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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복희 Jul 07. 2024

#01. 커피 머신 앞에서 청승

쓰다가 눕다가 울다가

  커피 머신이 고장 났다. 전조가 있었다. 물을 반만 뱉는다거나, 커피라고 부를 수 없는 맹숭맹숭한(커피 향만 나는) 커피 차를 추출한다거나, 비싼 캡슐을 씹어먹고 커피는 한 모금도 내려주지 못하는, 짜증스러운 순간이 몇 번이나 있었다. 그래도 청소를 해주거나 전원을 껐다 켜면 다시 제 일을 해내길래 이번에도 괜찮을 줄 알았지, 이토록 허망하게 이별을 고할 줄이야.      


  내 몸의 경고도 무시해 사달을 낸 주제에 한낱 기계 앞에서 이런 생각을 한다니, 우습다. 비상용 인스턴트커피를 머그잔에 털어 넣고 주전자의 물이 끓기를 기다리며 계산해 보니 녀석은 7년 하고도 4개월간 대략 일만 잔의 커피를 뽑아주었다(혼자 다 마신 건 아니어요). 하루도 쉼 없이 고생해 온 기계를 보며 생각했다.

  ‘이왕이면 오늘 모닝커피까지는 내려주고 가지.’

  아, 인간이란 참 지독하구나.     


  스무 살 때였다. 국립극장에서 대학 동기들과 연극 ‘햄릿’을 보고 나온 밤, 동기들 손에 끌려간 장충공원에서 억지로 인라인스케이트를 탔다. 아니 탔다는 말은 맞지 않는다. 생전 처음 바퀴 달린 걸 신은 채로 스케이트장 중앙에 그저 주저앉아 있었으니까. 일어서지도 못하는 애를 거기에 끌어다 놓을 건 또 뭐람. 차라리 스케이트를 벗어버리고 맨발로 걸어 나왔으면 좋았을걸, 안타깝게도 그러지 못했다(괴롭힘, 따돌림 그런 거 아니니 부디 오해 마셔요).      


  융통성 없는 스무 살 어린애였고, 맨발은 조금 창피했고, 하필 도와주겠다며 다가온 오지랖 넓은 친구가 있었다. 그 애의 손을 붙잡고 엉거주춤 일어서다가 두 번이나 크게 넘어지고 말았다. 그땐 수치스러워서 몰랐는데 다음 날 아침, 허리가 너무 아팠다. 술 먹고 새벽에 귀가한 걸로 모자라 아프다고 징징대는 스무 살 딸을 엄마는 비통한 심정으로 바라보았다(내가 너를 낳고 미역국을…! 이라고 말씀하셨던가, 안 하셨던가). 엄마의 부축을 받아 간 한의원에서 ‘디스크 초기네요’라는 말을 들었다. 그때는 ‘디스크’가 뭔지도 몰랐다. 허리 아픈 증상을 이르는 병명인 줄 알았다.      


  그로부터 십여 년이 지났다. 몇 년에 한 번씩 허리 통증을 겪었다. 간혹 비가 쏟아질 땐 묵직하게 불편한 느낌도 있었다. 고통이 크든 작든 견디면 결국 괜찮아지길래 커피 머신 방치하듯 그냥저냥 지내왔다(하아…). 참으로 무심했다. 하루 앓으면 되던 것이 몇 년 후엔 며칠이 되고 또 몇 년 후엔 일주일이 됐는데도 심각한 줄 몰랐다. 스무 살 그날 이후로 나는 원래 허리 아픈 사람이었으니까. 병원에서 주는 약만 챙겨 먹으면, 주사 한 대 맞으면 괜찮아졌으니까. 그리고 먹고살기 바빴다는 말을 또 꺼내야겠다. 아등바등 사느라 너무 바빴다.      


  프리랜서 방송작가에겐 최저임금도, 노동법도 딴 세상 이야기던 시절이었다. 20대엔 밤낮 없이 뛰어다녔고 30대엔 컴퓨터와 한 몸인 듯 살았다. 제시간에 일어날 자신이 없어서 책상에 엎드려 쪽잠을 잘 때도 많았다.      


