 안고 살아간다. 그리 멀지 않은 미래, 자신에 대해 고민하는 아이에게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너는 남들과 달라서 친구들과 어울리는 게 힘들 수 있대." 에둘러 말하면 괜찮을까? "네가 자폐 스펙트럼 장애라서 친구들과 관심사도 다르고, 어울리는 것도 어렵대."라고 설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냥 진단명만 간단하게 "네가 어렸을 때 병원에서 자폐 스펙트럼이라는 말을 들었어."라고 할 수도 있고. 다만 온라인에 떠돌아다니는 자폐에 대한 걸러지지 않는 정보가 나는 두렵다. 극소수이긴 하지만 특정 사이트에서는 아스퍼거 증후군이란 이름이 철스퍼거(철도+아스퍼거), 버스퍼거(버스+아스퍼거), 컴스퍼거(컴퓨터+아스퍼거) 등 멸칭의 의미로 쓰인다. 기저에 깔린 것은 당연, 혐오다. 그래서 말할 수 없다. 말하고 싶지 않다. 아이 자신을 포함해, 그 누구에게도. 아직까지는.


우리나라에서 자폐는 밖으로 꺼내기 힘든 단어다. 이와 달리 자폐를 의심하는 부모는 결코 적지 않다. 실제로 진단수도 늘었다. 내가 자라던 시절만 해도 자폐 진단이 이만큼 흔하지 않았다. 어느 날 갑자기 자폐 아동이 많아진 건 아닐 텐데... 그렇다면 20여 년 전에 자라 이미 커 버린, 진단을 받지 않은 자폐인들은 얼마나 될까? 2011년 기준 자폐 유병율을 참조하면 38명 중 1명, 이 사람들은 지금 다 어디에 있을까?


언젠가 리아킴이 아스퍼거 진단을 받았다며 오은영 박사의 상담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아스퍼거가 아니라 ADHD가 의심된다는 말을 들은 그녀의 얼굴에 퍼지는 미묘한 안도감을 보았다. 우리나라에서 자폐란 그런 것이다. 자폐 진단이 아무리 늘었어도 자폐에 대한 인식은 그다지 변하지 않았다.


개인적 바람이지만, 우리나라 유명인 중 커밍 아웃하는 사람이 나왔으면 좋겠다. 그러면 자폐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지 않을까? 아니, 어쩌면 정반대의 상황이 펼쳐질지도 모른다. 그동안 적절치 못했던 말과 행동이 자폐와 연결되어 한번에 비판받을 수도 있다. "그럼, 그렇지. 자폐라서 그렇게 이상했던 거야. 저 사람과는 가까이 지내지 말아야지. 어떤 기분 나쁜 일이 일어날지 몰라." 누군가는 말한다. 솔직해지라고, 가면을 벗어던지라고, 자유로워지라고. 그런데 과연 우리는 자폐인을 편견 없이 바라볼 준비가 되어 있을까? 우리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존재라고 선을 긋는 것은 아닐까?


자폐를 안고 살아가는 이 세상은 아프다. 자폐를 밝히고 싶지 않은 사람은 그 뜻대로 살았으면 좋겠다. 타인의 추측, 판단에 의한 강제적인 아웃팅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자폐를 밝히고 싶은 사람은 당당하게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어떤 선택을 하든, 이들이 외롭지 않기를. 자폐를 말하는 일이 연예인의 공황장애 고백과 비슷한 수준이 되길 바라지만, 우리나라에서 자폐를 밝힌 유명인은 제로에 가깝다.



아직 갈길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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