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살 아이의 가을(2021.9-2021.11)
나의 소중한 유모차 친구
낡은 유모차 한 대가 있었다.
돌 무렵부터 네 돌까지, 낮잠 재우기 필수 아이템으로 사용하던 유모차였다. 여섯 살 때는 차에서 잠든 아이를 안고 가기가 버거워 유모차에 아이를 뉘이고 현관 앞까지 갔다 아이를 잠자리로 옮기곤 했다. 혹시나 아이가 깰까 조심조심하면서. 일곱 살이 되니 유모차 사용하는 일이 잦아졌고 자기 할 일을 다한 유모차는 현관 신발장 밑에 곱게 접혀 있었다. 마치 그게 자기 자리인 것처럼 변함없이. 그리고 오늘은 오랜 고민 끝에 유모차를 정리하는 날이었다.
아이와 함께 폐기물 스티커를 구입하고 유모차에 스티커를 붙였다. 분리 수거장에 유모차를 놔두고 오는데 갑자기 아이가 말했다.
"유모차와 헤어지기 싫어."
아이는 분리수거장으로 되돌아 가 자기 몸무게의 1/3이 넘는 유모차를 끙끙거리며 현관 앞까지 끌고 왔다.
"어린이집 갈 때 항상 유모차 친구가 인사해 줬단 말이야. 유모차가 없으면 그렇게 못하겠지. 나는 쓸쓸해질 거야. 그리고 나는 곧 죽겠지."
아차 싶었다. 아이에게 묻지 않고 유모차를 정리하면 간단했는데, 굳이 아이와 함께 폐기물 스티커를 산 나 자신을 탓했다. 아무 말없이 유모차를 정리했다면, 아마 아이는 유모차가 없어진 것도 알아채지 못했을 테니까.
나는 아이의 장난감을, 아이가 접은 색종이를, 어린이집에서 만든 소품들은 모두 아무 말하지 않고 정리했다. 그렇게 해도 아이는 알지 못했다. 친구가 준 편지를 한번 쓱 읽고 훅 던져 버리기 일쑤였다. 아이는 편지를 다시 찾지 않았다. 그래도 편지라고 주섬주섬 챙겨 냉장고 마그네틱으로 붙여 놓긴 했지만 그걸 신경 쓰는 건 오직 나였다. 저걸 버려야 하나? 아니면 보관해서 나중에 아이에게 줘야 하나?
그런데 이렇게 예고된 이별에는 아이가 대놓고 뚝뚝 눈물을 흘리며 슬퍼하니 난감하다. 그것도 근 일 년간 타지 않은 유모차를 두고.
"내 유모차!!! 흑흑"
그깟 유모차가 뭐라고.
이게 처음 있는 일은 아니다. 1년 전, 어른 몸집 만한 커다란 곰 인형을 버린 적이 있다. 남편이 연애할 때 선물로 사 준 것이었는데, 거대한 몸집 때문에 세탁 한번 제대로 해 보지 못한 꼬질꼬질한 인형이었다. 빨래방에 찾아가 한번 세탁을 하긴 했지만, 세탁기 앞에 버젓이 쓰여 있는 ‘인형은 넣지 마세요’라는 문구를 보고 발걸음을 멈췄다.
아이는 그 인형을 주로 의자로 활용했다. 그저 푹신한 느낌이 좋아서. 아이가 인형 위에 앉을 때마다 푸슬푸슬 먼지가 흩날렸다. 공간만 차지하던 그 인형을 이사를 앞두고 정리했다. 아이에겐 의자 인형에 대한 예의로, 인형이 너무 더러워서 버려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럼, 곰 인형이 죽는 거야?”
“아니, 곰 인형을 하늘나라에 데려다주는 거야. 하늘나라는 좋은 곳이니까.”
용케 허락을 받고 아이가 자는 사이, 50리터짜리 쓰레기봉투에 곰 인형을 밀어 넣었다. 비닐 안에 잔뜩 굽어 있는 인형이 좀 안쓰럽기는 했다. 그런데 며칠 후부터 아이가 곰 인형을 데리고 오라며 대성통곡을 하기 시작했다. 하늘나라에 갔다고 얘기하면 인형이 죽었다고 울고, 인형을 버렸다고 하면 어디에 버렸냐며 소리를 질렀고, 인형이 필요한 사람에게 주었다고 얘기하면 아이는 왜 자기 인형을 남에게 주었냐고 울먹였다. 이별의 아픔은 잊을 만할 때마다 이어져, 거의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가끔 말하곤 한다. “엄마, 곰 인형 어디 있어?”
정확한 문구가 기억나지는 않지만 ‘버려지는 종이 한 장만 봐도 마음이 쓰였다’는 아스퍼거 증후군의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사람에게 공감하는 것은 어렵지만, 동물이나 사물에 대해 유난스러울 정도로 감정 이입이 된다는 건 그다지 새로운 일은 아니다. 동물학자 템플 그랜딘도 학대당하는 소를 보면 고통스럽다고 말했고, 던 프린스 휴즈도 영장류를 연구하는 학자로서 동물권 운동에 앞장서고 있으니까.
내 아이가 사물에 감정 이입을 하는 능력이 있는지, 아니면 물건을 버리는 것에서 오는 변화가 싫기 때문인지 확실치 모르겠다. 다만, 버려야 할 무언가가 생기거든 아이 몰래 버려야 한다는 것 밖에는. 이번 유모차에 대한 애도도 며칠 갈 것 같다.
버리지 않고 간직하는 방법도 있을 텐데
일단 그걸 생각해 보자
사진을 찍어 볼까? 마치 영정 사진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