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5시, 욕망 가득 미역국

파리에서 처음 먹는 한식

by 프렌치장금이
국자도 없는 프랑스 신혼집

프랑스에 도착한 지 첫날, 눈 뜨자마자 한 일은 '미역국 끓이기'였다. 4개월 간 한식을 못 먹은 남편을 위해 아침은 꼭 흰쌀밥을 함께 먹고 싶었다. 문제는 시차 때문에 눈 뜬 시간이 새벽 5시였다는 것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잠이 오지 않아 조용히 주방으로 나섰다.




밥솥은 어떻게 키는지.. 소금은 어디에 있는지.. 국그릇은 어디에 있는지.. 국자는 어디에 있는지.. 도대체 어떻게 요리를 해 먹고 산 건지 싶었다. 짠한 마음이 들면서도 잔소리하는 사람이 없으니까 대충대충 살며 자유를 만끽했구나 생각했다. 그 자유를 지켜주고 싶어 마음속 바가지를 일단 덮어두었다.


한국에서 야심 차게 가져온 식재료들을 하나씩 풀었다. 국간장, 황태, 미역, 동결건조 마늘, 들기름 등 어쩌면 미역국을 끓이기 위해 단단히 준비했는지도 모르겠다. 국을 끓이기 위해 인덕션용 뚝배기도 사 올 정도로 한식에 진심이었다.


'내가 한국에서부터 이렇게까지 준비해왔는데 좋아하겠지?'

'와 이거.. 4개월 만에 먹는 한식에 눈물 흘리면 어쩌나..'


설레는 마음으로 요리하고 남편이 일어나기를 기다렸다. 기다려도 일어나지 않아 깨워 식탁 앞으로 데리고 와 흰쌀밥에 뜨끈뜨끈한 미역국을 대접했다.

예상했던 반응이 아니었다. 정신없이 먹으면서 그릇을 들고 마실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너무 새벽이었나 보다. 사실 남편은 아침 먹는 것을 힘들어하는 사람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은 내가 차려준 것에 대해 고마워하며 끝까지 먹어주었다.




내 욕심이 과했다.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고 나의 만족을 위한 행동이었다. 어쩌면 휴직하고 '뭔가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무작정 요리를 한 것 일지도 모르겠다. 상대방을 위한 행동이라고 포장했지만 사실 그건 나를 위한 행동이었던 것이다.


우리 부부는 한국에서는 주말부부였기에 결혼하고 한 집에 같이 산 세월이 얼마 되지 않는다. 때문에 한 지붕아래 같이 살아가는 생활이 아직은 어색하다. 서툴고 어설퍼도 이 낯선 땅에서 보고 배우는 것은 서로의 모습뿐이다.

이 파리의 조그마한 집에서 행복하게 잘 지내려면 서로가 친절해야 하고 배려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그렇지 않다면 병에 든 쥐들처럼 서로를 갉아먹을 것이다. 때문에 우리 부부는 의식적으로라도 서로에게 친절하려고 한다.



친절과 배려는 상대방이 필요한 도움을 받고, 고마움을 느껴야 비로소 완성된다. 그러면서도 본인은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기꺼이 행동하는 것이 시작이다. 그 어떤 것도 바라지 않기 위해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을 내려놓아야 하는가. 자기만족이라는 때 묻음 없이 오롯이 상대방을 위한 마음으로 행동할 수 있는 걸까.


한국이 아니었으면 배우지 못했을 마음가짐을 오늘도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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