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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스 코드: 더 비기닝

written by 빌 게이츠

by 하이리




자폐 스펙트럼 장애로 의심되는 유명인 중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사람이 바로 빌 게이츠다.


공식적으로 진단을 받지 않았지만 빌 게이츠의 두드러진 행동 몇 가지를 통해 그가 자폐 스펙트럼 장애일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한 전문가가 여럿이었다. 이에 대한 답이라도 하듯 에필로그에는 자폐 스펙트럼에 대한 언급이 등장한다.


만약 내가 오늘날 어린 시절을 보내고 있다면, 아마 자폐 스펙트럼 진단을 받았을 것이다. 내가 자라던 당시에는 특정인의 뇌가 다른 사람과는 다르게 정보를 처리할 수 있다는 사실이 널리 인식되지 않았다. 부모님에게는 아들이 왜 특정 프로젝트에 집착하고, 사회적 신호를 포착하지 못하며, 때로 타인에게 미치는 영향을 의식하지 못한 채 무례하거나 부적절하게 구는지, 그 이유를 파악할 수 있는 지침서나 교재가 없었다. p484


빌 게이츠의 회고록을 읽은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그가 자라면서 마주했던 일상 속 문제가 궁금했다. 어떻게 대처했는지도 알고 싶었다. 아쉽게도 내 바람과 달리 이 책은 한 사람의 개인적 서사보다는 마이크로소프트가 성공하기까지의 사업적 서사에 중점을 둔다. 그럼에도 몇 문장을 통해 그가 가진 자폐적 특징과 이로 인한 어려움을 감지할 수는 있었다. 물론 책을 읽을수록 이에 대한 관심은 옅어졌고, 그가 자폐 스펙트럼인지 아닌지조차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빌 게이츠가 보인 자폐적 특징을 일부 열거하자면... 그는 집중할 때 몸을 흔드는 상동행동이 있었고, 목소리 톤이 이상하리만치 높았다. 이 때문에 초등학교 5학년 즈음 언어 치료사를 만나기도 했다. 언어 치료사는 빌 게이츠를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지진아’라고 말하며 1년 유급을 권했지만, 이후 다른 교육자의 평가에 따라 오히려 1년 월반하기도 한다.


빌 게이츠는 한 가지 문제에 집중하는 과제집착력이 뛰어난 사람이기도 했다. 어렸을 때부터 할머니와 카드 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냈는데, 계속해서 게임에서 졌는데도 게임을 멈추지 않았다. 게임을 하면서 이길 수 있는 방법을 스스로 터득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할머니를 상대로 이기기까지 무려 5년, 그는 영특했고 무엇보다 집요했다. 다만 친구들 간 사회적 상호작용에는 관심이 없었다.


나는 가미의 카드 기술에 대한 궁금증을 풀 때 가졌던 것 같은 강렬한 열정을 흥미를 느끼는 모든 것에 쏟아부었고, 흥미가 생기지 않는 것에는 아무런 관심도 기울이지 않았다. 내가 흥미를 느낀 것은 독서와 수학, 혼자만의 사색 시간 등이었다. 흥미롭지 않았던 것에는 일상생활과 학교생활의 의례적인 일들과 필기, 미술, 스포츠 등이 포함되었다. 아, 그리고 어머니가 내게 시키는 거의 모든 것도 여기에 해당했다. p33


인간적인 반응이 필요한 순간에도 그는 세상 쿨한 반응을 보였는데 가령 이런 식이었다.


그 여름 동안 릭은 서로 다른 시점에 폴과 나를 각각 따로 불러 자신이 게이라는 사실을 털어놓았다. 친구 사이에 그것이 무슨 문제가 되느냐는 식으로 우리가 각기 반응해기에 릭은 안도했다. 우리 둘은 이미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다고 농담했다. 릭은 우리가 함께 쓰던 아파트에서 유일하게 플레이걸 잡지를 보는 친구였으니까. 당시 나는 릭이 커밍아웃하기까지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했는지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p400


