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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북선생 Jun 15. 2021

내신 등급의 비극

고등학교 시험이 끝이 나고 아이들의 성적표가 나오는 때가 되면 한숨이 절로 나오는 순간들이 있다. 우울해하는 아이를 다독이면서 응원을 하지만 아이 못지않게 속이 많이 쓰리고 답답하다. 여느 날과 같이 그런 날이었다. 아이는 “저 문학 그냥 접을 까 봐요.”라고 말을 하면서 우울하게 성적표를 내밀었다. 수업 시간 내내 열심히 듣는 아이였고, 평소 집에서도 늦은 시간까지 혼자 공부를 하며, 숙제를 밀리거나 학교 수행평가를 소홀히 하는 아이도 아니었다. 아이는 시험을 보고 온 날부터 우울해 하기는 했었다. 고작 3문제를 틀렸지만 말이다. 그리고 시험 당일 예측했던 것처럼... 아이의 등급은 낮게 나왔다. 4등급. 딱 중간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그러기엔 이 아이의 그간 노력이 슬펐다. 너무 가슴 아프지 않은가? 겨우 3문제를 실수했을 뿐인데 아이는 4등급을 받았다. 단순하게 이야기하자면 이 아이는 소위 인 서울은 갈 수가 없는 성적을 받은 것이다. 아이를 최대한 달래주고 퇴근하는 길, 고등 영어를 맡고 있는 친구와 이 이야기를 하면서 이 우울함을 달래야 했다. 그 친구의 학생도 96점을 받고 2등급이 나왔다고 했다. 한 문제를 틀렸는데 2등급이라니 그 아이도 안쓰러웠다. 내 모교 후배인데, 내가 다닐 때에 그렇게 숨 막히는 학교는 분명 아니었는데 말이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이 모든 것이 내신 등급의 비극이라고.


학교 성적을 바탕으로 대학을 진학할 수 있는 수시전형. 그것은 곧 내신 등급이 잘 나와야 한다는 말이 된다. 아이들이 꿈꾸는 소위 인 서울은 평균 2등급을 요구하고, 수도권의 괜찮다는 4년제 대학들을 못 해도 평균 3등급을 요구한다. 그런데 이 2등급 3등급이라는 점수를 받는 과정이 한 학교의 안에서 보자면 단순히 노력의 차이겠지만, 여러 학교를 지도하고 있는 나의 시각에서는 그게 전부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내가 가르치는 중학생 아이들이 고등학교에 진학할 때, 이 지역 내 인문계열 고등학교 선택지는 대략 8개다. 그 학교들 중에 자립형 사립고등학교와 자립형 공립고등학교가 각 1개씩 존재하며, 특정 과목을 중점 교육하는 학교도 두 곳이 있다. 남녀공학으로 이루어진 학교도 있지만, 여학교, 남학교도 각각 두 곳이 있으니, 사실상 아이들의 선택지가 그렇게 넓다고 할 수는 없다. 본인이 선택을 했다고 해서 그 학교로 배정을 받는 것도 아니지만 말이다.


