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겐 너무 어려운 스몰토크

written by 피트 웜비

by 하이리




교사로 일하며 결혼도 하고 딸아이를 키우던 작가는 30대 무렵 자폐 진단을 받았다.


이후 자신의 삶을 제대로 인식하기 시작한다. 그동안 사람들과의 일상적인 대화가 왜 그토록 힘들었는지, 직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악착같이 가면을 쓰며 연기를 해야 했는지...


서두가 강렬하다. 작가와 이야기를 나누는 누군가는 작가에 대해 의문을 품지 않을 수도 있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자신과는 다른 미세한 차이를 느끼며 뭔가 알아차릴 수도 있을 것이다. 이전에 자폐인(굳이 구분하면 고기능 자폐인)을 마주했던 경험이 있는 사람은 이것이 어떤 느낌인지 알 것이다. 뭔가 어긋나는 느낌. 이 책은 그것이 무엇인지 의학적 관점이 아닌 작가 개인의 경험을 담아 풀어낸다.


나는 번아웃을 겪기까지 적어도 20년 동안 매우 성공적으로 가면을 쓰고 살았고, 나 자신이나 지인 중 그 누구도 내가 자폐인일 가능성을 제기한 적이 없을 만큼 능숙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아주 오랫동안 상당한 양의 에너지와 인지 능력을 쏟아부어 나를 감췄다. 그러다가 딸이 태어나고 댐이 터졌다. (업무도 점점 과중해지는 와중에) 일과가 갑자기 대대적으로 바뀌었고, 책임감이 늘었고, 휴식 시간은 부족해졌다. 그 결과 기능이 급격하게 떨어져 끔찍할 지경이었다. p159


자폐의 진단적 특징은 크게 두 가지, 사회적 상호작용의 어려움과 제한적 관심사(반복된 행동 포함)다. 이 같은 특징 외에도 작가는 자신이 갖고 있고 현재 겪고 있는 자폐적 특징을 열거하는데, 그 특징이 신선하면서도 절묘하다. 과공감력, 들쭉날쭉한 능력, 자폐적 관성, 병리적 요청 회피(PDA), 일방향성, 거부 민감성 등. 이중 가장 와닿았던 것은 자폐성 관성과 일방향성, 요구적 회피다.


먼저 자폐인은 자폐성 관성을 갖는다. 이는 한 가지 일을 하다가 다른 일로 바꾸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것을 의미한다. 흔히들 전환이 느리다고 말하지만 작가는 '하려던 것을 계속하고자 하는' 자폐성 관성으로 표현한다. 자폐성 관성은 자폐인의 일방향성과도 연결된다.


일방향성은 자폐인의 뇌가 전체가 아닌 특정 부분만을 중심으로 작동하는 방식을 말한다. 가령 나무를 보라고 하면 나무를 보는 것이 아니라, 나뭇잎이나 옹이 만을 세밀하게 바라보는 것이다. 작가의 표현에 따르면 자폐인은 넓은 영역을 비추는 자동차 헤드라이트와 달리 레이저 광선처럼 세상에 접근해, 아주 깊은 곳까지 뚫고 들어간다.


관성과 일방향성은 사실 표현만 다를 뿐 비슷한 패턴을 갖는다. 한번 가진 관심은 멈출 수 없다. 그 관심은 넓게 확대되는 것이 아니라 좁고 깊게 들어간다. 일방향성은 사회적 상호작용의 어려움으로도 이어진다. 작은 것에 집중하는 만큼 전체적인 분위기를 파악하지 못하고 결국은 복잡한 사회적 상황을 이해하는 데 실패하기 때문이다.


일방향성은 세밀한 집중이 자폐성 장애의 내재적인 특성이라고 가정하며 이것으로 자폐의 거의 모든 면면을 설명한다. 감각 민감성은 특정한 감각에만 집중해서 정신을 몰두한 결과이고, 소통의 어려움은 특정 단어나 표현의 의미에만 집중해서 그 암시와 함의 등을 놓치는 결과라는 식이다. 그리고 자폐인의 특별한 관심사가 작동하는 방식도 아주 깔끔하게 설명해 낸다. p153


또 다른 신박한 특징은 요구적 회피(PDA, Pathological Demand Avoidance)로 타인의 기대나 요구를 극도로 거부하는 현상이다. PDA에 대해서 논란의 여지가 있으나, 작가는 누군가가 자신에게 무엇을 하라고 요구하면 그것을 하고 싶었음에도 하지 않으려 하는 습성이 있다고 고백한다. 이를테면 ‘청개구리’ 같은 사람인데 안타깝게도 내 아이와 일정 부분 맞는다.


나는 PDA와 자폐성 관성이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으며, 심지어 같은 것이 다른 증상으로 발현된 결과일 수도 있다고 믿는다. 관성이 그 순간 우리가 지나치게 집착하는 것에 우리를 묶어두는 힘이라면, PDA는 다른 사람들이 그 결합에 끼어들려고 할 때 생기는 자연스러운 결과다. P134


자폐성 관성과 일방향성, 요구적 회피. 사실 자폐인을 설명하는 특징은 이 외에도 많다. 일반적인 생각과 달리 자폐인은 사람이나 동물에게 과하게 공감하는 경향이 있으며, 특히 누군가에게 거부당하는 상황을 극도로 싫어하는 거부 민감성을 보이기도 한다. 물론 모든 자폐인이 이 같은 특징을 모두 갖고 있는 건 아니다. 이 중 한 두 가지 특징만 두드러지게 가진 자폐인도 존재한다. 사람이 모두 다르듯 자폐인도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몇 년 전, 자폐 스펙트럼 관련 카페에서 이런 질문을 보았다. "자폐 아이도 선생님이 될 수 있을까요?" 이에 대한 대답으로 나는 무엇이든 가능하다고 썼다. 자폐에 잘 맞는 직업으로, 이를 테면 사회적 관계가 중요하지 않고 혼자서 할 수 있는 연구직이나 기술직 같은 것을 생각하기 쉽다. 실제로 실리콘 밸리의 상당수가 자폐인이라는 설도 있다. 그런데도 이 질문에 무슨 일이든 가능하다고 말한 이유는, 자폐인으로서 불가능한 일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기 때문이었다.


과거에 교사로 활동했던 자폐인을 봐서 반가웠다. 환경을 적절하게 조성한다면, 자폐인도 교사라는 직업을 가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았다. 비단 교사라는 직업뿐 아니라 이 세상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직업을, 환경이 제대로 조성된다면 자폐인도 도전해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자폐가 문제가 아니라 환경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개인의 노력도 물론 필요하다. 아주 많이) 작가의 말을 빌어 개선되어야 할 직업 환경을 정리하며 글을 마무리하고 싶다.


▷ 비난하지 않고 주요 업무에 대해 반복적으로 알려 줄 것
▷ 마감일을 포함해 각종 지시와 요구 사항에 추측의 여지를 남기지 않을 것
▷ 어떤 종류의 업무든 지침은 구두로 전하되 최대한 서면으로도 제공할 것
▷ 뭔가 필요하다면 충분한 시간을 줄 것, 사전에 미리 알릴 것



20명 중 1명은 자폐인이며 5명 중 1명은 신경다양인이라는 통계를
기억해야 한다. (중략) 영국만 따져도 최소 3백만 명이다.
전부 희망과 꿈, 삶과 인간관계가 있는 사람들인데,
조금만 노력하면 바뀔 수 있음에도 변함없이 적대적인 세상에서 살아가며
그 무게로 인해 분투하고 있다. p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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