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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북선생 Sep 15. 2021

아름다운 이별

강사들은 어쩔 수 없이 많은 이별을 해야 한다. 학생들이 나를 떠나는 날도 많고, 내가 아이들을 떠나가야 하는 날도 많다. 그리고 많은 동료들과도 헤어짐을 반복한다. 강사들은 다니고 있는 학원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다른 좋은 조건의 자리를 찾아서 자의적으로 움직이기도 하지만, 학원 측의 문제나 아이들과 강사 간의 문제로 인해 타의적으로 움직이기도 한다. 나 역시 자의로 타의로 이동을 해봤고, 나와 함께 일했던 여러 선생님들도 그러했다.


내 첫 번째 학원에서의 근무는 타의에 의해 종료되었다. 상가 건물의 두 개층을 나눠 쓸 정도로 규모가 컸던 학원이었지만, 그 규모에 비해 원생이 줄어있는 상태에서 내가 왔었다. 어떤 반은 학급 인원수보다 지도하는 강사가 많을 정도였고, 특정 학년은 공부 못하는 아이들이 모여있는 것으로 낙인이 되어 신규등록을 꺼리기도 했다. 학원 시설면에서는 현재까지 내가 근무했던 학원 중에서도 매우 좋은 편에 속했지만, 원장님이 강의하지 않는 학원이라 한계가 분명했다. (경력이 쌓이고 보니 원장님이 수업하시는 것이 엄청 중요하다.) 학원을 키워 보기 위해서 선생님들 모두가 열심히 노력은 했었다. 그 과정에서 초짜 선생이었던 나는 학부모 설명회를 준비하고 진행하는 경험까지 할 수 있었다. 내게는 꽤 도움이 되는 경험들이었다. 그러나 결국 학원은 운영을 중단하는 상황에 도달했다. 막바지에 이르러 학원엔 잡음이 많았지만, 나는 그저 내 중심을 잡고 내가 해야 할 일에만 충실했다. 어차피 곧 수업이 종료된다고 할지라도 수업은 해야 했고, 이 아이들과 이 순간이 마지막이라고 해도 내가 가르쳐야 할 것들은 가르쳐야 했다. 어린 열정으로 이 아이들이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이 강했던 시기이기도 해서 내가 줄 수 있는 것은 다 주려고 했었다. 그때는 그 모든 것들에 어떤 의미도 부여하지 않았다. 그저 해야 하니까 했다.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에야 나는 그 이별을 잘 마무리한 것이 얼마나 중요했었는지 깨달았다. 새 학원을 알아보러 면접을 보면서 알게 된 사실이 있었다. 


"국어 선생님이요? 정말 좋으세요. 꼭 우리 선생님 뽑아 주세요."


내 경력 확인차 연락을 해 본 학원들이 있었는데, 내 경력으로 딱 한 줄 있었던 그 학원의 부원장님이 그렇게 말씀해 주셨다고 한다. (원장님, 부원장님이 부부셨고 이런 학원들이 꽤 많다.) 경영난으로 일방적으로 선생님들을 해고하는 입장이 되면서 여러모로 마음이 쓰이셨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니 다른 학원에서 연락이 왔을 때 어떻게든 우리 선생님들 잘 좀 봐달라고 말씀하고 싶으셨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 모든 선생님이 나와 같이 좋게 끝맺은 것이 아니었으므로 모든 전화에 그렇게 답하지 않으셨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 이후에 새로운 곳에 자리를 잡고 나서 마지막으로 부원장님과 통화를 했었는데 참 다행이라고 하셨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모두가 느끼겠지만 '업계는 참 좁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그렇게 큰 나라가 아니어서 그럴지도 모르지만 몇 다리만 건너면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 이 일이 사회 초년생이었던 내겐 큰 약이었다. 


