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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복희 Sep 02. 2024

#02. 비 오는 날마다

쓰다가 눕다가 울다가 

  지긋지긋한 빗소리를 들으며 누워 있다. 게으름을 피우는 건 아니고 어깨가 아픈데 그저 눕는 것밖엔 방법이 없어 그렇다.     


  예상은 했다. 올해 장마는 기간도 길고 강수량도 대단할 예정이라길래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했단 말이다(한다고 뭐 되겠냐마는). 비가 시작되고 일주일쯤 지나 몸 어디에서도 소식이 없길래, 드디어 비가 와도 아프지 않은 성한 사람이 되었구나, 생각했다. 시건방이었다.      


  통증은 비가 그치고 해가 반짝일 때 찾아왔다. 일기 예보에서는 다음 날에도 그다음 날에도 비가 오지 않는다는데 어깨가 묵직한 게, 통증에 몸이 짓눌리기 시작했다. 평소라면 몸을 사렸을 것이다. 하던 거 쓰던 거 다 중단하고 침대에 누워 지긋지긋한 천장을 다시 바라봤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변명을 찾으니, 줄줄줄 끝없이 떠오른다.      


  우선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마감 기한이 이틀 남은 글이 두 개나 있어 컴퓨터 앞을 떠날 수 없었다. 남들은 몸이 아파도 출퇴근하는데 집에서 키보드나 두드리는 주제에 고것 조금 아프다고 드러눕는 일은 이제 그만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방심했다. 한동안 비가 와도 안 아팠고, 장마가 지나간 듯 해가 쨍쨍한 맑은 날이 며칠간 이어졌고, 쓸데없이 자신감에 차 있었다. 일단 일부터 끝내놓고, 찜질하거나 적당한 스트레칭을 하거나 그래도 안 되면 반신욕을 하거나 상비하고 있는 진통제를 먹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무려 4년을 앓았으니 내 아픔쯤은 다스릴 줄 아는 사람이 됐다고 자만했다. 


  소소한 통증을 무시하고 며칠을 보냈다. 겨우 원고를 끝내고 후련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었다. 다른 숙제가 기다리고 있을 줄 꿈에도 몰랐다.      


  오싹한 기분에 눈을 뜬 아침, 도도도독 묵직한 빗방울이 유리창을 사정없이 후려치고 있었다. 

  ‘너무 아픈데?’

  왼쪽 어깨를 중심으로 익숙한 통증이 발끝까지 이어졌다. 설마 하는 마음으로 몸을 일으키다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목 디스크 방사통이 시작됐다(방사통은 튀어나온 디스크가 신경을 누르면서, 신경을 타고 신체 다른 부위까지 통증이 번지는 것을 말해요).      


  디스크 방사통은 눕는 것 말곤 방법이 없다. 잘못 움직였다간 되돌릴 수 없게 된다. 4년간의 투병으로, 몇 번의 시행착오로 체득한 내 몸 한정 지혜다(각자 상황이 다르니, 정확한 치료를 위해 반드시 의사와 상의하세요).      


  진통제를 삼키고 침대에 누웠다가 꼬박 일주일을 흘려보냈다. 세 살 아기 때부터, 아픈 건 끝내주게 잘 참아왔는데 그보다 몇십 배 더 나이 든 지금은 과거의 그 아기가 그저 존경스럽다. 독한 계집애. 그걸 어찌 참았누.     


  “잘못했어요.” 

  오늘 아침엔 나도 모르게 중얼중얼 혼잣말로, 천장을 향해 사과했다. 일단 사과를 하고 무엇을 잘못했는지 생각했다. 어디 보자, 남의 것을 뺏지도 탐하지도 않았다. 맞을지언정, 누굴 때리지도 않았다. 사람 죽는 이야기를 주로 썼지만(그게 직업이니까) 그렇다고 진짜 죽인 건 아니잖아. 아무리 생각해도 이렇게 아플 만큼 죄지으며 살진 않았다. 남들처럼 일상을 산 죄로(며칠 밥벌이 좀 했다고) 이렇게 아프다니, 억울하다.      