앞서 이야기한 학생 A는 본디 이 지역에서 명문으로 꼽히는 공립고등학교 학생이다. 그 학교가 있는 지역은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예전부터 이 지역에서는 잘 사는 사람들이 사는 동네였다. (참고로 나는 이 지역에서 초, 중, 고등학교를 모두 졸업한 사람이며, 내 친인척들도 이 지역에서 초, 중, 고등학교를 다녔다.) A고등학교(A학생이 다니니 이렇게 칭하자.)에 진학하는 아이들 중 상당수는 바로 옆에 위치한 a초등학교와 a중학교 출신 아이들이 많은데, 이 학교들은 지역에서 가장 열심히 공부시키기로 유명한 곳이다. 해당 지역에서 영어 과외를 했던 선생님의 말을 빌리자면 영어 유치원에서 시작하여 장기간 영어 교육을 심화한 아이들이 많아서 초등학교 6학년이어도 고1이 보는 책을 소화하기에 무리가 없다고 했다. 때문에 a중학교 시험이 인근에서 가장 어렵기로 소문이 났다. 바로 그 중학교 출신 아이들이 A고등학교에 상당수 진학을 한다. 때문에 A고등학교의 시험 문제도 마냥 쉽지는 않다. 문제는 그 고등학교 주변의 가정들은 상당수가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고 아이들 사교육비로 200만 원 정도는 쉽게 쓰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코로나로 인해 온라인 기기를 빌려주는 문제가 되었을 때 이 학교는 태블릿 PC가 최신형으로 대량 준비되어 있었지만 막상 빌려가는 학생들은 없었다며, 그 학교 학생이 "그럴 애도 없지만, 있어도 말 못 할걸요."라고 말했다. 대략적인 분위기를 파악하시면 좋겠다.) 온라인 클래스가 운영이 되었을 때 이 학교의 수업 내용을 보자면 정말 열심히 최선을 다하는 선생님들만 모여 계시는 곳 같았다. 인근의 그 어떤 학교보다 온라인 교육마저 충실했다. (여느 사립학교가 부럽지 않은 시스템이었다.) 그런 학교다 보니 시험이 어려운 와중에도 경쟁이 치열하다. 시험을 어렵게 내어도 만점자가 속출하고 그러다 보니 다수의 고득점자들 때문에 3문 제 만 틀려도 4등급을 받는다. 3문제나 틀렸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A는 전국 모의고사 등급이 전과목 2등급 밖으로 밀려난 적이 없는 아이이다. 그럼에도 내신등급이 4등급이 나오니 아이의 절망을 어찌 비극이라 하지 않을 수 있을까.


A의 결과가 비극이 되는 더 큰 이유는 중학교 때부터 같이 공부했던 B 때문이기도 하다. 1년 내내 B는 A와 비슷하거나 조금 낮은 점수를 받아 왔다. 이번 시험도 그랬다. A보다 B의 점수가 6점이 더 낮았다. 그러나 B의 내신 등급은 2등급이 나왔다. 1년 내내 A는 그런 B의 성적표와 자신의 성적표를 보고 있으니 비극이었다. B가 다니는 B고등학교도 공립학교이며 A가 다니는 고등학교와 그다지 멀리 떨어져 있지도 않다. 그러나 B고등학교가 있는 동네는 서민 가정이 많은 동네다. 최근 이 동네도 개발로 인해 아파트들이 많이 들어서서 변화되었지만 내가 어릴 때는 다소 못 사는 동네로 생각했던 곳이었다. 물론 상위권 아이들은 어느 학교나 마찬가지로 열심히 한다. B고등학교라고 아이들이 공부를 안 하지는 않는다. A가 열심히 했듯 B도 열심히 한 아이다. 노력하지 않고 얻은 결과는 절대로 아니라는 소리다. 다만 B고등학교는 딱 3등급이 되는 정도의 석차의 아이들까지만 공부를 한다. 적당히 벼락치기를 해도 4등급이 나온다는 소리다. A고등학교에서는 치열하게 해서 얻은 점수가 4등급인데 반해서 말이다. 이러니 A에겐 비극이다. A가 B고등학교로 진학하게 되었다면 내신등급이 1~2등급이 나올 수 있었을 텐데 A고등학교로 진학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아이들이 선지망을 쓰기는 하지만, 어찌 되었든 소위 뺑뺑이로 고등학교는 결정이 난다.)


