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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북선생 Oct 15. 2021

넋두리

고3 수업

새벽까지 모의고사 지문을 읽다가 잠깐 나오니, 마침 새벽잠이 없으신 아버지가 나에게 아직도 안 잤냐고 물으셨다. 나는 그제야 지금이 몇 시인지 확인했다. 새벽 3시. 평소에도 늦게 자는 편이긴 하지만 아직 할 일이 남아 있는 상황에서 3시는 정말 반갑지는 않았다. 아직 볼게 더 남았다고 하니 아버지가 자주 하는 농담을 또 하신다. "너는 왜 아직도 공부 중이냐?" 가끔은 그렇게 공부했으면 서울대를 갔겠다는 말씀도 하신다. 억울하다. 고등학교 때도 국어는 남부럽지 않게 잘했다. 국어 성적만 놓고 대학을 갔으면 서울대 갔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정말 딱 국어만 잘 한 사람이다.


고3 수업은 품이 정말 많이 든다. 새 교과서가 출시되지 않는 한 다른 학년들은 이전에 지도했던 교과서를 반복하기 때문에 처음 가르치는 해만 내가 공부할 것들이 생길 뿐이다. 이후엔 사실 작품 분석보다는 아이들에게 나눠줄 프린트나 문제를 편집하는 시간이 더 많다. 아이들 성향이나 학교 시험 경향에 따라서 준비하는 것들이 차이가 나기 때문에 일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고3 하고는 이야기가 정말 다르다.


고3은 매년 새로운 준비를 한다. 우선 연계 교재인 '수능특강'. 매년 새로 나오는 수능특강은 '문학'만 해도 다 다시 봐야 한다. 매년 반복적으로 수업하는 정철의 작품들 마저도 수특에 나오면 다시 점검해야 한다. (내가 사미인곡, 속미인곡을 달달 외우고 다닌다고 해도 새로 준비가 필요하다.) 그래도 비교적 정보가 많고 여러 번 해봤던 작품들은 그나마 시간이 덜 걸린다. 나조차 낯선 작품이거나, 기존 교과서에선 같은 작품의 다른 파트가 언급이 되었다면 내가 고3이 되어서 공부를 해야 한다. 아니 정확히는 고3보다는 내가 더 공부해야 하니까 대학생으로 돌아간 기분 정도다. 매주 한 가지씩 연구과제를 주셨던 교수님이 계셨는데, 그 수업을 다시 듣는 기분이 든다. 그래도 문학은 양반이다.


문제는 '비문학'인 독서를 지도하는 일이다.


나는 문과 출신이다. 7차 교육과정 세대라서 과학은 고1 때 공통과학 이후로 딱히 공부를 안 했다. 그 공통과학마저도 공부 잘하는 친구의 도움을 받아서 간신히 공부했어서 기억에 남는 것이 없다. 사회탐구의 경우, 역사를 좋아했어서 국사와 근현대사를 다 공부했고, 경제와 한국지리, 윤리 수업 정도까지는 들었다. 그런데 비문학 지문들은... 법, 경제, 철학, 역사는 물론이고, 지구과학, 생명공학, IT, 건축, 미술, 음악에 이르기까지 한계가 없다. 사회분야는 그래도 애들보다는 오래 산 어른이기도 하고, 고등학교 때 조금 배웠던 기초지식이 있어 읽는 게 힘든 것이 없지만, 그 이외의 분야는 머리가 아프다. 관심이 있는 미술 분야는 그래도 흥미롭게 읽겠는데, 워낙 싫어했던 교과였던 과학분야는 글자를 보는 순간부터 그냥 머리가 아프다. 물론 요즘 내가 더 힘든 것은 IT 기술 정보통신 관련 이야기들이긴 하다. (도대체 0과 1이 뭐 어쨌다는 거냐 너희는)


수능특강을 지도하고 있을 때는 그래도 그나마 할 만하다. 1학기가 완전히 종료되고 난 다음부터가 사실 진짜 더 정신이 없다. 일정 기간은 기출문제나 기존에 나와있던 문제집을 풀린다고 해도, 여름방학 이후부터는 이야기가 다르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수준에 따라 차이가 있긴 해도, 대체로 나는 새로운 글을 아이들이 접하도록 하기 때문에 덩달아 나도 새로운 문제를 풀어봐야 한다. 그러다 보면 수능이 가까워지는 달에는 내가 수험생인가 싶을 정도로 많은 것들을 보고 있게 된다. 나처럼 과학을 잘 모르는 문과 애들한테는 그 과학적인 개념을 잘 소화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하고, 사회 특히나 철학 파트를 이해 못하는 이과 애들한테는 또 그 수준에 맞춰 설명을 해줘야 한다. 간혹 미술이나 음악 관련 지문에서 애를 먹는 애들도 있는데, 그럼 또 거기에 맞춰야 한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오늘은 과학지문만 두 시간을 떠들다 왔다. 특히 기압과 온도에 대해서 이해시키느라 한 십 분은 애먹은 날이다.)


