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A 자가 격리되었데요."
시험을 겨우 일주일 앞두고 일어난 일이었다. A의 가족 중에 확진자가 나와서 자가격리에 들어갔고, 그 여파로 바로 전날까지 나와 보충 수업을 하던 A는 중간고사를 못 보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바로 다음날 만일을 대비해 코로나 검사를 받았다. A와 같은 학교, 같은 반인 아이들도 모두 검사를 받았다. 다행히 A를 포함하여 모두가 음성이었다. 불행한 것은 A였다. 열심히 준비하고 있던 중간고사였고, 이 한 순간순간들이 모여서 대입을 결정하는 상황에서 A에게 충격은 꽤나 컸다. 건너들은 이야기로는 A가 매우 격분했다고 했다. 그럴 만도 했다. 전체에서 보면 아주 작을지도 모르지만, 막상 입시를 앞에 두고는 중간고사 한 번의 성적이 합격의 갈림길이기도 하다. 그런 입시생에게 한 번 시험을 보지 못한다는 것은 정말이니 멘털을 탈탈탈 터는 일이다.
지난 학기에 친구가 근무하는 중학교에서 확진자들이 나와서 난리가 난 적이 있었다. 확진자가 여럿이라 학교가 전부 온라인으로 돌리고, 여러 반이 자가격리에 들어갔다. 해당 중학교는 시험 일정을 조정하거나 간략화했다. 문제는 해당 중학생 아이들의 형제자매였다. 중학생 동생이 자가격리가 되어서, 그 형제자매들인 고등학생들이 같이 등교를 못 하게 된 것이다. 문제는 중학교와 이웃한 고등학교에 그 형제자매들이 다니고 있었고, 그 수가 서른 명 남짓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고등학교의 중간고사는 바로 그 자가격리 기간에 있었다. 중간고사를 볼 수 없게 된 아이들의 부모들은 당연히 난리가 났다. 1~3학년 합쳐서 서른 명의 아이들이 시험을 볼 수 없게 되었지만, 학교장은 학사 일정 변경에 대해서는 불허했다. 결국 해당 아이들은 모두 시험을 볼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지난 며칠 확진자가 급증하는 과정에서 해당 중학교에서 또다시 확진자가 한 명 나와 한 반이 통째로 자가격리가 되었다. 교내에서 어떻게 처리가 된 것인지 확진자 학생이 학교에 머무는 동안 확진 소식이 퍼졌고, 생각 없는 학생 B가 그 확진자의 반에 일부러 찾아갔다. 접촉자가 되어서 자가격리가 되면 학교에 나오지 않아도 된다는 철딱서니 없는 생각으로 말이다. 문제는 다시 자가격리가 된 학생이 지난 학기에도 자가격리가 된 아이고, 그 아이에겐 고등학생 언니가 있다는 것이다. 10월은 대부분의 학교들이 중간고사를 본다. 이번에도 동생으로 인해 만일 시험의 불이익을 받는다면... 언니에겐 지옥 같은 일이 될 것이다.
고3 학생 C가 다니는 학교에서도 확진자가 나와서, 한 학급 전체가 자가격리에 들어가고 시험 일정이 미뤄진 적이 있었다. 가뜩이나 시험 하나하나에 예민한 고3 아이가 받은 스트레스는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동료 선생님의 친구분인 D도 확진자가 되어 그 가족이 자가격리가 되었다. 그때도 하필이면 시험 기간이 겹쳐서 그분의 고등학생 자녀는 중간고사를 보지 못했다고 했다. 아이는 시험을 안 본다고 오히려 신이 났다니 그나마 다행인 경우였지만 말이다.
아프고 싶어서 아픈 사람은 없다는 것을 안다. 어디서 어떻게 옮아 왔는지 모르는 경우가 더 많다는 것도 안다. 내 친척 중에 한 분도 확진이 돼서 생활치료센터에 있다가 오셨다. 다른 가족이나 가까운 지인 중에 환자가 없는 것으로 보아, 가게에 방문했던 손님이 확진자였던 것으로 추정되지만 확실한 것은 없다. 백신 접종을 다 마치고 주의를 한다고 했는데도 걸렸다는 분들의 이야기도 들었다.