그럼 B의 내신등급은 비극이 아닐까? 2등급을 받았으니 기쁜 일이다. 그러나 B는 졸업할 때까지 그 점수에서 절대로 내려가면 안 된다. 그래야 평균 2등급의 성적표를 들고 원하는 대학에 진학을 하니 말이다. B고등학교 출신 내 친구가 종종 자신의 모교를 두고 대학을 못 보낸다고 늘 하는 말이 있었다. 공부를 너무 안 시켜서 수능을 못 본다고 말이다. 슬프게도 B고등학교는 예나 지금이나 수능으로는 대학을 못 보낸다. 모의고사 등급이 낮게 나오는 B에게 수능은 절대적으로 불리하다. 학교의 경쟁이 덜 치열하니 2등급을 유지하는 것이 쉬워 보이겠지만 2등급 유지는 피 말리는 일이다. B고등학교는 정원이 A고등학교에 비해 60명이 적고, 또 다른 C고등학교와 비교하면 100명이 적기 때문이다. B는 전체 석차 9등을 했다. 그리고 2등급을 받았다. C는 17등을 하고 2등급을 받았다. B고등학교보다 C고등학교는 정원이 100명이 많기 때문이다. B가 받은 9등이라는 석차를 들고 C의 학교로 가게 된다면 B는 1등급이 나온다. 학교 정원이 100명이 더 많다는 것은 그만큼 1등급을 가져갈 아이들의 정원이 늘어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석차 9등으로 2등급을 받은 B에게도 내신 등급은 비극이다. 이 아이가 2등급을 계속 유지하려면 전교 15등 밖으로 밀려나면 안 된다. C고등학교에서는 17등도 2등급을 받는데 말이다. 전교 15등과 17등... 두 학생의 점수 격차가 얼마나 될까 생각해 보자. 두 아이 중 누가 더 열심히 공부하고 덜 열심히 공부했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까? C고등학교에서는 전교 26등까지 2등급을 받는다. B는 전교 15등 밖으로 밀려나면 안 되는데, C는 26등까지 안전하다. B고등학교는 이 지역에서 가장 인원수가 적은 고등학교이다. 학교의 수준이 엇비슷하거나 아이들 수준이 비슷하다고 해도 지역에서 이보다 적은 정원을 가진 학교는 없다. (지역에서 인기가 없는 고등학교라 선지망으로 잘 적지 않으니, 다른 학교 배정에서 밀린 아이들만 모인다.) B고등학교는 전체 정원에서 항상 불리하고 때문에 3년 내내 전교 15등을 사수하며 아등바등거려야 하는 B에게 내신 등급은 비극이다.


정원에서 훨씬 더 여유가 있는 C고등학교는 사실 이 지역 전통의 명문 학교였다. 한때는 소위 말하는 SKY를 수십 명을 보낸 적도 있는 그런 학교 말이다. 때문에 학부모들이 많이 선호하는 고등학교이기는 하다. 내가 지도하는 학생들 그리고 지도를 했던 학생들 중에 상당수는 C고등학교 아이들이다. C고등학교는 특정 과목을 중점적으로 지도하는 학교에 속한다. 중점 교육을 하는 학교는 중점반이 운영이 되고, 그 중점반은 특정 과목을 더 많이 학습한다. 일반반이 아닌 중점반을 택한 아이들 대다수는 부모의 강한 열망이 반영되고 그만큼 사교육에 열성이며, 아이들 역시 열심히 공부한다. 올해 C고교 1학년이 된 한 아이가 중점반 바로 옆 반인 일반반이 되었는데, 학교에서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까지 쥐 죽은 듯 조용히 공부하는 중점반을 보고 너무 놀랐다는 이야기를 했다. C고등학교에서 1등급은 대부분 이 중점반에서 나온다. 물론 중점반이라고 해서 성적이 다 잘 나오는 것은 아니다. 부모의 열망으로 중점반을 택했다가 적응을 못하고 성적은 곤두박질쳤던 학생도 겪어봤다. 다만 이로 인해 2학년 선택교과를 시작하면서 기현상이 벌어진다. 중점반 아이들은 이미 계열 선택이 되어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소위 말하는 문과계열과 이과계열의 정원의 균형이 깨진다. 매년 C고등학교 1학년 아이들은 이로 인해 2학년 진로 문제로 심각한 고민에 빠진다. 학부모님들 상담도 수없이 들어온다. 중점반을 포함하고 있는 이과계열은 정원이 많다는 장점을 가지지만, 치열하게 공부하는 중점반 아이들이 상위권 등급을 독차지할 가능성이 높다는 단점이 있다. 반면 중점반 아이들이 없는 문과계열은 상위권을 중점반 아이들과 싸우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이 있지만, 1학년 때와 견주어 3분의 1로 줄어든 정원 때문에 사회계열 등급을 얻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실제로 C고등학교의 고3 문과 아이들을 진학시킬 때, 그 부분에서 상당 부분 손해가 있었다. 정원이 줄어들어 겨우 1문제 틀린 탓에 3등급을 받는 일이 비일비재하고, 전교 6등 안으로 들어와야 2등급을 받는 상황이 벌어지면 아이들을 괜히 이쪽으로 진학시켰나 하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반대로 이과계열로 가면 정원은 괜찮지만, 중점반이 아닌 아이가 상위권 등급을 받기가 쉽지 않다. 그 아이들을 이기기 위해 선택과목 하나만 50~60만 원씩 주고 그룹 수업을 듣는 일이 벌어지는데, 그걸 감당하는 부모와 그렇지 못한 부모의 마음이 어떨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유명한 물리 수업의 경우 80만 원씩 한다고 한다.) 중점반을 택해서 잘 버티면 되지 않느냐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물론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중점반의 상위권 아이들은 지역의 자립형 사립고등학교 진학과 이 중점반을 견주다가 이곳으로 오는 아이들이다. 인근 중학교의 최상위권 아이들이 몰린다는 뜻이다. 버티는 일이 마냥 쉽지는 않다. 국어 석차 17등으로 2등급을 받은 C도 마찬가지다. 계열이 나뉘지 않아 정원이 많은 과목은 괜찮았지만, 선택교과는 여지없이 4등급으로 밀려났다. 그나마 4개의 선택교과 중에 2개만 4등급이 나와서 비교적 선전한 경우이지만, C가 선택교과에 쏟는 사교육비를 생각하면 이 또한 비극이다. (나중엔 선택교과 성적이 나오지 않아서 아예 포기해버리고 해당 과목을 접었다.)


