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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북선생 Apr 16. 2021

그날

4.16


그날도 여느 날과 다른 것이 없었다. 우리는 그날의 공부를 했고, 저녁을 함께 먹으러 갔었지. 그날 너와 함께 먹은 메뉴가 무엇이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네가 그날 했던 그 말만큼은 나는 잊지 않았다.


“추모의 방식이 잘못되었어요.”


일주일 전에 내가 너에게 노란 팔찌를 선물했었고, 너는 그날 그 팔찌를 하지 않고 왔었다. 그리고 그 말을 밥을 먹으며 툭 내뱉었다. 나는 그날 내가 너에게 무슨 답을 했는지 기억한다. 나는 아무 말도 안 했다. 그런데 아들아, 그것이 내가 너의 말에 동의했음은 결코 아니란다. 커다란 돌이 나에게 내려앉았고, 아무런 말도 내 목 밖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 어린 너에게 설명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서가 아니라 나는 감히 그 말을 할 수조차 없어서 그랬다. 내가 지은 죄가 너무도 커서 그 어떤 말을 꺼내도 모두 위선이 될 것 같아서... 그리고 내 죄가 그날의 너를 만든 것 같아서... 이제야 나는 너에게 ‘그날’을 이야기하려고 용기를 내었단다.


너도 알다시피 나는 오후 늦은 출근을 하는 사람이라 오전에는 단꿈에 빠져 있었단다. 내가 눈을 떴을 때, 할머님이 TV를 보고 계셨다. TV는 틀어만 놓고 화투장을 만지작거리시는 것이 일과인 분인데 그날은 TV를 보고 계셨다. 잠이 덜 깨어 무슨 일이냐고 묻자. 할머님이 바다에서 사고가 났다고 했다. 사고라는 말에 잠시 놀랐지만, 곧이어 다 구출했다는 말에 그런가 보다 하고 화장실로 향했다. 출근을 하려고 말이다. 

4월은 학원 선생에겐 항상 정신이 없이 바쁜 달이란다. 4월 말부터 중간고사가 시작하기 때문에 온 신경도 예민해져 있단다. 다른 그 어떤 시험보다 1학기 첫 시험이라는 압박이 있기 때문에 말이다. 4월은 학교도 바쁘지 소풍이다 수학여행이다 일정도 많지. 그렇게 야외 활동으로 한껏 신나 있는 너희들을 진정시키고 책상에 묶어 둬야 하는 게 내 일이란다. ‘그날’도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출근하기 무섭게 각종 자료를 복사하고, 진도를 체크하고 시험 전까지 목표치에 도달하려면 오늘은 얼마나 너희를 압박을 해야 하나 고민하면서 강의실에 들어갔단다. 핸드폰을 들여다볼 정신조차 없는 날이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수업에 열중하고 있었단다. 중간고사가 몇 주 안 남은 상황이라는 사실이 그 아이들에게도 압박이 되기는 했으니 말이다. 물론 너도 알다시피 몇몇은 수업에 집중하지 못했지. 근데 특히나 핸드폰을 손에 쥐고 내려놓지 않는 아이가 있었단다. 그 아이는 강의실 제일 뒷자리, 내가 바라보는 방향에서 왼쪽 벽에 붙어 있는 책상에 앉아 있었지. 강의실 문이 그 아이의 반대편에 있었는데 그 앞자리는 비어 있었고, 대다수의 아이들은 그보다 조금 더 앞자리에 앉아 있었단다. 그 학원에서 근무한 것이 채 1년이 되지 않고, 오래 전의 일임에도 나는 그 강의실 구조만큼은 하나도 잊지 않았단다. 녀석은 중학생이었고 안경을 쓴 소년이었단다. 삐딱하게 앉아서 핸드폰으로 계속해서 실시간 뉴스 영상을 보고 있었지. 평소에도 수업 태도가 좋은 녀석은 아니었지만 그날따라 녀석이 너무 심하다고 생각했었다. 핸드폰을 당최 손에서 내려놓을 생각을 하지 않으니 말이다. 화를 내지 않을 수가 없었어. 지금 생각해도 그때 그 순간에 내가 화를 안 낼 수는 없다고 생각한단다. 하지만... 그 말은 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생각한다. 돌아갈 수만 있다면 그때로 돌아가서 그 말만은 지워버리고 싶단다. 그러나 돌아갈 수도 없고 그 말은 영원히 지워지지 않겠지. 굳이 변명을 하자면 정말로 나는 집에서 나올 때 들은 뉴스가 마지막이었단다. 그래 안다 그것은 전혀 변명이 되지 않아. 설혹 그것을 사실이라고 알고 있었다고 해도 그런 말을 말았어야 했다. 핸드폰을 그만 내려놓고 수업에 집중하라고만 했으면 될 것을 그랬다. 차라리 아이의 핸드폰을 잠시 압수를 해도 되었을 일이었는데... 나는 내가 왜 그런 말을 그 아이에게 했을까 수 천 번을 곱씹어 생각을 해봐도 그저 후회만 한단다. 중간고사의 압박 때문이었다고, 새로 옮긴 학원에서의 첫 시험이라서 긴장을 했다고, 평소에도 수업태도가 불량한 녀석이라서 내가 기분이 더 나빴었다고... 변명을 수없이 해보지만 말이 되지 않는다. 그냥 그건 내가 나빴다. 내가 너무도 못된 사람이라서 그랬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가 없구나. 