그러다 보니 고3은 그냥 일이 많다. 학생수가 한 명이었던 해도 있었는데, 준비하는 분량은 정말 다름없이 똑같이 많다. 그 해엔 차라리 학생수가 많은 쪽이 가성비라도 있을 것 같았다. 그랬더니 바로 다음 해에 고3이 넘쳐나서 더 머리가 아프긴 했지만 말이다. (규모가 작은 학원이다 보니 인원수가 많다고 해도 수준별로 분반이 불가능하다. 5등급과 1등급이 공존하는 교실은 다른 의미로 어렵다.) 그래서 자주 드는 유혹이 있다. 그냥 고3 수업을 하지 말까?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을 못하는 게 딱 나다.


사실 나는 고3 수업을 하려고 이 학원에 왔다. 이전에 근무했던 곳은 사교육의 메카였고, 국어 단일 과목만 지도하는 학원임에도 원생이 300~400명씩 되는 곳이었다. 교사의 수가 많은 것은 두말할 것도 없고 말이다. 때문에 나 같은 사람에겐 고3 수업의 기회가 쉽게 오지 않았다. 고 3만 전문으로 하시는 선생님들이 계셨고, 그 그룹에 속하려면 거쳐야 할 단계가 있었다. 용꼬리 생활은 여러모로 내가 힘들었다. 성장과 발전의 기회일 수도 있었겠지만, 학교가 아닌 직장에서 배움을 위해 나를 희생하는 결정은 쉽지 않았다. 물론 그 선택을 했다면 소위 말하는 일타강사처럼 잘 나갔을지도 모르겠지만, 그게 '나'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왜냐면 나는 그런 서열에 낄 만큼 대단한 사람이 못 되었다. 고등학교 현직에서 근무하다 나오신 분, 대학 출강까지 하시는 분, 경력의 평균 단위가 15년씩 되는 분들에 SKY라는 거대한 학교 간판이나 석박사 학위까지 다신 분들이 포진한 상황에 난 싸울 엄두도 안 났다. 그리고 결정적인 건 내가 딱히 그런 것에 보람을 느끼지도 않았다. 또 나는 아이들과의 관계가 더 중요한 사람이라서 사무적인 관계만 형성되는 그곳이 별로 매력적이지 않았다.


그래서 내린 결정이 작은 학원이었다. 처음에 이력서를 넣고, 면접을 갔다가 규모가 너무 크면 최종에서 다 고사했다. 그리고 그 작은 곳 중에서 고3을 나에게 맡길 수 있는 곳을 택했다. 시스템에서 배워 나가는 방법 대신에 사실 나는 현장에서 직접 부딪히면서 배우는 방법을 택했다. 다행스럽게도 첫 해 고3들이 성과를 냈다. 이후로 나에게 고3을 맡기는 것에 학원 측에서도 전혀 걱정이 되지 않을 정도로 잘 되었다. 그 배경엔 진짜 백조처럼 열심히 물장구를 친 노력이 있었다. 애들보다 내가 더 많이 문제를 풀었고, 더 많이 자료를 찾아보고 강의도 들어보고, 이 책 저 책 참고가 될 것들은 다 본 것 같았다. 휴일에도 가방에 모의고사를 챙겨 들고나가서 카페에서 짬을 내어 지문을 분석하고 있었다. 순전히 젊어서 가능했던 일이다.


그래 요즘은 내가 좀 늙은 것 같다. 친구와 자주 했던 이야기가 매너리즘에 빠지지 말자였는데, 지문을 읽으면서 이렇게 투덜거리고 있는 것을 보니 친구와의 약속이 실패했는지도 모른다. 올해 고3 전원을 수능 없이 입시를 마무리 지어보려고 했는데, 결과적으로는 수능까지 함께 가야 할 아이들이 남았다. 수업 준비가 세상 귀찮고 짜증 나고 도대체 너는 왜 나와 아직도 이러고 있니 싶은 생각까지 드는 날도 없지는 않았다. 이제 그만 하산해도 되지 않겠니?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나오는 날도 있었는데 그게 순전히 내가 편하고 싶어서였다. 진짜 나쁜 선생이다. 힘들다 힘들다 하면서 하루하루 지나다 보니 어느새 수능이 고작 한 달 남았다. 아이들에겐 일생일대의 중요한 관문이고 나는 그걸 도우는 사람이다. 지치지 말자고 이 넋두리를 풀어봤다.


내가 고3을 지도하는 것이 과연 아이들에게 옳은 결정인가 싶은 때가 있었다. 내 자신에 대한 의구심이 한껏 증폭되어서 나 따위가 아이들 인생에 끼어서 망치는 것은 아닌가 두려웠던 날도 있었다. 그 해에 지도했던 한 학생이 고등학교 3년 내내 받아 보지 못한 성적을 결국 받아냈다. 아이가 감격에 겨워서 나에게 전화를 했던 그 순간. 내가 아이들을 가르쳐도 되는 사람이라는 허락이라도 받은 기분이었다. 졸업생 중에 한 아이는 내게 종종 그런 말을 했다. "쌤, 저는 국어 덕에 살았어요. 아시죠?" 목표했던 학교를 가는데, 최저 점수를 국어로 맞춘 아이였다. 처음 만났을 때 녀석은 국포자에 가까운 이과였다.


진짜 개구리가 된 건지는 아직도 미지수지만, 알에서 갓 깨어난 올챙이였던 때를 다시 생각해 본다. 그리고 마음을 다잡고 다시 아이들의 등에 한 땀 한 땀 깃털을 모아 붙여서, 올해 고3들에게도 부디 국어가 날개가 되어 주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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