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ten 지은정
자폐 스펙트럼 진단을 받은 아이를 키우면서 자폐가 얼마나 다양한지 깨달았다.
《난독증을 읽다》의 작가도 비슷하다. 영어를 가르치는 선생님이자 책을 쓴 작가는 난독증과 비슷한 특징을 가진 여러 아이를 보며 난독증에 대해 파고들기 시작했다. 이 책은 난독증을 이야기하지만, 난독증이 정확히 무엇이라고 정의내리지는 않는다. 몇 문장으로 명쾌하게 설명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하기 때문이다.
난독증이 무엇이고, 어떤 사람들까지를 난독증으로 볼 것인가? 난독증은 우리 삶에서 매우 다양한 모습으로, 때로는 아주 선명하게, 때로는 희미하게 형체를 드러내는데 그 모양과 정도의 경우의 수는 셀 수 없이 많다. (중략) 난독증은 정말 다양하게 넓게 펼쳐진 '스펙트럼'이기 때문이다. p51
난독증이란, 단순하게 접근하면 글을 유창하게 읽지 못하고 철자를 정확하게 쓰지 못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그러나 난독증이 있더라도 책을 좋아하고 즐겨 읽는 사람이 있다. 심지어 난독증이 있지만 작가로서 성공한 인물도 여럿이다. 《위대한 개츠비》를 쓴 F. 스콧 피츠제럴드는 스펠링을 틀리는 난독증과 비슷한 증상을 겪었고, 여러 청소년 문학작품을 쓰고 그린 영국 작가 샐리 가드너는 정식적으로 난독증 진단을 받았다.
언어에 따라 난독증이 나타나는 정도가 달라지기도 한다. 한국어는 수월하게 읽지만 영어를 읽는 데 불편함을 느낄 수 있고, 서사가 두드러진 이야기 글은 잘 이해하지만 사실이나 정보 위주의 글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아마도 이렇게 표현하는 게 나을 수도 있겠다. 난독증이란 글을 읽고 이해하는 방식이 다른 사람들과 조금 다르다고 말이다.
일반적으로 좌뇌는 언어 학습에 중점적으로 관여하고, 우뇌는 언어 중에서도 은유적인 느낌을 이해하는데 관련이 깊다. 좌뇌의 전두엽은 문장을 만들고 단어를 표현하는데 쓰고, 측두엽은 문장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과 연관이 있는데, 난독증은 좌뇌보다는 우뇌가 발달한 사람에게 주로 나타난다. 실제로 뇌의 크기에서 차이가 있기도 하다. 일반적으로 오른손잡이 비난독 아동은 좌뇌가 조금 크지만, 난독증을 가진 아이들은 좌뇌와 우뇌의 크기가 비슷하거나 오히려 우뇌가 더 크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이 때문에 난독증을 가진 사람들은 언어의 흐름에 따라 선형적으로 사고하는 것이 아니라, 시각적 이미지를 중심으로 사고하는 경향이 짙다. 난독증을 시각적 학습자라고 말하는 이유다. 이들은 평면보다는 입체적으로 정보를 인식하기도 하는데, 영어를 쓸 때 b나 d나 p나 q를 헷갈리는 것도, 앞과 뒤, 위와 아래 등 여러 각도로 글자를 보기 때문이다. 가령 b를 반전하면 d로 보이고, b를 시계방향으로 돌리면 q로 보인다. 난독증을 위한 폰트가 아래쪽이 더 두꺼운 이유도 글자를 입체적으로 본다고 생각했을 때 덜 헷갈리기 때문이다.
작가는 난독증을 가진 사람을, 글을 제대로 읽지 못하는 멍청한 사람으로 취급하는 한국 사회의 편견을 바로잡기 위해 책을 썼다고 했다. 우리나라에서 난독증은 경계선 지능과 느린 학습자에 포함되어 사용되기도 하고, 난독증 자체를 학습 장애로 인식하기도 한다. 그러나 글자를 읽는 데 어려움은 있지만, 이해나 논리면에서는 오히려 뛰어난 사람도 부지기수고, 글과 관련한 정보에는 약하지만 시각적이고 창의적인 접근에 유능한 사람도 많다. 난독증에는 약점도 있지만 강점이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잠시, 난독증을 가진 사람의 약점을 살펴보자면 글을 느리게 읽는다. 좌우/동서남북과 같은 방향에 대한 감각이 떨어지고 연필을 쥐고 글자를 쓰는 것 같은 미세한 운동 감각이 부족하다. 순차적으로 해야 하는 일을 어려워한다. 문맥이 없으면 글자와 숫자가 헷갈린다. 강점은, 평면을 보더라도 입체적 모습을 떠올릴 만큼, 시각적 능력이 뛰어나다. 글을 읽고 이해하는 것은 힘들어도, 이를 다른 사람에게 흥미롭게 전달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기억력이 좋고 창의력이 뛰어나다. 정보를 잘 처리하며 사람과의 관계를 잘 맺고 유지한다.
책을 통해 깨달은 사실은, 난독증이 단독적으로 나타나기보다는 난술증이나 난서증을 포함해 ADHD나 자폐 스펙트럼, 운동 협응의 어려움과 공존한다는 점이다. 난독증은 단일한 증상이나 특성으로 설명할 수 없는 스펙트럼으로, 난독증 스펙트럼은 생각보다 흔하게 존재한다. 주어를 자폐 스펙트럼이나 ADHD로 바꿔도 무방한 문장이다. 학술적으로 들여다봐도 전체 인구 중 15%에서 20%가 난독증, ADHD, 자폐를 아우르는 신경다양성에 해당한다.
이런 이유로 정상과 비정상에 대한 작가의 생각에 깊게 공감한다. 난독증을 포함해 ADHD, 자폐 스펙트럼 등이 정작 무엇인지도 정확하게 모르면서, 이들을 비정상 취급하는 사회에 불만이 많다. 내가 명백하게 아는 한 가지는, 이들은 남들과 다른 방식으로 발달한다는 것뿐이다. 그리고 그것이 한 사람을 차별하거나 배제할 할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한국의 용어에는 '장애'가 너무 많다. 한쪽을 '장애'라고 부르면 다른 쪽은 '비장애', 즉 '비정상'과 '정상'이 되어 버린다. 누가 '정상'을 규정하고, 무엇을 '정상'이라 하느냐에 따라 그에 속하는 사람들이 달라진다. 하지만 어떤 지성과 권력이 쉽게 누구와 무엇을 장애와 비장애로 나눌 수 있고 또 그래도 되는 걸까? p223
이 책을 내려놓을 때즘엔 난독증은 첫째, 병이 아니라 세상을 다르게 인식하는 다른 종류의 뇌라는 것과, 둘째 한 번 난독증은 평생 난독증이라는 걸 알게 되면 놓겠다. (중략) 마지막으로 셋째, 난독증은 그냥 난독증이라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p1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