그럼에도 C고등학교를 지망했던 D가 있었다. 애석하게도 그 뺑뺑이의 불운으로 D고등학교로 진학하게 되었다. D고등학교는 사실 지역에서 하위권에 속하는 고등학교라서 D의 어머님은 이렇게 된 거 내신점수라도 확실하게 받고 싶어 하셨다. 안타깝게도 하위권 고등학교가 되는 이유는 학교의 분위기가 공부를 하는 분위기가 아닌 경우인 경우가 많다. 중학교 때 상위권이었던 D였지만 그 분위기에 제법 휩쓸린 편이었고, 결국 어머님의 기대에 부흥하지 못하고 중하위권으로 밀려났다. D의 노력이 부족했으니 이건 D에겐 비극이 아니지만, D의 어머님에겐 비극이 돼버렸다.


‘자립형 사립고’가 아닌 ‘일반고등학교’들을 다니는 대다수의 아이들은 ‘학교 내신 등급’을 반영하는 수시전형을 택한다. 이것은 지역차가 있고 학교의 차이가 있겠지만, 내가 있는 지역의 일반고등학교들은 ‘학생부 종합전형’으로 아이들을 진학을 시키는 것을 잘 못한다. 일반고등학교의 고3의 생활기록부는 8장도 간신히 나오지만, 자립형 사립고인 E고등학교의 고3 생활기록부는 못 채운 아이도 10장은 나오며, 20장을 채우는 일이 예사였다. 매년 고3 아이들이 자기소개서를 쓰는 일을 도와줄 때마다 함께 생활기록부를 살펴보는데, E고등학교의 생활기록부는 정말이지 쓸 내용이 차고 넘친다. 아이 진로와 적성에 맞는 교내 활동이 참 다양하게도 기록되어 있다. 아이에게 물어보니 명목상 있을 뿐 실제 활동은 제대로 한 적도 없거나 그저 이름만 거창한 경우도 허다했지만, 생활기록부의 기록만 살피는 입학사정관이 그 사실을 알까? (바뀐 전형에서 해당 부분이 많이 수정된 점은 그나마 다행이다.) 반면 일반고등학교 아이들은 학교 동아리 활동 말고는 할 말이 없다. 그 동아리 활동 내역이라도 알차게 써넣고 싶어서 아이들은 동분서주한다. 몇 학교에서는 내신등급의 선을 그어서 과목별 세부 특기 사항을 적어주기도 한다. 해당 학교에선 3등급 이상인 아이들에게만 교과 관련 세부 특기 사항을 적어준다.(학기초부터 이 사실을 공표한 교과 담당 교사들이 있다.) 그렇게 되면 내신 등급은 또다시 아이들에게 비극이다.


