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육에 대한 짧은 생각

만 아홉 살 아이의 겨울(2024.12-2025.02)

by 하이리


학습 능력은 우수하지만
사회성이 부족한 아이
VS 사회성은 뛰어나지만
학습이 부진한 아이
단순 비교이긴 하지만 둘 중 하나를 고르라면 사람들은 무엇을 선택할까?



아이가 어렸을 때는 사회성을 올리는 게 유일한 바람이었다. 이 시기를 허투루 보내면 안 될 것 같아, 사회성에 도움이 된다는 수업을 찾아다녔다. 놀이, 짝 치료, 인지, 사회성 그룹 수업까지. 한 회 몇 만 원이 넘는 수업료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래서 결과가 좋았냐고? 솔직히 모르겠다.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느낌이랄까? 그래도 아웃풋이 완전 없지는 않아서, 아이는 조금씩 사회적 기술을 익혀 갔다. 오랜 시간을 들여 더디고 더디게. 현재 아이의 사회성은 여전히 부족하고, 또래와의 상호 작용에도 어색함이 묻어난다. 그냥 '어색하다'라고 썼다가 '묻어난다'라고 고쳐 쓴다. 속은 쓰리지만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한다.


요즘 영어와 수학 학원을 알아보고 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가정에서 수업하는 영어 교습소에 보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영어 정도만 하면 될 것 같다는 게 사견이지만, 주변을 잠깐 돌아봐도 사뭇 다른 분위기가 펼쳐진다. 영어는 아무리 늦어도 초등학교 1학년, 수학은 3학년부터는 기본으로 하는 눈치다. 결국 초등학교 4학년, 왠지 불길한 4라는 숫자를 앞두고 학원행을 결정했다.


학원 몇 군데에서 레벨 테스트를 받았고 대체적으로 괜찮은 레벨을 받았다. 아이의 학습 능력을 설명하자면 인풋을 고려했을 때 아웃풋이 좋은 편. 가성비가 바닥을 쳤던 사회성과 비교해 꽤 만족스러운 가성비를 보여주는 학습 능력을 보며, 이제부터 아이가 매진해야 할 것은 사회성이 아닌 학습인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과장을 조금 보태, 밑 빠진 독에 물 붇던 사회성에 대한 심리적 보상을 받는 느낌?


단, 레벨 테스트는 레벨 테스트일 뿐이다. 최종적인 학습 성과는 레벨 테스트 결과와 차이가 많을 것이다. 사회성이 높은 아이들은 어느 곳에서든 적응 잘하고 안정적이라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는데 유리한 반면, 사회성이 부족한 아이들은 친구들과 부침에 시달릴 가능성이 높고 정서적으로 불안하여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지 못할 수 있다. 영재고에 입학했지만 적응하지 못해 자퇴한 아이에 대해, 미국에 유학 가서 고군분투했지만 번아웃하여 귀국한 아이에 대해 알고 있다. 여러 이유로 홈스쿨링을 선택한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는 수도 없이 들었다. 사회성은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든 필요한 법. 학습에 대한 성과는 학습 능력의 높고 낮음과 별개로, 사회성에 상당 부분 빚지고 있다는 게 나의 결론이다.


앞으로 학원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나는 알지 못한다. 학원 선생님의 전화를 받을 수도 있고(생각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 집중하지 못한 채 멍하니 있다 올 수도 있고(정원이 적은 학원을 선택한 이유), 같은 반 친구들끼리 불편한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내가 아는 엄마의 자녀가 아니길 바랄 수밖에). 학원은 학교와 달라서 언제든 그만둘 수 있다는 점이 그나마 위로가 된다.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나든 일단은 부딪혀 보겠다.


사교육에 덧붙여...

여세를 모아 대치동 교육을 전면에 내세운 수학 학원도 찾아보았다. 학원 블로그에 접속하자마자 "oo초등학교 3학년 아무개 KMC 은상 수상" 공지가 떴다. 축하를 전하는 들뜬 멘트와 꿈꾸는 것 같다는 엄마의 소감을 접한 뒤, KMC가 뭔지 몰라 한참을 검색했다. KMC는 한국수학경시대회 Korean Mathematics Competition의 약자. 시간이 좀 걸린 이유는 이와 비슷한 수학경시대회가 한두 가지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알파벳 몇 글자 차이라 단번에 구분하기 힘든 KMA, KMAO, HME, HMC 등. 언제가 들어봤던 '성대경시대회'라는 시험도 여기에 있었다. 갑자기 가슴이 뜨거워졌다. 열의에 불타올랐다고 해야 하나. 오래지 않아 이 열기도 사그라들었지만.


자녀가 공부 잘하는 걸 원치 않는 부모는 아마 없을 것이다. 잘난 자식을 두었다고 자랑하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똑같으니까. 나 또한 잠시긴 하지만 비슷한 욕망을 느꼈다. 이럴 때 아이가 남들과 다르다는 자기 인식은 유용하다. 가뜩이나 1등이 아니면 루저라고 말하는 아이에게 결과에 빤히 드러나는 경시대회는 마이너스라는 사실을 안다. 남들과 다른 만큼 내 아이에겐 남들과 다른 길이 필요하다. 대치동 학원가로 향하는 길은 평범한 아이들에게도 고된 일, 그리고 이 길이 옳은 길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 길에 들어선 사람들을 생각하면, 진단을 받은 게 차라리 다행이다. 빠지기 쉬운 욕망에서 한발 비켜설 수 있으니. 주변에 휘둘리기 쉬운 나라는 사람을 고려한다면.



부모의 욕망을 자극하는 일도, 불안을 조성하는 일도 쉽다.
그러니 그곳에서 최대한 멀어지자.
우리에겐 우리만의 다른 길이 분명 있겠지.
매거진의 이전글우리나라에서 자폐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