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written by 김초엽

by 하이리




총 여섯 편의 중단편으로 구성된 책이다.


각각의 작품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순례자는 왜 돌아오지 않는가'의 질문은 “유전자 편집 기술을 통해 인간을 개조할 수 있는 세상에서, 개조에 성공하지 못한 인간은 어떻게 되는가?”이다.


델피는 자신이 실패한 개조인이라고 말했다. 그녀의 부모는 딸을 뛰어난 음악가로 만들고 싶어 했다. 그건 그들의 이루지 못한 꿈이었다. 그러나 델피의 부모는 거금을 내고 유전자 시술을 맡길 재정적 여유가 없었다. 저렴한 값에 시술을 맡았던 해커는 델피의 배아를 풍부한 예술적 재능을 가지도록 개조하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다른 태생적 문제와 성격 결함을 안겨주었다. p34


걷지 못하는 사람을 걷게 만드는 것과 이미 걸을 수 있는 사람을 육상선수만큼 빠르게 뛰도록 만드는 것은 분명 차이가 있다. 집중력이 부족한 사람이 약물 치료를 받는 것과 집중력 문제를 가지지 않은 사람이 더 높은 집중력을 얻기 위해 약물을 복용하는 것도 다른 문제다. 어쩌면 이런 가정도 가능하겠다. 만약 평균적인 지능을 가진 사람을 천재로 만드는 기술이 개발된다면, 그래서 누구나 천재가 될 수 있다면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까? 아마도 평균 지능은 개선해야 할 무엇이 되지 않을까!


'순례자는 왜 돌아오지 않는가'에서 개조를 하지 않거나 개조에 실패한 사람들은 기실 아무런 문제도 갖고 있지 않았지만, 스스로를 지능이 낮거나 외모가 흉측하거나 키가 작고 왜소하거나 병들어 있다고 여긴다. 거의 모든 능력을 갖춘 신인류가 등장했을 때, 그것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들은 소외되고 배제된다. 결국 성공한 개조인들은 도심에,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도시 외곽에 모여 살기 시작한다. 완벽한 분리주의. 나는 비개조인이 장애인과 비슷하다고 느낀다. 몇 가지 기능상의 이유로 소외되고 배제된 사람들.


'순례자는 왜 돌아오지 않는가'가 던진 질문에 대한 대답은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에서 찾을 수 있다. 이 단편은 우주선이 빛의 속도에 도달하지는 못했지만, 워프 버블을 통해 빛보다 빠르게 다른 은하로 도달할 수 있는 우주 개척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냉동 수면을 연구하던 안나는 가족을 슬랜포니아 행성으로 이주시키고, 연구를 마무리한 뒤 가족을 따라갈 예정이었다. 그러나 경제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행성으로 가는 우주선 운영이 중단되고, 마지막 우주선에 탑승하지 못한 안나는 우주정거장에서 냉동 수면으로 생명을 연장한 채 거의 백 년 이상을 기다린다. 이제 거의 백 일흔 살이 된 안나가 마지막으로 취한 행동은 개인 우주선을 통해 우주여행을 떠나는 것이었다. 빛의 속도로 가더라도 수 만년은 걸리는 거리에 있는 행성을 향해,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이 사라졌음이 분명한 슬랜포니아 행성을 향해서 말이다.


“그래서 안나 씨, 여기서 대체 뭘 하고 싶은 겁니까?”
“말했잖은가. 기다리고 있는 걸세.”
안나의 시선이 창밖의 우주를 향했다.
“언젠가는 슬랜포니아에 갈 수 있지 않을까, 일말의 희망을 기다리는 것이지.”
p177


그리고 안나는 이렇게 덧붙인다. “나는 내가 가야 할 곳을 정확히 알고 있어.” 행성에 도달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한데도, 그럼에도 그곳을 향해 우주여행을 떠나는 안나의 행동은 무모하고 무용하지만 무의미해 보이지는 않는다. 그게 바로 인간이기 때문이다. 바로 여기에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기술이 발달한다해도, 기술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장애인은 아마 제한적일 것이다. 어쩌면 그러한 기술이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는 사람들 간에 기능적 차이를 발생시킬 수도 있다. 이 차이는 시간이 갈수록 더 멀어지겠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가야 할 곳을 찾고 그곳을 향해 가지 못할지언정 절대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 어차피 완전무결한 답을 찾지는 못하겠지만, 그 안에서 희망을 간직한 채 계속해서 살아남아야 한다. 이것이 내가 찾은 답이다. 작가의 말처럼 우리는 놀랍도록 아름다운 생물이니까. (그것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느끼니까.)


언젠가 우리는 지금과 다른 모습으로 다른 세계에서 살아가게 되겠지만, 그렇게 먼 미래에도 누군가는 외롭고 고독하며 닿기를 갈망할 것이다. 어디서 어느 시대를 살아가든 서로를 이해하려는 일을 포기하지 않고 싶다. p340 작가의 말



덧붙여...

김초엽 작가는 "사이보그가 되다"를 통해 처음 알았다. 후천적 청각장애인이란 작가 소개를 보며, 이 작가가 쓴 소설을 한번 읽어보고 싶었다. 책을 읽으며 장애 유무가 작품 설정이나 문장 표현과 유의미한 관계를 가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례로 '스펙트럼'에서 외계인의 음성 언어는 인간의 가청주파수 범위를 벗어난다. 작가는 "사이보그가 되다"에서 고주파음과 저주파음을 구분하여 생각하고, 높은음보다는 낮은음을 상대적으로 더 잘 듣는다고 말하기도 했다. 소설을 읽으며 남들과 다르다는 것은 남들과 다른 경험을 낳고, 남들과는 다른 독특한 설정을 만드는 데 유용하지 아닐까란 생각을 했다. 이것을 다양성의 힘이라고 한다면, 너무 나간 생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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