이같은 그의 태도는 타인에게 공감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그토록 중요한 사실인지 인지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빌 게이츠를 사로잡던 것은 마이크로소프트를 발전시키는 데 도움을 줄 아이디어뿐이었으니까. 사실 빌 게이츠는 인간의 문제보다는 기술적 문제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그리고 그것은 나쁜 것이 아니다. 그는 밥을 먹고 잠을 자는 것도 잊어버릴 만큼 한 가지에 매달렸다. 다른 사람의 반응 따위는 필요하지 않았다. 이 같은 열정이 그를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단 이런 생각에 꽂히면, 귀를 기울이는 누구에게든 머릿속에 떠오르는 모든 것을 그냥 다 쏟아 내곤 했다. 폴과 MITS 직원들과 저녁 식사를 하면서 의자에 앉은 채로 몸을 흔드는 가운데 셜리 템플을 홀짝이며 어떻게 모든 개인용 컴퓨터에 우리 소프트웨어를 탑재할 계획인지 또는 왜 모토로라 6800이 모스텍 6502보다 나은지, 왜 중소기업은 알테어 대신 스피어원을 구매할 것인지 등에 대해 한 시간 동안 떠들어 댈 정도였다. 나는 내가 들은 모든 것, 새로 흡수한 모든 정보를 그렇게 머릿속으로 정리해야 했다.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하다 다른 사람들이 다 식사를 끝낸 것을 알게 되곤 했다. p408


다행스럽게도 빌 게이츠는 스스로 인정할 만큼 운이 좋은 아이였다. 그는 부유한 미국에서, 그것도 백인 남성에게 유리한 사회에서 백인 남성으로 태어났다. 게다가 그는 자식을 적절하게 지원하는 현명한 부모님을 두었다.


내가 아는 것은 부모님이 나에게 필요한 지원과 압박을 적절히 조화시키며, 정서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여지와 사회적 기술을 개발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셨다는 사실이다. 부모님은 내가 내향적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야구팀, 컵 스카우트, 다른 치리오 가족들의 저녁 식탁 등 바깥세상에 나가 사람들과 어울리게 만들었다. 그리고 어른들을 지속적으로 접하게 함으로써 어른들의 언어와 생각을 경험하고 학교 밖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키우도록 도왔다. 그와 같은 환경에 노출되었음에도 나의 사회적 측면은, 다른 사람들에게 미칠 수 있는 영향에 대한 나의 인식과 마찬가지로 더디게 발달했다. 하지만 나이가 들고, 경험이 쌓이고, 아이들이 생기면서 그런 부분이 많이 좋아졌다. 그 시기가 더 빨리 찾아왔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내가 타고난 뇌만큼은 그 무엇과도 바꾸려 하지 않았을 것이 분명하다. p484


빌 게이츠가 과연 자폐 스펙트럼인가? 저울질하고 싶은 게 솔직한 마음이었는데, 책을 읽을수록 빌 게이츠보다는 그의 어머니에게 관심이 갔다. 자신의 삶에 대해, 감정보다는 사실 중심으로 서술한 이 책에서 거의 유일무이하게 그의 인간적 면모가 나타나는 부분이 어머니에 대한 내용이기 때문이다. 책의 마지막, 어머니 사진 밑에 쓰인 문장을 보며 나는 빌 게이츠가 진심을 다해 어머니를 존경한다는 것을 느꼈다.


부를 얻으면 그것을 나눠 줘야 할 책임도 따르는 것이라고, 어머니는 강조하곤 했다. 내가 그 기대에 부응하려고 얼마나 조력하는지 충분히 확인할 만큼 오래 머물지 않고 내 곁을 떠난 어머니가 안타깝고 그립다.



아이에게 이 같은 사람이 되어주고 싶다.
아이의 존경을 받을 수 있는 엄마.



P.S 빌 게이츠 기사를 검색하다 그가 ADHD라고 주장하는 글을 읽었다. ASD라고만 생각했는데, ADHD 일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유명하다는 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유별난 부분이 있기 마련이고 이는 동시에 평범하지 않은, 정신질환의 특성에 따른 것일 수도 있다. 평균에서 벗어났다는 것은 양극단에 해당할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이런 식이라면 대부분의 유명인들은 정신질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런 이유로, 다시 한번 말하지만 ASD나 ADHD를 정신질환이 아닌 신경다양성의 관점으로 바라봐야 한다. 게다가 이를 치료할 방법도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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