  네 살, 독한 계집애 시절, 납득이 안 되면 죽어도 잘못했단 소릴 안 했다더라. 엄마는 내가 잘못했다고 할 때까지 때리려 했고(때리는 시늉만 했겠지 설마 그 어린 걸 진짜 때렸을까) 나는 이를 악물고 버티다 분을 못 이기고 몇 번이나 까무러쳤단다. 그런데도 엄마는 어린 딸과의 싸움을 이어가려 했다. 놀란 외할머니가 달려와 나를 안고 화를 내셨단다(그 계집애가 누굴 닮았는지 알겠다). 아무튼 그 독한 계집애가 척추 통증에 무너졌다. 

[비와 비 사이 잠시 해가 반짝이던 순간의 고양이 영희씨]

  “잘못 했어요. 잘못 했어요.”

  까짓거, 지금은 몇 번이든 말할 수 있다. 아프지 않을 수 있다면 뭔들 못할까. 하늘이 늙은 내 버릇을 이제 와 고치려는 건가, 싶기도 하다. 이런 나를 엄마가 본다면 혀를 끌끌 차겠지. 독립해 나오길 잘했다. 


  누워서 눈동자만 굴리는 나를 출근 준비하던 언니가 측은하게 바라본다. 

  “아파도 일어나서 밥 먹고, 약 먹고, 절대 움직이지 말고, 책상에 앉지 말고, 아무것도 하려고 하지 말고….”

  창밖의 사나운 빗소리가 언니의 걱정을 잡아먹는다. 저 비를 뚫고 출근해야 하는 언니를 내가 측은하게 바라본다. 어느 쪽이 더 수고로운지 모르겠다.     


  4년 전, 처음 누워 지낼 때는 통증만큼이나 불안도 컸다. 가만히 다리 뻗고 누워 있는 시간을 잠시도 견디지 못했다. 머리맡에 오디오북을 켜놓기도 하고 침대용 독서대를 사서 허공에 책을 매달아 두고 읽기도 했다. 몸이 아프니 당연히 귀에도 눈에도 들어오지 않는데 억지로 보고, 읽으려 한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순간이 끔찍하게 낯설었다. 이십 대 초반부터 바쁜 게 능력인 척 살았더니 놀 줄도 쉴 줄도 모르는 바보가 됐던 모양이다. 이제 와 살피려니 안팎으로 체력이 달려 죽겠다.      


  눈을 떴다. 깜박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진통제가 수면제보다 불면에 효과가 좋은가(괜한 소리임). 밤새 아파 뒤척이느라 잠들지 못했던 탓이겠지. 별것 아닌 일도 심각하게 고민한다. 누워 있을 때는 생각하는 일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별별 것에 진지해진다.      


  그사이, 사악하게 쏟아지던 빗소리가 잦아들었다. 잠들기 전까지 얌체 공처럼 신나게 튀어 오르던 고양이들도 각각 제 자리를 찾아 드러누웠다(비가 오니 시원한지 고양이들은 신났다). 혼자 남겨진 침대 위, 나는 고요를 음미하며 누워 있다. 그러고 보니 이제 가만히 누워 있는 것도 꽤 잘하게 되었다. 무엇이든 발전한 것이 있으니 되었다. 아침보다 통증이 덜해진 것 같은 기분이다. 비구름 지나가듯 남은 통증도 흘러가 주길 바라본다.      







✔덧. ‘비 오는 날마다’는 내가 처음 쓴 장편 웹툰(나는 글 담당)의 제목이었다. 비 오는 날마다 사람을 죽이는 연쇄 살인마와, 귀신 보는 소녀의 이야기였는데 정식 연재가 시작되고부터 어찌나 비가 쏟아지던지 웹툰을 보고 있으면 실제 빗소리가 BGM처럼 들렸다. 웹툰이 업로드되는 요일에 비 예보가 있으면 반겼고 장마가 길어질수록 좋아했다. 인생이라는 게 얼마나 우스운가. 그 시절 그토록 반가웠던 빗줄기가 이제는 너무 무섭다. 제발, 그만 좀 와다오. 적당히 좀 내려 다오.    Copyright © bokhee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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