“네 형이라도 되냐?”


나는 그런 못된 어른이었단다. 너의 일이 아니라고 그러니 뉴스를 그만 들여다보라고 했다. 관심을 끄고 너의 일이나 하라고 했단다. 너의 일이 아니니 네가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다고 말했단다. 참혹하게도... 잔인하게도...


나는 퇴근을 할 무렵에서야 알았단다. 아이들은 살아 나오지 못했다는 사실을... 아이들과 함께 있던 어른들도, 누군가의 부모도, 형제도...... 그리고 너와 같은 고등학생들이 내가 예뻐하던 너희와 같은 아이들이 말이다. 집에 돌아와서 울었단다. 뉴스를 보다가 울기 시작을 했는데, 뉴스가 끝나도 울고 있었단다. 일상은 계속되었고 나는 일을 하고 있었는데 집에만 돌아오면 울었단다. 단신 기사 한 줄만 봐도 눈물이 나기 시작하는 것을 멈출 수가 없었단다. 하루는 주말 오후 내내 울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는 정말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단다. 그래서 그날로부터 한 달여를 TV도 보지 않고 포털 뉴스도 보지 않았단다. 

그런데 말이다. 그런다고 끝이 나는 문제는 정말이지 절대로 아니었단다. 친한 친구가 안산에서 근무를 하고 있었단다. 오랜만에 만난 그 친구는 직장 동료분 중에 같은 학교에 아이를 보내는 분이 있다고 말을 했단다. 그 아이는 다행히 화를 입지 않았지만 친구는 너무도 끔찍한 일이라고 말을 했단다. 그 친구의 늦둥이 막냇동생이 고등학생이었거든... 우리가 중학교를 다닐 때 겨우 대여섯 살이었던 그 막내를 위해서 내 친구는 간식거리가 생기면 꼭 챙겨갔었단다. 아래로 동생들이 여럿이고 모두 예뻐하는 친구였지만 막내에 대한 애정은 조금 더 특별했었지. 그래 그 아이가 그 또래였어. 나는 집으로 돌아와 또 하염없이 울었단다.

그 일이 있고 한 달여가 지나서 너와 같이 수업을 들었던 아이들이 나와 만나자고 했었지. 너와도 친하게 지내던 키가 큰 A와 그때 반에서 가장 올망졸망 작고 귀여웠던 B였어. 둘이 같은 고등학교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때까진 가끔 연락을 했던 모양인지 내가 예상하지 못한 조합으로 함께 카페에서 만났단다. 너도 몇 번 가보았던 우리 학원이 있던 그 길 건너의 그 카페 말이다. 고등학생이 되어서 힘든 거 좋은 거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A가 그날의 일을 이야기했단다. 자기 고등학교도 수학여행이 제주도로 예정되어 있었고 그와 비슷한 시기였다고... 

나는 그날 아이들과 헤어지는 순간부터 울었단다. 너무도 못돼먹었지만 너희들이 아님에 안도하면서 한없이 울어야 했단다. 그리고 지난날 어느 강사분이 올렸던 글이 생각이 났단다. 자신이 가르치는 아이들이 수학여행을 갔다고... 어쩌면 좋냐고 말이다. 나는 내가 그 글을 쓰는 사람이 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느끼면서 죄스러워서 미안해서 한참을 또 울었단다.

또 얼마의 시간이 지나고 그날 아이들을 향해 달려갔던 선생님들의 이야기가 회자가 되었던 무렵이었다. 나의 절친한 친구가 집에서 있었던 일을 말을 했었단다. 너도 한 번 본 적이 있는 영어 선생님이란다. 그 영어 선생님은 초등학교에서 영어전문강사로 일하고 계셨어. 정규직 교사가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아이들의 선생님이 아니란 뜻은 아니거든. 그날 그곳에도 그런 선생님들이 계셨단다. 뉴스에서 사람들이 그분들의 순직 문제와 보상 문제로 시끄러울 때였단다. 뉴스를 보시던 친구의 어머님이 너무 아무렇지 않게 그 문제를 말씀하시더란다. 그래서 그 선생님이 그런 말을 했다더구나.


 “엄마, 내 아이들이 그랬으면 나도 같은 상황이었을 거야.” 