그럼에도 주의를 당부 또 당부하고 싶다.
인생에 시험이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고등학생들에게 중간고사는 전부일 수도 있다. 현행 입시체계에선 중간고사 한 번 한 번이 쌓여서 대입을 결정한다. 고3들의 수시 원서를 쓰면서, 3.5등급이냐 3.7등급이냐는 별거 아닌 거 같으면서도 엄청난 별거다. 3학년 1학기까지 포함되는 내신등급 점수의 소수점 한자리에 아이들은 울고 웃으며 지난날의 자신을 후회하기도 하고 칭찬하기도 한다. 그런 애들에게 중간고사를 제대로 볼 수 없게 만드는 것은 아이들의 기회를 빼앗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어른들의 눈에는 인생은 길고 그 순간도 나중에 다 약이 될지라도, 당하는 아이들은 절대 아니다. 중간고사 하나가 인생을 뒤흔드는 느낌을 주는 제도를 옹호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지금 현실에서 아이들에게 그만큼 큰 의미가 부여되는 만큼 주변에서 제발 협조해 주면 좋겠다.
A가 자가 격리가 된 것은 확진자가 된 형 때문이다. 지난 여름 방학 때부터 형이 친구들을 집에 불러 술을 마신다는 소릴 A가 종종 했었다. 두말할 것도 없이 B의 철없는 행동은 기가 막힌다. (확진자 학생에게 다른 반 친구가 찾아와 접촉을 할 정도의 상황이 벌어졌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지난 학기에 B가 다니던 학교에 확진자들이 발생했던 것은 아이들이 다니던 공부방 선생이 마스크를 미착용한 탓이었다. C가 다니는 학교에선 그 소동이 벌어지고 나서도 교무실에서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고 선생들이 음식물을 나눠 먹었다. D 씨는 4인이 모인 술자리를 가졌고, 그 술자리에 참석한 사람이 다른 확진자의 직장동료였다.
지난해, 우리 학원 인근에 있는 다른 학원에서 확진자가 대거 발생해서 인근 중고교가 난리가 난 적이 있었다. 그때 원인은 마스크를 미착용한 강사였다. 비슷한 시기에 잠시 우리 학원에서도 한 선생이 강의 중 마스크를 미착용하는 사태가 벌어져서 학원이 난리가 났었다. 결국 해고한 강사지만, 초기에 그 강사가 괴설로 마스크를 거부할 때 내가 어찌나 기가 막혔는지 모른다. 내 친구의 이웃이 가정 공부방을 운영 중인데, 선생이 마스크를 미착용한 것을 보고 당황했다고 한다. 우리 학원에는 며칠 전 확진자가 3천 명을 돌파했을 때 가족여행을 떠난 학생이 있다. 내 동기의 학원에도 3박 4일 제주도 여행을 떠난 학생 가족이 있다고 한다.
나는 모두가 모든 것을 멈추고 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최소한 아이들과 밀접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은 좀 주의를 해주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교육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주의하지 않는 것은 정말이지 조금도 이해할 수가 없다. 무책임도 그런 무책임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가족 중에 학생이 있다면, 내 가족을 위해서라도 내 가족이 다니는 학교의 다른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주의를 해주었으면 한다. 나도 지겹다. 나라고 외부활동을 아무것도 안 하고 있지는 않다. 코로나가 잠잠해졌을 무렵엔 나도 외출을 했다. 최소한 문제가 되더라도 애들 시험에는 지장을 주지 말자고, 같은 업계에서 일하는 친구들 모두 시험이 끝나기 전엔 대외 활동을 안 한다.(대외 활동이라는 게 지난 이 년 동안 거의 없는 경우가 더 많다.) 이 말도 안 되는 세상이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 근데 이미 상황은 이렇고, 아이들의 입시는 전과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다. 그러니 곁에 있는 사람들만이라도 버텨줘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