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ten by 김효원
자기 조절은 아이가 살면서 마주치는 스트레스와
아이의 조절력 사이의 균형에서 온다. 아이의 스트레스가 조절력을 넘어설 때,
아이는 자기 조절이 무너지는 조절 불능 상태가 되는데,
이렇게 조절이 깨지는 상태는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든 일어날 수 있다. p22
‘아이에게 딱 하나만 가르친다면’이라는 가정이 마음에 들었다.
딱 하나라는 게 간단하게 보이기도 했고, 여러 정보 속에서 무엇을 선택할지 몰라 고민한 적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친절히 하나만 정해준다면 당연히 쌩큐! 이에 대한 작가의 답은 책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자기 조절’이다.
책을 읽기 전에는 자기 조절이 단순한 개념이라 생각했는데 읽을수록 그 안에 여러 복잡한 의미가 담겨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긴, 아이를 키우는 데 한 가지로 충분하지는 않겠지. 절대 그럴 수가 없지. 그런데 세부적으로 들여다보면 모두 다르지만 이 모든 것이 자기 조절로 귀결된다는 느낌을 받았다. 결국 돌도 돌아 ‘자기 조절’이다.
자기 조절은 크게 다섯 가지로 나뉜다. 감정 조절, 행동 조절, 인지 조절, 관계에서의 조절, 즐거움과 동기의 조절이다. 감정 조절은 모든 자기 조절의 밑바탕이 되는 능력으로 다른 상황으로 넘어가는 전환 능력과 실패와 좌절을 견디는 힘, 특정 사건에 대한 감정 반응의 정도, 그리고 감정을 말로 표현할 수 있는 능력과 연동된다. 행동 조절은 자신의 행동을 관찰하고 효율적으로 조절하는 능력을 말하는데, 충동을 조절하고 욕구 만족을 지연시키는 능력과 관련이 깊다. 인지 능력은 생각을 조절하는 것으로 목표를 위해 문제를 해결하는 실행 기능과 메타 인지에 영향을 받는다.
구분은 했지만 사실 이 구분이 무 자르듯 명확한 경계가 있는 건 아니다. 감정을 적절히 조절하지 못해서 행동을 조절하지 못하고, 인지 조절을 못해서 관계에서의 조절에 어려움을 겪는 등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중요한 건 ‘부족한 조절력을 어떻게 개선하는가?’인데, 작가는 두 가지를 강조한다. 바로 '정서적 안정감을 주는 좋은 관계'와 '하면 안 되는 것에 대한 일관된 훈육'이다.
아이의 발달에는 정서적 안정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사람은 감정의 지배를 받는 동물이다. 불안하거나 긴장되거나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에서도 그 상황을 정확하게 판단하고 문제를 해결하며 새로운 것을 배우고 행동과 생각을 조절하는 능력은 모두 정서적 안정감에서 온다. (중략) 정서적 안정감은 부모와의 안정된 애착과 좋은 관계에서 온다. 179-180
인생에는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일들이 있다. 자기 자신이나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은 해서는 안 된다. 내 뜻대로 안 되는 일이 너무 많고, 실패와 좌절도 피할 수 없지만, 그런데도 살아가야 한다. 어린 시절의 적절한 좌절은 욕구 조절을 배우고 앞으로 경험할 어려움을 이겨내는 힘을 키워준다. 아이의 인생에서 부모의 역할은 해야 하는 것과 해서는 안 되는 것, 해도 되는 것과 하면 안 되는 것의 경계를 알려주고 가르쳐 주는 것이다. 188-189
이 밖에도 작가는 감정 조절, 행동 조절, 인지 조절, 관계에서의 조절, 즐거움과 동기의 조절을 위한 구체적인 팁을 제시한다. 감정 조절을 위해 명상을 하고, 인지 조절을 위해 루틴을 활용하며. 즐거움과 동기의 조절을 위해서는 스마트폰과 같은 디지털 미디어 사용을 제한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부모 스스로도 자신을 조절하는 모습을 아이에게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다.
자기 조절을 잘하는 부모가 아이에게 화를 덜 내고 아이의 필요에 잘 반응해 주며 문제 상황이 생겼을 때도 더 잘 해결한다. 아이는 부모가 감정, 행동, 생각을 조절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기도 모르게 그 모습을 배운다. 284
아이도 그렇고 어른도 그렇고 어떤 이유로든 자신을 조절한다는 것은 어렵고 고되다. 다 자란 어른도 살기 힘든 팍팍한 세상 아닌가. 수년간 스스로를 조절하다가 한 순간 무너질 수도 있는 게 바로 사람이다. 게다가 자기 조절에는 뇌 발달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전두엽 발달이 느린 ADHD 아이들이 약물 치료 없이 감정 조절, 행동 조절, 인지 조절을 하는 게 힘들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래서 결국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묻는다면, 생뚱맞기는 하지만 우리가 스스로를 조절할 수 있을 만큼 마음의 여유를 가지면 좋겠다. 스마트폰 하나로 모든 것이 뚝딱 해결되는 이 시대에, 그래도 뭔가 기다릴 수 있는 시간을 의도적으로 챙겼으면 좋겠다. 기다림은 다른 말로 조절이다. 이것저것 조절하기 힘든 아이가 조절을 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고 독려하는 것이 어쩌면 지금 내가 아이에게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조절이 아닐까 생각을 해봤다. 다만 따뜻한 시선으로, 언제든 도와줄 수 있다는 마음과 함께.
2007년 내가 서울대학교 병원에서 소아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되기 위해 전임의 과정을 할 때, 지도 교수였던 조수철 교수님이 외래에서 엄마들에게 가장 많이 했던 말씀이 "조금만 기다려봅시다"였다. 처음에 나는 속으로 '우리 선생님은 왜 엄마들에게 해결책은 안 주고 맨날 기다리라고만 하나'라고 생각했는데, 같은 아이가 다음, 또 그다음 진료를 올 때 살펴보면 한 뼘씩 자란 모습을 마주할 수 있었다. p3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