이후에 내가 근무하던 학원이 나에게 너무 버거워서 스스로 관둔 적이 있었다. 이직 속도가 빠른 강사들도 있지만, 나는 잦은 이동을 선호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반년이 넘었을 무렵부터 더는 안 되겠다 싶었다. 8개월이 넘었을 무렵 결국 나는 결정을 내렸고 학원 측에 퇴사 의향을 밝혔다. 가르치던 아이들이 있었으니 당연히 아이들의 마지막 시험까지 마무리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학기말 고사를 끝으로 정리하기로 학원 측과 협의를 하고 마지막 달 근무를 했다. 꽤 규모가 큰 곳이어서 강사진이 많았고, 그 기말고사를 끝으로 관두는 강사가 나 말고도 있었다. 마지막 달이라고 해서 내가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평소와 다름없이 출근했고, 잔무도 다 처리했고, 아이들 수업도 문제가 없었다. 아이들의 시험 결과 역시 지난 시험들과 차이가 없었다. 단지 내 목이 완전히 망가져 있었다. 업무량과 수업량이 감당이 안돼서 그만두기로 했던 거였는데 기어이 마지막 2주 정도는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는 상태까지 되었다. 아마 그런 모습이 동정심을 불러일으켰을지도 몰랐다. 마지막 수업이 있던 날. 강사진이 많아서 항상 누가 그만둔다고 해도 별다른 것이 없었는데, 어쩐 일로 원장님이 나와 따로 식사를 하자고 하셨다. 나와 같은 시기에 그만두시는 분이 계셨음에도 말이다. 약 10개월을 근무하면서 처음으로 원장님과 일대일로 했던 그 식사가 내 일생 가장 어색한 식사였다. 마지막 수업을 마무리하고 내 짐을 챙기고 다른 선생님들께 인사를 드리고 나설 때, 평소 사적인 교류를 잘 안 하시던 중등 실장 선생님께서 너무 아쉬워하는 얼굴로 마지막까지 고마웠다고 인사를 하셨다. 원래 교류가 있었고 나에게 다정했던 분들의 인사보다 그분의 인사가 나는 가장 인상 깊었다. 내 수업이 좀 여러 학년에 걸쳐 있어서, 중등 실장님이 내 직속은 아니셨다. 오히려 당시 나와 함께 그만두시던 선생님이 중등 실장님 직속 강사였다. 내 마지막 수업이 중등부 기말고사여서 그랬을 수도 있지만, 마지막 주간에 정신력으로 간신히 버티기를 잘했다고 생각한 순간이었다. 그 실장님의 감사인사가 당시 내게 가장 큰 위로였고 응원이었다.


"업무에 있어서 마지막까지 잘 마무리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시는 분이라면, 세상이 정말 당신 같은 분들만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나의 선의를 선의로 대하지 않고, 마지막을 엉망으로 만들어 버리는 사람들도 생각보다 많다.


내 첫 학원의 상황처럼 학원의 경영난으로 인하여 타의로 관둔 적이 또 있었다. 그곳도 꽤 규모가 되었던 곳이라 강사진도 중고등부로 나뉘어 있었다. 한때는 원생이 너무 많아서 1관 2관으로 나누어 운영까지 했는데, 경영 악화로 인해서 관을 하나로 줄이면서 강사진이 정리가 되었다. 그곳도 원장님과 부원장님이 부부로 원장님은 중등부를 부원장님은 고등부를 관리하시고 수업도 하셨다. 당시 나는 중등부에 속해 있었는데, 내가 근무하던 관이 정리된다는 소식을 고작 일주일 전에 알았다. 그것도 원장님, 부원장님을 통해서가 아니라 학생을 통해서 말이다. 사무를 봐주시던 상담 실장님께 되물어 보고서야 관이 정리되는 것을 알았고, 나와 실장님의 대화를 듣고 나서야 부원장님이 내게 해고 사실을 알려주셨다. 교과목도 다르고 고등부를 관리하시는 분이기 때문에 부원장님과는 전체 회식이 있는 날이 아니면 평소 대화를 할 일이 없었는데, 마지막 대화가 그것이었다. 아이들 시험이 남아 있어서, 내가 근무하던 학원 건물에서 이삿짐을 싸서 다른 건물에서 마지막 일주일 정도 수업을 더 했다. 학원이라는 곳이 워낙 들고 나기가 쉬운 곳이라지만, 내 잘못도 아닌데 이렇게 갑자기 통보 아닌 통보를 받아 당황스러웠다. 알고 보니 이전부터 오래 근무해 왔던 강사진들이 남고 신규 강사진들이 정리가 된 것이었다. 내가 정리가 된 이유도 그와 같았다. (동료들에게 못 들었냐고 궁금해하실까 봐 알려드리자면, 강사가 자신의 개별 강의실에서 수업을 진행하는 곳이라 회의나 회식이 아니면 다른 강사진들과 소통하기 어려운 구조였다. 안내 데스크를 맡고 계신 상담실장님이 내가 대화를 제일 많이 나눈 분이다.) 그래도 내 수업은 잘 마무리해야 했다. 이전까지 나는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고, 학원의 경영악화는 어쩔 수 없는 문제라고 생각도 했다. 문제는 마지막 수업을 하고 나오던 그날이었다. 나는 원장님도 부원장님도 보지 못했다. 그저 데스크를 지키시던 상담실장님과 나눈 인사가 마지막이었다. 내가 무엇을 위해서 마지막까지 열심히 했는지 허탈해지는 순간이었다. 


