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을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들의 뇌

written by 세이디 딩펠더

by 하이리



인간의 얼굴에서 가장 이상한 점은 무엇일까?
바로 모두 다르다는 것이다. p76



책을 쓴 사람은 프리랜서 과학 저널리스트 세이디 딩펠더다. 그녀는 우연한 기회에 자신이 사람의 얼굴을 구분하지 못하는 안면인식장애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참고로 안면인식장애(얼굴인식불능증)는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DSM)에서 제외되어 있다. 안면인식장애는 사고나 질병으로 뇌의 특정 부분이 손상되면서 나타난다고 알려져 있지만, 뇌 손상이 없는 사람들 중에서도 발생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후 작가는 사물을 평면적으로 바라보는 입체맹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사물을 생각할 때 시각 이미지를 떠올리지 못하는 아판타시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또한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다는 사실은 기억하지만, 그 기억이 나와 직접적으로 연관된 생생한 경험으로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도 깨닫는다. 사실에 관한 '의미기억'은 그대로이지만, 기억을 불러내 머릿속으로 재현하는 '일화기억'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이다. 이 같은 현상을 SDAM(Severely Deficient Autobiographical Memory), 즉 자전적 기억 결핍이라고 하는데, 이와 정반대로 고도로 뛰어난 자전적 기억은 HSAM(Highly Superior Autobiographical Memory)라고 한다.


자, 다시 한번 정리해 보자. 작가는 안면인식장애, 입체맹, 아판타시아, 그리고 SDAM을 겪고 있다. 비슷한 듯 다른 이 네 가지는 세상을 평면적으로 바라보며(입체맹) 사람을 구분하는 데 어려움이 있고(안면인식장애), 사람과 함께 했던 오래전 기억을 이미지로 떠올리지 못하며(아판타시아), 그 기억에 대한 사실조차 자신이 직접 경험한 것으로 느끼지 못한다(SDAM).


자폐 스펙트럼이나 ADHD, 난독증을 포함한 학습장애가 신경 발달상의 차이로 나타나는 신경다양성이라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었다. 그런데 시각적 이미지라는 키워드로 이렇게 다양한 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은 처음 알았다. 색맹은 알았지만 입체맹은 알지 못했고, 사람의 얼굴을 구분하는 단순해 보이는 일조차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새롭게 알게 되었다. 기능상의 어려움을 강조하는 ‘장애’보다는 다양성에 중심을 두는 ‘신경다양성’이라는 단어를 일부러 사용하곤 했다. 개인에 따라 고유한 특징이 있다는 의미를 한껏 드러내고 싶었다. 이 책을 읽으며 다시금 깨달았다. 신경다양성의 세상은 이토록 광대하구나.


여러 사람을 만나 취재하는 것을 업으로 하는 저널리스트가 사람을 구분하지 못한다는 점은 어떤 면에서는 아이러니다. (책에는 신경의학자 올리버 색스도 안면인식장애를 가지고 있었다고 나온다. 사람의 얼굴을 구분하는데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이토록 다양한 사람들이 등장하는 책을 썼다는 게 놀랍다.) 물론 사람을 구분하지 못하는 점은 여러 면에서 굉장히 불편하다. 오랜 시간 같이 한 친구를 그냥 지나치거나, 심지어 낯선 남자를 자신의 남편으로 착각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작가는 영화를 볼 때에도 주인공을 알아보지 못해 줄거리를 따라잡지 못한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절대 하지 않는 실수를 내가 종종 저지른다는 사실을 오랫동안 알아차리지 못했다. 낯선 사람의 차에 타거나, 남동생네 방 세 개짜리 집에서 길을 잃거나, 누군가와 만날 약속을 잡아놓고는 막상 약속 상대가 나타나면 놀라는 일이 40년간 지속됐다. 불확실성, 즉흥성, 엉뚱한 사고들이 내 삶의 일부였고 다들 이렇게 살아간다고 여겼다. 그러다가 내게 일어나는 우스꽝스러운 일들을 글로 적어보면서 뭔가 이상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p16


여기에서 중요한 건 안면인식장애에도 장점이 있다는 사실이다. 작가의 경우, 방금 만난 사람도 친한 친구를 만난 것처럼 느끼고, 처음 만난 사람들과 빠르게 관계를 맺는 능력을 갖고 있다. 작가가 격고 있는 입체맹도 비슷하다. 입체맹은 중요한 시각 정보를 놓치게 되기 때문에 움직임을 정확하게 조정하는 능력이 떨어지고 몸의 균형을 잡지 못하며, 물체가 어디에 있는지 추정하는 데에도 어려움을 겪는다. 반대로 입체맹은 그림이나 회화에서 약간의 우위를 점할 수도 있다. 피카소가 입체시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는 주장도 그중 하나다.


내가 가진 모든 인지적, 지각적 특성에는 장단점이 있다. 입체맹을 예로 들어보겠다. 두 눈이 함께 기능하지 않으면 공을 잡거나 울퉁불퉁한 길을 걷거나 고속도로에 진입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그런데 한쪽 눈만으로 세상을 본다면 예술가로서 약간의 우위를 점할 수도 있다. 구스타프 클림트, 에드워드 호퍼, 앤드루 와이어스, 마르크 샤갈, 프랭크 스텔라, 맨 레이 등 여러 유명한 예술가가 정렬되지 않은 눈을 갖고 있었다는 증거가 있다. p23


그렇다면 작가는 무엇을 얻었을까? 안면인식장애에다 입체맹, 아판타시아, SDAM 인 작가는 특별한 뇌 덕분에 이 책을 집필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놀라운 신경다양성에 대한 책을 말이다. 그리고 이쯤에서 묻고 싶다. 당신은 과연 온전한가? 우리는 뇌에 대해서 아는 거의 것이 없다. 신경다양성도 마찬가지다.


과학자들은 미국인 중 약 600만 명이 안면인식장애를 가지고 있으며, 이들 중 대다수는 진단을 받은 적조차 없는 것으로 추정한다. 하지만 이런 수치는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시각장애나 인지장애와 비교하면 턱없이 낮다. 전 세계 색맹 인구는 3억 명에 달하고, 스스로 인지하지 못하는 특이한 뇌 구조를 가진 사람들도 수억 명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30대가 돼서야 ADHD진단을 받은 두 사람을 알고 있다. 또 다른 지인 한 명은 마흔 살이 돼서야 난독증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는데, 틱톡의 소름 돋는 알고리즘이 관련 영상을 추천해 주면서 자신이 난독증임을 알게 됐다. 또 한 동료는 열두 살이 돼서야 후각이 없다는 사사실을 깨달았다. 다른 사람들이 냄새에 대해 언급할 때 그녀는 자신이 그저 ‘냄새를 잘 못 맡을’ 뿐이라고 생각했고, 옆에 놓인 난로 위에서 플라스틱이 타면서 나는 지독한 냄새를 알아채지 못할 때까지는 누구도 그녀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p16


뇌에는 평균 2000개의 뉴런과 각각 연결돼 있는 860억 개의 뉴런이 있으며,
뇌의 전체 시스템은 우리가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는 화학 물질의 바다를 통해 조절된다. 인간은 이 정도의 복잡성을 이해할 방법을 고안해내지 못했다. p353


독서일기 (1).jpg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