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4 아이의 봄(2025.03-2025.05)
티가 나지 않는 줄 알았다.
자폐 진단을 받았지만 내가 말하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은 모를 줄 알았다. 그걸 훈장처럼 여겼다.
초등학교 4학년, 이젠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안다. 수업 시간이든, 쉬는 시간이든, 책을 읽고 있으면 그것만 하고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듯 행동한다는 선생님 말에, 전환이 느려서 그런 것이라 설명했다. 선생님이 덧붙였다. 그게 문제행동 중 하나라고. ADHD 든 자폐든 전환이 느린 게 체크리스트 안에 들어가 있다고. 그 분야에 대해 공부하고 있어서 잘 알고 있다고.
나는 아이가 자폐 진단을 받았다고 털어놓았다. 선생님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후 무슨 대화가 오갔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선생님은 다른 친구들과의 관계가 걱정이 된다고 했다. 비꼬는 말투, 갑자스런 짜증, 남을 무시하는 듯 으스대는 태도. 나는 무엇이든 1등을 해야 하고 인정 욕구가 강해서 그렇다고 설명했다.
편한 점도 있었다. 자폐에 대해 알고 있으니 이에 대한 장황한 설명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서. 아이에 대해 의논할 수 있는 사람이 한 명 더 생긴 것 같아 위안이 되는 부분도 분명 있었다. 선생님은 학기 시작 1주일 만에 눈치를 챘다고, 약물 치료를 하고 있는지 묻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 말이 가장 아팠다. 고작 1주일 만에. 그 정도로 눈에 띄었구나. 이제야 인정이 된다. 지금에서야. 아이의 진단이.
상담에 대해 남편과 이야기하던 중, 남편은 자신이 오만했었던 것 같다고 했다. 나 또한 비슷했다. 나는 아이가 가진 인지 능력으로 아이가 가진 부족한 점을 커버할 거라고 믿었다. 관심사가 독특하고 성격 좀 까칠한 아이 정도로 근근하게 버텨주길 원했다. 그런데 지금, 아이는 별것 아닌 일에도 신경질을 내서 주위 아이들에게 불편을 주는 요주의 인물이 되어 있었다. 나는 정말, 내 아이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집에서조차 자기 마음대로 안 된다고 엄마, 아빠에게 짜증을 내는 아이가 학교에서는 막연하게나마 잘 지내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니. 나는 이제 내 아이가 자폐라는 사실을 뼛속 깊이 느낀다. 잔인하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현실자각 타임이다.
감정을 주체할 길이 없어 스레드에 글을 썼다. 진단을 받았는데 특교자 신청은 안 한 건지 궁금해하는 댓글이 눈에 띄었다. 그동안 특교자 신청을 할 정도까지는 아니라고 판단했는데, 이 또한 아이를 인정하지 못했던 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아마 특교자가 되면 완전 통합을 하겠지만(학습하는 데 어려움이 없으므로), 그렇게 할 경우 내가 얻을 수 있는 실익이 무엇인가 의문이 들었다.
답답하다. 특교자가 되기 위해 아이의 장애를 증명해야 하는 현실은 가혹하기만 하다. 특교자로 가는 과정이 수월하지 않을 것임을 나는 이미 예상한다. 이건, 부모의 오만이 아니라 현 복지제도에 대한 불만이다. 말 그대로 고기능 자펙트럼, 진단은 받았지만 특교자 신청도, 장애 등록도 힘들여 획득해 내야 하는, 경계에 있는 아이. 그 이후에는 온갖 차별의 시선을 견뎌내야 하는 아이.
나는 발달장애 아이를 키우는 부모가 투사가 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문득 아이에게 날아오는 차가운 눈초리를 막아내는 우산이 되고 싶어졌다. 언젠가는 이 화살을 아이 홀로 맞게 되겠지만, 아이가 자라 스스로를 보호하기 전까지는, 내가 대신 화살을 맞아주고 싶다.
이런 다짐은 뜬금없지만...
나는 더 단단해지고 더 당당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