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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북선생 Sep 01. 2021

먹을 것 주는 사람은 착한 사람

사랑스러운아이들


"오늘 급하게 나오느라 밥도 못 먹었다."


지나가는 말이었다. 오후 수업을 하다 보니 오전 시간에 자고, 점심 무렵 일어나서 식사를 하고 나오는데 그날은 늦잠을 자버리고 만 것이다. 제대로 식사도 못하고 나와서 수업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냥 지나는 말로 힘이 든다며 투정 아닌 투정을 부렸었다.


"쌤!!"


여학생 하나가 다음 수업을 준비하고 있던 강의실로 뛰어들어왔다. 그리고 내민 빵. 내가 굶고 나왔다는 이야기에 편의점에 가서 빵을 사 왔다고 먹으라고 웃었다. 아이에게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에 얼마나 뿌듯했는지. 그 순간을 찍어서 기록해 놨다. (아이들과 있는 소소한 즐거운 일들을 나는 내 개인 SNS에 종종 올리며 친구들과 공유한다.)

6년 전 어느 날


어른인 내가 돈이 없지도 않을 텐데, 얼마 되지도 않을 자신의 용돈을 기꺼이 날 위해 썼다. 거기다 아이들에겐 돈보다 귀할 쉬는 시간에 나를 위해 편의점에 뛰어갔다 오는 수고를 했다. 나는 아이가 무슨 생각을 했을지 짐작해봤다. '선생님이 얼마나 배가 고프실까? 다음 수업 준비로 바쁘시겠지? 힘 내시라고 해야지.' 아마 이런 마음들이 모인 것이겠거니 싶으니 세상을 다 가진 듯이 뿌듯해졌다.


이 일을 하는 동안 아이들에게 가장 많이 받은 것은 '먹을 것'이다. 내가 단순해서인지 모르겠지만, 내 기준에 먹을 것 주는 사람은 무조건 착한 사람이다. 그 기준에서 내가 보기에 우리 아이들은 세상에서 제일 착하다.


손수 만든 빼빼로라니 열 애인이 안 부럽다.

 무슨 데이만 찾아오면 아이들은 분주하다. 어른들은 장삿속으로 그런 데이를 만들었을지 몰라도 아이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기꺼이 먹을 것을 나눈다. 그 철없는 남학생들도 그런 날엔 막대사탕이라도 꼭 하나씩 사들고 온다. 내밀면서 별거 아니라는 듯이 말하는 것은 덤이다. 솜씨 좋은 여학생들은 그날을 기다렸다는 듯이 초콜릿이며 빼빼로며 만들어 오는데, 아이들의 놀라운 솜씨는 감탄이라는 말로 부족할 만큼 훌륭하다.






카네이션 쿠키라고 들어는 봤는가?

스승의 날이라고, 선생님 생일이라고, 어떤 날은 그저 이유 없이. 아이들은 먹을 것을 사 오고, 만들어 온다. 


코로나 이전에는 중학교 아이들이 자유 학년제 활동의 일환으로 제빵 실습을 한 결과물을 들고 왔었다. 잘 만들지 않았냐며 자랑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내미는 그 뿌듯한 얼굴 덕에 더 달콤한 그런 머핀들을 먹으면서 엄지를 올려 주었다. 이 실습 기간엔 아이들끼리 은근히 경쟁까지 붙어서 서로 자기 것도 먹어보라고 내민다. 두 눈 가득 '칭찬해 주세요'하면서 말이다.



때로는 덩치가 커다란 고등학교 남학생들이 자신들의 간식을 사러 편의점에 갔다가 캔커피를 사들고 온다. 그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새콤달콤 같은 아주 작은 간식을 들고도 온다. 와서는 교무실 책상에 툭하니 놓고 나간다. 말도 별로 없다. "드세요." 이게 끝이다. 며칠은 굶은 하이에나들처럼 쉬는 시간이라고 우르르 뛰어 나갔던 녀석들이 무슨 정신이 있어서 선생님 간식까지 들고 오는지는 모를 일이다. 아이들이 어떤 맘으로 그것들을 사 오는지 모르지만, 나는 그 순간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이 된다. 그 찰나의 순간에 나를 떠올렸다는 것이 기뻐서 말이다.


코로나가 터진 이후로 학원 내에서는 물과 커피를 제외한 모든 취식이 금지되었다. 때문에 저녁 식사를 거르고 수업을 계속 진행해야 하는 불편을 겪고 있다. 퇴근 시간만 되면 그래서 녹초가 되는 경우가 흔한데, 그런 우리에게 최근 즐거운 일은 중학교 1학년 여학생들의 '취미 활동'이다.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진 덕분인지 아이들이 '홈 베이킹'에 취미가 붙었다. 한 명이 시작하더니 다른 아이들까지 퍼져 나간 이 취미 생활 덕에 최근 교무실엔 귀여운 캐릭터 모양의 버터쿠키와 색색의 머랭 쿠키가 배달된다. 만드는 아이의 취향에 따라 쿠키의 색과 디자인이 달라서 구경하는 재미도 있다. 그리고 쿠키는 하나같이 맛있다. 어쩜 이렇게 잘 만들었냐고 신기해하면서 물어보면 그 초롱초롱한 눈으로 기쁜 얼굴을 한다. 그 눈빛 덕에 배가 부르다. 나는 요리와는 완전 거리가 먼 사람이라서 그것을 만드는 일이 얼마나 쉬운지 어려운지 잘 모른다. 그저 저 작은 아이들이 고사리 같은 그 손으로 쪼물쪼물 무언가를 만들었다는 것이 신기하고, 그것을 선생님들과 나누려고 하는 것이 너무 사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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