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ten by 조디 헤어
자폐 아동을 위한 치료를 불필요하다 말하고 대표적인 조기개입 프로그램인 ABA 효과를 부정하는 등 다소 급진적인 시각을 담은 신경다양성 책이다.
특히 ABA 창시자인 뢰바스 박사에 대한 비난이 눈에 띈다. ABA는 보상이나 벌을 통해 특정 행동을 강화하거나 소거시키는 것이 핵심인데, 저자는 ABA가 학대와 다름없다고 주장한다. ABA가 비인간적이라는 말에는 수긍하지만 ABA가 이만큼 비난받아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최근 ABA는 부정적 강화가 아닌 긍정적 강화를 중시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뢰바스는 자폐 커뮤니티에서 논란이 많은 ‘응용 행동 분석’(ABA) 창시자로 잘 알려져 있다. 응용 행동 분석은 보상과 벌을 통해 특정 행동을 강화하거나 감소시키는 등 행동을 조절하는 치료법으로, 뢰바스는 이 치료법을 통해 자폐인을 ‘정상’으로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ABA를 경험한 많은 자폐인은 학대와 다름없는 고통스러운 경험이라었다고 보고했다. 학계에서는 ABA에 윤리적 문제가 있으며,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증상을 유발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89p
신경다양성이란, 뇌신경의 차이로 발생하는 자폐 특성, 지적스펙트럼, ADHD, 학습장애 등을 생물학적 다양성의 한 형태로 인정하자는 운동이다. 신경다양성은 이들을 치료해야 할 증상이 아니라 치료할 필요가 없는 고유한 특성으로 본다. 저자에 따르면 이 세상은 신경다양인에게 적합하게 설계되어 있지 않으므로 신경다양인이 제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변화를 도모해야 한다.
자폐 스펙트럼 진단을 받은 아이를 키우고 있지만 저자의 주장에 100% 동의하지는 않는다. 부모 입장에서는 세상을 변화시키기 보다는 내 아이가 이 세상에 최대한 적응하여 살아가길 바라게 된다. ABA를 포함해 언어치료, 놀이치료, 감각통합 등 온갖 프로그램을 받는 이유도 앞으로 살아가는데 필요한 기술을 익히기 위해서다. (아마 저자라면 이 같은 노력이 일방향적이라고 말할 것이다. 신경전형인은 신경다양인을 이해하려고 애쓰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자폐 행동을 ‘치료’하려는 강박적 태도는 오늘날도 흔하다. 부모와 연구자 들은 자폐인을 “정상적으로 기능하도록” 하기 위해 모든 방법을 동원하며, 신경다양성을 병리화하는 경향 또한 지속되고 있다. 91-92p
어쩌면 내가 자폐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저자의 주장은 자신이 지금까지 경험했던 차별과 학대, 배제에 대항하는 울분처럼 보이기도 한다. 사실 지금까지도 자폐 아동에 대한 폭력이 진행중이다. 불과 5년 전, 2021년 미국 특수학교에서 자폐 및 지적장애 아동을 대상으로 전기충격장치 사용을 허용하는 법률이 통과됐다는 글을 읽고 두 눈을 의심했다.
검색해보니 매사추세츠주 캔턴 소재 지역 학교인 로텐버그 저지 교육센터는 장애 아동의 폭력적 행동을 막기 위해 전기충격장치를 사용하는 미국 내 유일한 시설이라고 한다. 전기충격기 사용 금지령은 2021년 무효화되었고, 이후 다시 전기충격기 사용을 금지하는 법안이 추진 중에 있다. 이 같은 비인간적인 현실은 저자의 주장이 극단적일지언정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결론적으로 저자가 말하는 세상이 내가 바라는 세상과 별반 다르지 않기도 하다.
내게 신경다양성 운동이 중요한 이유는, 나와 신경다양성 특성을 가진 소중한 내 지인들이 세상을 남들과 다르게 인해하고 접근한다는 이유로 차별을 겪어왔기 때문이다. 이런 차별과 무시는 정신건강을 악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실제로 자폐가 있는 여성 네 명 중 한 명은 25세 전후 정신 질환으로 입원한다는 통계도 있다. (중략) 스웨덴에서 진행된 연구에 따르면, 자폐인 여성이 정신질환에 걸릴 확률은 자폐가 없는 여성보다 5배, 자폐인 남성보다 2배 가까이 높았다. 13p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독립적인 개인을 중요시한다. 스스로 노력해서 성공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이 곧 이상적인 삶이라고 믿는다. 이는 자본주의 및 개인주의가 지향하는 가치다. 그러나 혼자서만 성공하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어떤 형태로든 사람들은 반드시 타인과 관계를 맺고 그렇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다. 게다가 살아가면서 우리는 누군가의 지원이 절실할 때가 반드시 온다. 단적으로 인간은 누구나 나이를 먹는다. 사고나 파산의 위험도 있다. 의도치 않게 험한 일에 휘말릴 수도 있다. 길을 잃을 수 있고 갑자기 넘어질 수도 있다. 저자의 말따라 우리에게 필요한 건 개인주의가 아니라 상호의존성이다.
신경다양성 운동의 진정한 목표는 신경다양인이 노동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신경다양성 운동의 본질은 반자본주의적이다. 이 운동은 우리가 노동 생산성으로 존재 의미를 평가받거나, 과잉 소비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얼마나 일하고 얼마나 돈을 벌었는지에 따라 사람의 가치가 결정된다는 사고방식을 거부한다. 126p
글을 쓴 조디 헤어는 스물세살에 자폐 스펙트럼 진단을 받은 여성이다. 영국 킹스컬리지에서 현대언어·문학·문화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프리랜서 카피라이터로 활동하고 있다. 영국 출신 여성인데다 성소수자라는 점에서 '데번 프라이스'가 떠올랐다. 데번 프라이스는 “모두가 가면을 벗는다면”을 쓴 작가이자 트랜스젠더이고 역시 성년이 되어 자폐 스펙트럼 진단을 받았다. 장애인과 성소수자는 공통점이 많다. 사회적 약자로서 차별이나 폭력의 대상이 되기 쉽다는 점이 그렇다.
신경다양성 운동이 성소수자를 고려해야 하는 이유는 신경다양성과 성소수자가 높은 상관관계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신경다양인은 신경전형인보다 성소수자일 확률이 높다고 알려져 있다. 또한 장애는 '빈곤'과도 연관성이 크다. 장애인은 취업하기도 힘들 뿐더러 일을 하더라도 오래 다니지 못한다. 자본주의와 개인주의는 장애와 빈곤을 열등한 것으로 치부한다. 일부 종교를 등에 업은 보수주의 또한 성소수자들을 죄악시한다. 자본주의와 개인주의에 이어 저자가 주장하는 반자본주의, 공동체주의까지. 이 같은 거대 담론은 사실 피부에 와닿지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가 나아갈 방향성만큼은 알고 있어야 한다.
개인주의적 사고방식으로 우리가 돌려받는 것은 거의 없다. 사람들은 지구를 파괴하고, 점점 더 심해지는 불평등으로 고통받고 있으며,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은 소수만이 특권과 혜택을 누리는 ‘허슬문화’(hustle culture)로 인해 정신적, 육체적으로 소진되고 있다. 이런 사고방식은 모두가 존중받는 세상을 만드는 데 필요한 핵심 가치에 완전히 반대되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이기심과 이윤 추구를 최우선으로 여기는 사고방식을 버려야 한다. 127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