상위권 아이들 이야기만 계속 한 모양새가 되었는데, 하위권 아이들이라고 등급이 비극이 아닐까? 1학년 시험성적에서 6등급 7등급을 받아버리면 그냥 포기를 하고, 공부를 접는 아이들도 있다. 어느 순간 본인 등급의 한계를 느끼고 학업을 접고 아르바이트나 하고 다닌 F, 4등급 이상 오르기를 꿈조차 꾸지도 않으며 적당히 놀기나 하던 G, 6~7등급이 나온다고 엄마에게 폭언을 듣는 H와 낮은 등급 탓에 함께 어울리던 친구 무리에서 의기소침해하던 I, 등급이 나오지 않는다는 이유로 아버지에게 사생활을 통제당한 J... 알파벳의 숫자에 비교할 수도 없는 수많은 아이들이 그렇게 비극을 맞이했다.


내 친한 친구 중엔 고2 때 공부를 시작해서 대학을 간 이가 있다. 그 친구 중학교 졸업 석차 백분위가 90%였다. 요즘 등급으로 치자면 9등급이었다. 고등학교 1학년까지 그렇게 성적 꼴찌에 소위 양아치 같던 녀석이 해보겠다는 마음을 먹고 노력해서 결과를 얻어 냈던 것이다. 그 친구의 대학이 최상위는 아니라고 해도 지금 아이들이 가려면 내신 평균이 3.5는 나와야 한다. 고등학교 1학년 1년 치 평점이 8등급~9등급인 학생에게 어떤 기적이 벌어져야 졸업 평점이 3.5가 나올까? 내 친구의 이야기와 같은 역전 이야기는 ‘내신 등급’에는 없다. 이건 너무 공고한 성이며 치열한 전쟁터다. 그래서 내신등급은 또 비극이다.


안다. 그냥 이건 입시의 비극이다. 그리고 가증스럽게도 나는 그 비극 덕분에 먹고 산다. 높은 등급으로 올라서게 하기 위해 트레이닝을 시키고, 높은 등급을 유지하기 위한 페이스 메이커가 되고, 떨어진 등급을 끌어올리기 위한 견인차가 되고, 더 이상 아래로 떨어지지 않도록 막는 방어막이 되어가며 나는 돈을 번다. 내신 등급의 비극이 내 통장 잔고의 희극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력하고도 좌절하는 아이들을 마주 할 때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싶어 진다. 치열한 경쟁으로 고통받으며 타인을 밟아야만 하는 A의 꿈은 사람들을 돕는 ‘간호사’다. 2등급에서 밀려나지 않도록 아등바등거리는 B는 사람을 지키는 일을 하고 싶어서 '경찰'이나 '군인'이 되고 싶단다. 학원에 과외에 부모가 열성적으로 지원하고 있는 C의 꿈은 ‘그냥 회사원’이다. 유치원에 가서 아이들에게 물어보면 하고 싶은 직업군에 꼭 한 번씩 언급이 될만한 뻔한 일들이고 심지어 너무도 소박하기까지 한 아이도 있다. 그런데 이 세상이 그렇게 소박하게 돌아가지 않는다. 아이들이 꿈꾸는 직업, 꿈꾸는 대학을 위해서는 내신 등급이 필요하다. 소위 잘 나가는 대학을 꿈꾸지 않는다고 해도 성적은 필요하다. C는 도저히 수도권 4년제에 갈 자신이 없어서, 수도권 전문대학 중에 취업이 잘 되는 곳을 점찍어 두었다. 물론 이건 부모님은 극구 반대하는 사실이다. 아이 교육비를 그렇게 쏟고 계신 분들이니 결코 용납하실 리가 없다는 걸 나도 안다. 나는 이 아이들 하나하나의 꿈이 너무 예쁘고 소중하다. 최대한 아이들의 소망을 들어주고 싶다. 사회 복지사를 꿈꾸는 아이는 사회복지과로, 간호사를 꿈꾸는 아이는 간호대로, IT전문가를 꿈꾸는 아이는 IT공과대로, 화학을 좋아하는 아이를 화학공학과로, 문학을 사랑하는 아이를 인문대학으로 갈 수 있게 하고 싶다. 내 통장이 두둑해지기 때문이 아니라 아이들의 꿈을 들어주고 싶어서 나는 이 내신 등급과 전쟁을 하고 있다. 그러나 성적을 이용해 돈이나 버는 사교육 강사 중 하나이니 이런 소리는 듣기 좋은 변명이 된다. 그래서 내게도 내신 등급은 비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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