반대로 내가 실장이 되고서 보내는 입장이 되어 최악의 이별도 겪어 봤다.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우리 학원은 자신의 강의 시간이 조금 뒤에 있어도 정해진 출근 시간에 와야 한다. 그런데 A 선생님은 출근 시간으로부터 약 1시간 뒤, 강의 시작 약 10분 전에 출근을 했다. 그것도 출근 첫 주부터. 내가 몇 번의 주의를 드렸다. 특별한 사정이 있다면 학원에 알려 주시고, 출근 시간은 지켜달라고 말이다. 파트타임 강사로 수업을 하러 가도 대부분의 학원 측에서 수업 30분 전에는 학원에 도착하기를 요구한다. 그걸 요구하지 않더라도 내 수업을 들어가기 위해서 준비가 필요하기 때문에 강의시간에 아슬하게 도착하지는 않는다. 몇 번 말씀을 드렸음에도 개선이 되기는커녕 나중엔 아예 수업 직전에 학원 도착하기도 했다. A 선생님은 파트타임 강사가 아니라 전임 강사였음에도 그러했다. 원장님의 주의에도 문제는 해결이 되지 않은 상황에서 일이 터졌다. A 선생님이 수업 중에 아이들 앞에서 욕설을 한 것이다. 이전에도 A 선생님이 수업 중 부적절한 언행이 몇 번 있어서 아이들이 불만을 제기한 상황이었다. 결국 우리는 급하게 A 선생님을 정리하기로 결정을 하고, A 선생님이 출근하시자마자 원장님께서 A 선생님께 해고 통보를 하셨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학생들이 나를 찾았다. A 선생님이 수업에 들어오지 않으셨다고 어디 계시냐고 말이다. A 선생님이 원장님께 해고 통보를 받자마자 그대로 귀가하셨다는 사실을 그제야 알았다. 강사를 교체하려면 그를 대신할 사람을 구해야 하는 문제와도 연결된다. 당연히 결정을 내렸다고 해도 새 강사를 찾을 시간이 필요하다. 따라서 해고 통보를 했다고 해도 지금 당장 나가라고 말씀하신 것은 당연히 아니다. 출근한 지 약 3주 만에 A 선생님은 그렇게 그만두셨다. (사회생활을 처음 하는 어린 초임 강사도 아니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이 되지 않는다.) A 선생님은 두 번 다시 볼 일이 없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그렇게 무책임하게 갔을 것이다. 아마 이력서에 우리 학원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고 다음 학원으로 넘어갔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옮겨간 그곳에서 얼마나 잘 지내실지 솔직히 모르겠다. 


A 선생님과 반대로 너무 훈훈하게 떠나신 분들도 있었다. 2년 정도 근무하시는 동안 아이들이 참 잘 따르던 B선생님이셨다. 나보다 어리고 경력도 적었지만, 우리 학원에서의 경험과 대학 선후배들의 도움으로 타 지역에 학원을 개원하면서 떠나셨다. 학원 측에서 다음 강사를 구할 시간을 충분히 여유를 주고 알려주셨고, 당연히 마지막 기말고사까지 깔끔하게 수업을 하셨다. 마지막 출근 일에는 조촐하게나마 송별회로 다 같이 회식도 했다. 동료들 모두 선생님의 개원을 축하했고 덕담들이 오갔다. 이후로도 가끔 B선생님 이야기가 회자되면 모두 기분 좋게 이야기하고, 아이들 중에 몇몇은 그 이후로도 B선생님과 연락을 주고받은 이야기를 했다. 가장 최근에 그만두게 되신 C 선생님의 경우도 특별했다. 코로나 시국이라는 어려운 시기에 근무하시면서 고생을 하셨는데, 특정 학년에서 마찰이 발생했다. 학원 입장에서 아이들 성적 문제와 학생과의 마찰은 예민하다. 결국 C 선생님에게 해고 통보가 되었다. 마지막 시험 주간을 마무리하시면서 C 선생님은 껄끄러운 수업을 이어가셔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주까지 추가 보강을 잡아서 아이들 수업을 마무리하셨고, 마지막 날에는 함께 일한 선생님들께 그간 감사했다는 작은 선물까지 주셨다. 실장으로 내가 되려 미안했다. 나는 C 선생님께 그간 수고하셨다고 인사를 했고, 이에 C 선생님은 마무리가 이렇게 되어 아쉽다는 인사로 답하셨다. 사실 실장의 입장에 있으면서 학생들과의 마찰 학부모들의 항의를 중간에서 관여하다 보니 마지막에는 C 선생님께 화도 났었다. C 선생님도 아마 나에게 비슷한 감정을 느끼지 않았을까 짐작은 해본다. 그러나 마무리를 그렇게 맺음으로 나도 C 선생님도 해피엔딩이 되었다. 두 번 다시 서로를 마주칠 일이 없다고 해도 서로에게 나쁜 기억으로 남지 않게 된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모든 일에 시작이 중요하다고 한다. 그런데 마지막도 중요하다. 나의 뒤에 아무도 없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제대로 인사도 안 하고 수업을 버리고 떠났던 A 선생님에 대해서 아이들은 두고두고 비난했다. 괜찮은 선생님이 구해지지 않으면, 남아 계신 선생님들은 자꾸만 B선생님을 소환한다. 그분이 너무 괜찮았었는데 하고 말이다. 학원 경영난으로 두 번 해고되었지만, 첫 학원의 부원장님은 잘 되시길 바라고 여전히 내 핸드폰엔 그분의 연락처가 있다. 모든 것이 다 그저 일로 맺어진 관계들이지만, 그 일을 하는 것은 사람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서로에게 좋은 인연으로 남지는 못하더라도 최악의 뒷모습을 보일 필요는 없다. 그렇게 생각하면 이별이야 말로 가장 아름다워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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