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어로 빵 사기
프랑스에서 빵을 빼놓으면 섭섭하다. 코를 부드럽게 자극하는 고소한 냄새를 따라 고개를 돌리면 빵집이 있다. 사람들은 가게 근처까지 줄을 서서 빵을 산다. 내가 봤던 빵집이 특별하고 유명한 가게여서가 아니라, 그저 각자 집에 가는 길에 그날 먹을 빵을 사가는 것이다.
이곳 사람들에게 바게트는 곧 우리나라의 공깃밥과 같다. 프랑스에서 바게트를 먹는다는 건 '맛있는 빵'을 먹는 것을 넘어, 현지 일상이자 생활이 담긴 문화를 체험하는 것이다. 1년 반동안 살게 된 나는 그들의 일상 속에 들어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프랑스어를 하나도 못한다 할지라도..
프랑스어에 오기 전 한 달 동안 유명한 언어학습 어플로 기초 프랑스어를 공부했다. 먹고살아야 하니까.. 하루에 5분씩 꾸준히 한 결과 인사와 주문정도는 말할 줄 알게 되었다.
혼자 힘겹게 장을 보고 돌아가는 길에, 사람들이 줄 서있는 빵집이 있길래 용기 내서 나도 줄에 합류해 봤다. 앞사람들은 뭘 사가나 기웃거려도 보고, 이름은 모르겠지만 맛있어 보이는 빵들을 구경하다 보니 내 차례가 금방 왔다.
"봉주르!"
그 한 마디에 머리가 새하얘졌다. 순간 오만가지 생각이 스쳤다.
'아. 나 프랑스 사람이랑 지금 처음 대화하네?.. 내 말을 못 알아들으면 어떡하지?'
'침착하자. 나는 지금 빵을 사러 온 거지, 프랑스 장군 통역하는 자리도 아니니까. 긴장하지 말자.'
'뒤에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으니까 시간 끌지 말고 침착하게 연습한 대로 주문하자.'라며 마음을 다스렸다.
"저는.. 크로와상 하나와 바게트 하나? 원합니다. 부탁드려요."
사실 크로와상은 살 생각이 없었다. 입이 연습한 대로 마구 움직였다. 언어학습 어플에 가장 자주 나오던 문장이었다.. 차례를 기다리면서 봤던 크로와상이 머릿속에 강렬히 기억에 남았다보다.
계산을 하고 가게를 급하게 나왔다. 하필 검은색 비니를 쓰고 있어서 누가 보면 빵을 훔쳐간다고 오해했을 수도 있겠다. 아니 빵 하나 사는 것도 이렇게 큰 일이라니. 극 내향인으로서 견디기 힘든 하루였다.
집으로 돌아와 남편에게 있었던 일을 말해주며 특별 과외를 받았다. 적응될 때까지는 옆에 계속 다녀주기로 했다. 나이가 30살이 넘었는데.. 한국에서는 아무것도 아닌 일인데.. 누구보다 씩씩하게 혼자 다녔는데.. 언어의 벽 앞에서 무력함이 느껴졌다.
앞으로 1년 반동안 이런 하루가 계속되게 할 수는 없었다. 좌절할 시간에 적응하자.
프랑스인인데 프랑스어를 저렇게 말하면 문제가 있는 거지만 이곳에서 나는 외국인이다. 어색하게 말하는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었다. 이곳에서 이방인이라는 것을 잊지 않으면서도 내가 원하는 건 명확하게 말할 수 있도록 더 연습하고 있다.
문 밖을 나서는 것부터 모든 것이 도전이고 새로운 시도가 되는 낯선 땅에서의 타지생활,
스스로 강해지는 방법을 강구하게 되는 이 정글 같은 곳에서 한국이 아니었으면 배우지 못했을 마음가짐을 오늘도 기록한다.