  디스크가 튀어나와 신경을 누르고 나서야, 진짜 고통을 맛보고 나서야(이전까지의 허리 통증은 고통이 아니었음), 내 몸이지만 내 맘대로 못 하는 지경이 되어서야 지난 세월을 후회한다. 만 잔의 커피를 내리고 뻗어버린 작은 기계 앞에서 말이다.      


  24시간 침대 살이를 시작한 때부터 가장 많이 하는 일이 ‘반성’인 것 같다. 그런다고 십여 년간 놓쳐버린 기회가 다시 오는 건 아니지만, 머리는 틈만 나면 반성의 시간으로 풍덩 빠져든다.      


  스무 살 때 장충동에 가지 말아야 했다(장충동은 죄가 없죠). 그때 엄마가 지어준 한약을 다 먹었어야 했다. 밤새워 일하지 말았어야 했다. 종일 책상에 앉아 있지 말아야 했다. 잠깐 자더라도 차라리 누워 잘 걸 그랬다. 허리 아플 때마다 그러려니, 하고 넘기지 말아야 했다. 좀 더 큰 병원에 가서 검사받았어야 했다. 애초에 글 쓰는 일이 나랑 안 맞았던 건 아닐까. 생각이 끝이 없다.      


  후회의 순간이 너무 많아서 여기에 다 적지도 못하겠다. 몸에 해로운 짓만 해대며 살았다. 떠오르는 기억이 하나도 빠짐없이 뼈아프다. 호되게 욕해주고 싶을 만큼 과거의 나는 지지리도 어리석었다. 

     

[2017년 3월, 처음 보는 커피 머신에 놀란 고양이 남매 영희와 철수]

  기계는 결국 낡고 인간은 결국 늙는다. 태어난 모습 그대로 살 수 없으니 아끼고 고쳐가며 살아야 한다. 고쳐서 어찌어찌 작동하더라도 새것 일 때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도 안다. 알지만 서글픔은 어쩔 수 없다. ‘너무 이르다.’, 탄식하던 의사의 말처럼 생각보다 이르게 고장 나버린 몸을 어찌해야 할지 당황스러운 거다. 결국 받아들여야 하겠지만.      


  사람은 처한 상황에 맞춰 모든 걸 보는가 보다. 고장 난 건 기계고, 내 몸은 나아가는 중이건만, 생각의 흐름은 곧 버려질 기계가 아니라 내 몸, 내 허리, 내 뼈를 향해 가고 있다. 청승도 이런 청승이 없다.      


  하루를 꼬박 고민하고, 결국 새것을 들이기로 했다. 주문하고 이튿날 새 커피 머신이 도착했다. 그 짧은 사이에 카페인 중독자인 나는 한껏 신경질적인 사람이 되어 있다. 집에 들어앉은 내게 커피는 유일한 유흥이라 시도 때도 없이 커피가 필요하다.      





  새 기계는 덩치도 훨씬 크고, 표면도 반질반질하고, 전의 것보다 단단해 보인다(분명 기분 탓이겠지만). 기계에 약한 나는 작동도 익숙지 않고 새것이라 부담스러워 조심히 다루고 있다. 익숙해지면 여지없이 되는대로 눌러대려나. 기계도 내 몸도 너무 대책 없이 부려 먹었다며 종일 후회해 놓고 달라진 게 없다(하여튼 인간이란…). 아, 커피도 좀 줄여야 할까. 그건 좀 싫은데(하여튼 인간이란…).  


        



✔덧. 고장 났던 기계가 놀랍게도 다시 작동한다. 언제 또 유명을 달리할지 알 수 없으나, 당분간은 새것과 번갈아 사용하려 한다. 남에게 주기엔 너무 낡았고 버리기엔 아깝다(들어가는 캡슐의 종류가 다르기도 하고). 새것 옆에 두었더니 크기도 모양새도 초라하게 느껴진다. 혼자 있을 때보다 훨씬 낡아 보인다. 기계 앞에서 생각에 잠겼더니 같이 사는 가족이 궁상스럽다고 한마디 한다. 그렇대도 아직은 버릴 수 없잖아. 쓸모를 다하는 그날까지 함께 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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