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의 속도

written by 엘리자베스 문

by 하이리



빛의 속도는 진공 상태에서 초당 3억 km라고 한다.


그런데 빛보다 먼저 도착한 어둠에는 속도가 있을까? 말이 안 된다고 반응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어둠이란 아무것도 없는 상태, 즉 ‘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과연 어둠에 속도가 존재하지 않다고 명확하게 말할 수 있을까?


이 책의 주인공 ‘루 애런데일’은 자폐인이다. 어렸을 적 초기 개입과 컴퓨터 자원 언어 교육을 통해 이제는 사람들과 말하고 운전도 하고 직업도 있지만, 여전히 그는 자폐인으로서 어려움을 겪는다. 그는 종종 사람들이 하는 말의 의미를 명확하게 이해하지 못하며,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말문이 막히거나 말을 버걱거리기도 한다. 회사에서는 감각 과부하를 해소하기 위해 체육관과 음향 시설이라는 특별 지원을 받아야 한다.


소설에는 루와 비슷한 자폐인이 몇 명 더 등장한다. 베일리, 에릭, 데일, 캐머런, 츄이. 루가 몸담고 있는 제약회사 내 A부서가 기호의 패턴을 찾는데 탁월한 자폐인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들을 관리하는 매니저 ‘피트 올드린’과 새로 부임한 상사 ‘진 크렌쇼’가 있다.


이 책은 자폐인을 못마땅하게 여기던 크렌쇼가, 최근 제약회사가 개발한 자폐 치료 임상 연구에 A 부서원들을 피시험자로 참여하도록 압박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루는 스스에게 묻는다. 자폐를 치료하여 정상이 되어야 하는가, 아니면 자폐인의 모습 그대로 살아야 하는가. 만약 자폐 치료를 받는다면, 내가 과연 이전의 나라고 할 수 있나. 자폐인으로서 자신과 자폐인이 아닌 자신 사이에 간극이 생기는 게 아닐까!


정상이면 어떨지 궁금하다. 나는 학교를 졸업하면서, 더 이상 그에 대해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이런 생각이 떠오르면 옆으로 밀어낸다. 그러나 이제는…… 말을 더듬거나 아예 대꾸를 못 해서 가지고 다니는 작은 수첩에 글로 써야 할 때, 사람들이 내가 미쳤다고 생각할까 봐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면 어떨까? 주머니에 그 카드를 가지고 다니지 않는다면 어떨까? 어디서나 보고 들을 수 있다면? 얼굴만 보고도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안다면? p61


여기에 흥미로운 인물, 자폐이면서 자폐가 아닌 ‘조 리’가 나온다. 그는 자폐 유전자를 갖고 있었으나, 태아기 때 자폐 치료법을 통해 완전히 고쳐졌다. 조는 사람들의 생각이나 표현을 읽는 일에 훨씬 능숙하지만, 루를 포함한 연구실에 일하는 여러 자폐인들과는 생각이나 표현이 맞지 않는다. 조가 루에게 말한다. 태아가 아닌 이미 성인이 된 사람에게 효과적인, 자폐증을 역진시키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고, 이 연구가 성공한다면 성인 자폐인도 자신과 같은 정상이 될 수 있다고. 그런데 그의 말처럼 자폐가 아니면 정상이라고 할 수 있을까?


소설에는 정상과 비정상에 대한 질문이 반복해서 등장한다. 읽다 보면 도대체 무엇이 정상이고 비정상인지 알 수 없다는 느낌이 든다. 루는 오히려 이성적이고 합리적이지만, 루를 치료해야 한다고 믿는 크렌쇼는 감정적이고 불안해 보인다. 특히 루는 톰과 루시아, 마저리, 돈 등이 속한 펜싱 클럽에서 펜싱을 배우며 내면의 변화를 경험하는데, 그는 마저리에게 애틋한 감정을 느끼기도 하고, 펜싱 경기에 참가하여 짜릿한 기분에 빠지기도 한다. 루는 확실히 변하고 있었다.


나는 내가 이미 달라졌음을 안다. 우리는 자폐인이지만, 달라진다. 어쩌면 우리는 이 치료 없이도 더 달라지고, 그저 시늉만이 아니라 – 진짜 정상인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p431


소설의 결말을 미리 말하자면, 나의 예상과 달리 루는 자폐 치료를 선택한다. 그는 이전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루’로 다시 태어난다. 루는 과거의 기억을 대부분 회복하지만 사랑하던 마저리에 대한 감정은 잃어버린다. 그럼에도 이 소설이 새드 엔딩이 아닌 것은, 이 모든 것을 루가 스스로 선택했다는 점이다. “나는 이용당하고 싶지 않다. 나는 내 마음을 스스로, 내가 하고 싶은 일에 이용하고 싶다.”는 말을 통해 루의 자율성을 본다. 그리고 또 하나, 끝내 치료를 선택하지 않은 린다와 츄이를 본다.


린다와 츄이가 그립다. 내 수술 결과를 보고 그들도 치료를 받기를 바랐지만, 린다는 내가 작년에 박사학위를 받을 때까지 치료를 받지 않았다. 그녀는 아직 재활훈련을 받고 있다. 츄이는 전혀 응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 그는 지금 그대로도 행복하다고 했다. p501


책의 마지막, 옮긴이의 글과 작가 인터뷰를 통해 작가가 자폐 아동을 입양해 키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둠의 속도'라는 책의 제목도 아들의 물음에서 나온 것이라고 한다. 작가는 실제로 자폐를 치료하는 수술이 개발된다면 어떻게 하겠냐는 질문에 “수술을 받지 못할 것 같다”라고 말한다. 아이가 만약 한 두 살이라면 수술을 할지도 모르겠지만, 열정적이고 행복하고 정 많은 고등학생 아들에게 수술은, 지금까지 아이가 가꾸어 온 여러 특징을 잃게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아이가 결정해야 한다고 덧붙인다. 손실을 감안하고서도 얻고 싶은 게 있다면, 마치 루처럼.


자폐를 안고 살아가는 삶은 쉽지 않다. 자폐를 고칠 수 있다면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치료를 받는 게 나을 수도 있다. 그런데 자폐인으로서의 기억을 상당 부분 간직한 성인이라면, 자신의 정체성에 큰 변화를 가져올 치료를 흔쾌히 선택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어둠처럼 막막해 보이지만 그래도 마지막 루의 말에서 빛을 새어 들어오는 듯 하다. 루는 예전의 루가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가 루가 아닌 것도 아니다. 이건 치료를 선택하지 않은 린다와 츄이에게도 해당된다. 인간은 누구든 변하고 있으니까. 자폐인이든 비자폐인이든.


나는 충분히 루이다. 예전의 루는 평생의 경험들, 그가 다 이해하지는 못했던 경험들을 나에게 빌려주고, 지금의 루는 기억들을 받아들이고, 해석하고, 재평가하는, 예전의 루이자 지금의 루이다. 나는 둘 다 갖고 있다. 나는 둘 다이다. p492



나는 정상이 되고 싶지 않아.
나는 나야. 난 행복해.




독서일기 (7).jpg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사이보그가 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