더는 울 힘조차 남아 있지 않을 무렵이었단다. 나는 그 친구의 말이 무엇인지 너무도 잘 알면서도 그것이 어떤 무게인지 가늠이 되지 않기도 했단다. 그거 아니? 내가 그 이후로 학원의 출입구 동선을 유심히 보게 되었어. 혹여 아주 만약에 작은 화재라도 난다면, 나는 내 아이들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사실을 곱씹으면서 안전 수칙을 기억했지. 대피로를 외우고 가장 안전하게 너희를 지켜 나갈 수 있는 방법을 생각했어. 너는 모르겠지만 나는 너와 함께 어느 곳에 가도 너와 있는 동안은 늘 그것을 생각하고는 해. 어떤 사고가 나도 너는 지켜야 한다고 말이다. 그래서 나는 ‘그날’을 기억하면 자꾸 울음이 난단다. 내가 너무 죄스러워서 말이다.

아들아 나는 차마 ‘그날’을 입에 올리지도 못하고 지냈단다. 내 대학 동기는 회사 사람들과 함께 조문을 다녀왔다는데 나는 죄스러워서 그 근처도 못 갔단다. 나는 너무 무섭고 너무 미안하고 너무너무 고통스러워서 그 해에 ‘그날’을 제대로 바라보지도 못했단다. 그리고 그것이 자꾸만 되돌아와서 나를 혼내는구나. 나는 너의 그 말이 또 다른 벌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때 내가 외면해서 이런 벌을 받는다고 생각했다. 그때 그 세상을 만들어 놓은 것은 나였지. 내가 한 수없이 많은 선택들의 결과가 결국 그것이었고, 내가 주의 깊게 지켜보지 않고 당장 내 안위에만 몰입한 결과가 그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죄인이었고, 내 죄로 인해서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지금도 나는 내가 죄인임을 알고 있지만, 이제는 그때의 너에게 답을 하려고 한다. 너의 말은 틀렸다. 그건 다른 것이 아니라 틀린 것이다. 추모에 정해진 답은 없다. 슬픔은 멈추라고 해서 멈춰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란다.

아들아, 나는 ‘그날’의 죄인이란다. ‘그날’이 있게 만들어 놓은 어른 중 한 사람이고, 감히 ‘그날’을 무심하게 흘렸으며, 참혹하게도 ‘그날’ 아무 생각 없이 떠들어 댔다. 그래서 나는 ‘그날’을 절대로 잊을 수가 없단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고작 영원히 ‘그날’을 기억하면서 참회하는 것뿐이지만 말이다. 그런데 그거 아니? 너를 위해서라면 나도 무엇이든 거칠 것이 없단다. 너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너의 미래를 위해서라면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할 것이란다. 그래서 나는 ‘그날’을 가슴 깊이 품고 내 죄를 기억하고 반성하며 살려고 한단다. ‘그날’의 세상을 만든 것은 나니까. 너를 지키는 것이 나의 당연한 의무이듯. ‘그날’ 어른들은 너희들을 지켜야 했단다. 그런데 우리들은 너희를 지키지 못했다. 그러니 우리는 그 죄를 찾아서 반성하고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해야 하는 거란다. 당연히 지켰어야 할 너희를 지키지 못한 그 죄를 져야 하는 것이 맞단다. 그리고 이것이 내가 택한 너를 지키는 길이란다.      


제주도 인증 사진을 찍어 올렸을 너희, 중간고사 점수에 울상을 지었을 너희, 수업을 듣다 꾸벅꾸벅 졸았을 너희, 모의고사 성적이 잘 나왔다고 웃었을 너희, 체육대회보다 학급 티셔츠 만들기에 열을 올렸을 너희, 문이과 진로 고민을 했을 너희, 무슨 데이라며 사탕과 초콜릿 빼빼로를 교환했을 너희, 살이 쪘다고 투덜거렸을 너희, PC방에 갔다고 혼났을 너희, 자기소개서를 골백번 고치며 짜증 냈을 너희, 수시 면접을 가며 떨었을 너희, 불합격 통보에 울었을 너희, 예비번호에 간절해졌을 너희, 수능 날 하얗게 불태웠을 너희, 졸업식 꽃다발을 안았을 너희, 대학생이 되었다며 웃었을 너희, 재수하겠다고 의지를 불태웠을 너희,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뛰어다녔을 너희, 장학금을 받았다고 자랑했을 너희, 연애를 시작하며 프로필 사진을 바꾸었을 너희, 머리를 빡빡 깎고 나라를 지켰을 너희, 어학연수를 떠나며 설레어했을 너희, 취업 실패로 좌절했을 너희, 입사증을 받고 기뻐했을 너희... 그렇게 나와 함께 사회인이 되어 살았을 너희... 20년이 지나 요즘 애들은 쯧쯧 하며 혀를 차야 했을 너희에게......     


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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